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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동아시아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소견

프레시안 <초록발광> 기고문 (2013. 2.)

작년 대선 이후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멘붕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적 상황은 오히려 멘붕을 심화시킨다. 왜 중국, 일본, 북조선, 한국에서는 하나같이 어떤 형태로든 세습정치가 이어져서 2세 정치인들이 현재 권력의 정점에 서있게 되었나? 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이후에도 원전건설계획은 폐지되지 않고 계속 이어질까?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도 서슴치 않는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동아시아 지역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와 그 북새통에 분열되고 파괴되는 제주 강정마을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경제제재를 둘러싼 북한의 핵실험 외교의 결말은 어떻게 매듭지어질까? 동아시아에서 전면전이 일어날까? .... 

곤혹스러운 질문들이 이어지면서 결국 도대체 동아시아 지역은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가가 궁금해졌다. 그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의 근대화에 대한 설명은 대체로 서유럽의 근대성과 역사 전개 과정을 기준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발전국가론이 나오기도 하였고,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서로 대립적인 설명으로 이해되는 내재적 발전론이나 식민지 근대화론 등도 기실은 봉건제도에서 근대사회로 이행되는 단선적인 이행경로를 전제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사 연구자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교수에 의하면 중세의 동아시아는 소농(小農)의 존재가 지배적인 ‘소농 사회’였다고 한다. 소농이란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에 근거하여 독립적으로 농업을 경영하는 농민을 말한다. 즉 중세와 근세 유럽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것처럼 영주계층이 대토지를 소유하고 이에 기초한 직영지 경영이 동아시아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대부, 한국의 양반, 일본의 무사는 특권적 토지 영유(領有)자들이 아니었다. 물론 대토지를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주로 소농들에게 땅을 빌려주고 대신 지대(地代)를 받는, 근대적인 토지이용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토지귀족으로서의 면모가 부족한 지배층들은 (무사는 조금 다르지만) 유교적 교양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를 검증하는 과거제도를 통해 선발되고, 관료체제 속으로 편입되어 중앙집중적으로 국가를 통치하였다. 소농사회였던 동아시아에서 이와 같은 근대적 사회시스템의 성립이 가능했던 것은 주자학의 도입과 확산, 그리고 집약적인 수도작(水稻作) 때문에 높아진 농업생산성과 인구부양능력 때문이었다. 결국 동아시아에는 서구의 근대가 유입되기 전에 그와 다른 유교적 근대성이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동아시아의 유교적 근대사회는 대략 150년 전부터 강제적으로 서구적 의미의 근대사회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왕권에 대한 독립성이 약했던 사대부나 양반의 특권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왕권이나 국가권력을 견제할 주체도 사라져버린 결과를 가져왔다. 주자학에서 민초들의 저항권은 인정했지만, 정치적 주체로는 여기지는 않았기 때문에 근대로 이행하면서 서구 부르주아 사회에서 살펴볼 수 있는 대자적(對自的) 의식을 가진 정치적 주체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조건이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근대 동아시아에서도 다양한 사회운동이 전개되었고, 제국주의적이거나 반(反)제국주의적 민족주의가 등장하여 근대적 권리 개념을 체득한 주체들이 나타났고,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대자적 의식을 가진 주체들도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소수이고 영향력이 미미하다. 그 증거가 바로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폭발사고 이후에 나타났던 동아시아 각 국의 과거회귀적 현상이다. 잠시 충격으로 주춤했지만,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 수상 자리도 차지하였으며, 한국에서도 핵발전소를 폐기시킬 생각이 없는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중국도 사고 직후에는 발전소 증설계획을 잠시 유보하였으나 최근에 다시 계획을 중단없이 추진하기로 하였다. 아직도 성찰적인 정치적 주체가 동아시아에서 전면적으로 나타나기가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서구의 경우처럼 공동체와 같은 중간집단이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견제 없이, 심지어 자본을 육성하거나 반대로 지원을 받으면서 다분히 토건개발지향적이고 반생태적인 경제발전 모델을 추구해왔다. 한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과거 대약진운동이나 최근의 산샤댐, 남수북조(南水北調, 남쪽 양자강의 물을 화북지역으로 보내는 대규모 토건사업) 사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반생태적인 경제발전 모델을 추구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발전 모델이 핵발전을 바탕으로 한 압축적 경제성장 방식이라는 점이다. 동아시아 핵발전소 지도를 살펴보면,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하는 ‘위험사회’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동아시아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 각 국마다 핵발전이 도입된 이유와 역사적 과정에 차이가 있겠지만, 크게는 미국의 군사전략적 이해관계, 핵산업계의 로비 등이 중요한 원인이고,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에너지원 공급의 필요성, 핵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대규모 건설회사(주로 대기업 계열 회사) 등의 이익추구 등이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유교적 근대성의 유산이 잔존하고, 반생태적 경제발전 모델의 채택으로 핵발전소의 위험이 한데 뒤엉켜 있는 동아시아에서 이것을 극복할 정치적 주체는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공동체라는 중간집단을 늘 전제하는 서구의 근대성에 비해, 신분제가 아니었던 송대(宋代) 이후 중국 사회를 모델로 하는 유교적 근대성은, 공동체 같은 중간집단을 매개로 하지 않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전제로 하였다. 이 점을 고려해본다면,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섣불리 공동체를 현대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 처럼 취급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기준으로 공동체의 기능이나 역할 운영방식을 고민하기 보다는 유교적 근대성이라는 유산 속에서 공동체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히려 동아시아에서는 국가를 가로질러 개인들 간의 직접적인 네트워크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공공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새로운 창발성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핵발전소가 빽빽한 위험사회 동아시아는 어떻게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이 지난한 과제의 출발은, 핵발전소 폐기 문제, 핵폐기물 처분 문제, 방사능 오염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서 함께 고민하는 동아시아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서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서 전면적인 탈핵과 사회 전환(social transition)의 과제를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동아시아의 인민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대화하고 힘을 결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발전과 핵폐기물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각 국의 탈핵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에너지 대안을 생산하고, 탈화석연료의 모델을 만들면서 이를 제도화하는 정책이 입안되도록 노력하며, 그 결과를 다시 공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서 있는 공간을 한뼘 만큼이라도 더 해방과 자유의 공간으로 만드는 노력을 서로 나누고 격려하는 운동을 국가를 가로질러 하자는 것이다. 너무 뻔해 보여도, 이렇게 하는 것이 동아시아 지역에 남아있는 유교적 근대화의 현실적인 유산과 핵으로 인한 위험을 생태적인 방식으로 전환시키는 정공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