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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녹색전환의 문화 : 공급형 삶의 구조를 벗어나 자기주도적 삶의 방식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우리들의 삶은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의 형태로 공급되는 생활체계에 익숙하다. 먹고, 자고, 입는 것에서부터 사랑, 죽음, 기억과 회상, 우울과 공포, 신뢰에 이르기까지,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 공급된다. 상품으로 개발되고 공급된 목록, 또는 개발할 수 있고 공급될 수 있는 목록을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는가에 따라 유용한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고, 공급되는 상품을 얼마나 많이 구입하고 소비할 수 있는가에 따라 삶의 활력이 측정된다. 삶과 세계를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의지나 욕구, 욕망은 삶 자체와 결합되지 못하고 삶과 분리된 채 상품적 거래와 교환이 가능한 형태로 변형되고, 삶을 분할하여 조직하는 특수한 형식 속에 갇혀 버리게 되었다.

끊임없이 상품으로서의 인간 존재와 상품으로서의 세계를 생산해 온 자본주의의 관심은 이 상품들을 어떻게 더 많이 소비시키고 이윤을 남길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한 투자도 이윤이 발생할 때에 한에서이다. 효율성이 높은 자본주의처럼 보이지만, 단기적이고 개별적인 이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어서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예상되는 손실과 소멸,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적인 삶을 일방향 (상품)공급형 구조 속에 고착시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품으로서의 인간 존재, 상품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구성이 구조화된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은 편리함과 안전함으로 포장되어 공급되면서 동시에 편리하고 안전한 삶 외부에 불편과 불안정을 배치함으로써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무지함을 키운다. 이 공급체계는 첨단 기술을 타고 거대규모로 이루어지며 과잉 공급된다. 공급되는 삶의 구조에 익숙해질수록 개인들은 제 삶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분리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관계를 불필요하게 느끼고 순전히 개인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 문화를 제외한 모든 문화체계에서 멀어지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이 인간 존재의 상실감을 보상받기 위해 광적인 소비행위라는 특수한 충동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상품으로 공급된 삶, 이런 삶은 우리가 사회적이면서 환경적인 세계 속에 존재론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우리를 둘러 싼 세계를 우리의 바깥, 사회나 환경에 놓여있는 단순 대상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격리시키기 때문이다.

세계 전부를 상품으로 구매할 수 없는 것처럼, 단순 대상물을 소비하는 것으로는 삶을 살아있게 할 수 없다. 상품으로 치부되어 우리와 분리된 채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우리의 삶과 세계를 다시 우리에게 속하게 만드는 작업, 상품화된 공급체계의 의존을 벗어나 생활을 생산하고 생활을 창작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다른 패러다임, 특히 살아있는 체계의 패러다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강제되는 공급형 삶의 구조를 능동적으로 벗어나 선택적인 자기주도형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의 새로운 생활방식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들은 삶의 가치체계와 관계구조 자체를 새롭게 설정하고 만남과 교류의 과정을 재구성하는 중이다. 확신과 믿음에 차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대신에, ‘의심의 기술’을 익히면서 ‘자기의 테크놀러지’에 기반하여 대안적 삶의 생태계를 조직중이다. 본래 살아있는 것은 자기 창조, 재생산, 번식, 재생하면서 자기 조직한다.


밀양에서, 두물머리에서, 강정에서, 여기저기 천막농성장에서, 내성천에서, 그리고 티벳과 미얀마, 인도의 난민촌에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은 경제적 동기가 거의 없는데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삶의 지속성에 쓰고 있다. 노래 짓고 부르고, 몸으로 춤 추고,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며, 손으로 짜고 깁고 만들면서, 자기 언어, 자기 표현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직접 생산한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그래서 분리된 한 개인의 삶은 지속적이지 않다. 그러나 사회를 통해, 세대를 통해 삶은 지속된다. 살아있는 체계는 죽음과 함께 지속적인 삶도 작동하여야 한다. 자기 창조, 자기 조직하는 삶은 살아있는 체계 안에 존재하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와 다양성이 얼마나 상호적으로 그리고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달려있다. 삶의 지속성을 일깨우는 새로운 생활방식들은 녹색전환의 공동성을 통해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새로운 생활방식들은 산업주의가 택한 표준화와 전문화, 영향력 확대 전략과 뚜렷이 구별되며, 선택의 지점을 확보하고 있다. 반투성의 경계를 지닌 개성화의 방식이라고 할까? 자본주의적 공급형 삶의 구조가 제한없이 열려 있거나(동일한 상품으로 세계에 침투하고), 일정한 범위의 닫힌 폐쇄형 방식(상품적 거래와 교환 외에는 어떤 것도 막아버리는 불침투성의 관계)을 지니고 있는 것과 달리, 살아있는 체계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한 이들이 보여주는 생활방식은 반투성의 막을 형성하여 날고 들고를 선택한다. 이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 ‘녹색전환의 문화’로 불리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