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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희망 찾기

“학교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희망 찾기
후기 - “한국 교육개혁의 밑그림을 말하다” - 송순재 교수 강연

“한국 교육개혁의 밑그림을 말하다”라는 다소 큰 주제의 강연이 지난 3월 27일 서울NPO지원센터에서 진행됐습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교육철학을 연구하면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해오신 감리교신학대 송순재 교수님이 마이크를 잡았고, 평소 공부해왔던 한국 교육개혁의 실마리를 풀어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송순재 교수님에 대해 잠깐 소개하면, 독일 튀빙엔대학교에서 교육철학을 전공했고, 서울시교육연수원장, 서울시미래혁신교육 공동추진단장, 산돌학교 공동설립, 산마을 고등학교 이사를 역임하면서 현재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럽의 아름다운 학교와 교육개혁운동(2000)”, “사유하는 교사(2009)”, “상상력으로 교육에 말걸기(2011)” 등의 저서와 “꿈의 학교 헬레네랑에(2012)” 등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간단하게 기술한 것만으로도 교육개혁에 힘을 쏟았던 여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연은 조선말에 내한한 비숍이라는 선교사의 일성으로 시작합니다.(발제문 참고) 송순재 교수는 당시 비숍의 눈에 비친 한국 교육현실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의 시대에도 유효한 비판이라고 강조합니다. 그 비판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교육은 관료문헌적인 인문교육을 중시함으로써 노동과는 동떨어진 교육이 되었다는 점, 그럼으로써 공부하는 사람과 노동하는 사람이 구분되고 노동이 홀대 받는다는 점, 자연스럽게 장인문화가 없었다는 점, 이런 역사와 전통이 현대 교육의 밑바탕까지 스며들었다는 점 등은 가슴 아픈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소위 전문인을 양성하는 직업대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한국 교육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교육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동학사상이나 실학과 같은 세계적으로 내놓을만한 선구적인 철학들도 존재했었고, 안창호, 김교신, 김구, 이찬갑 등등 한국 교육의 밑그림을 제시했던 교육 사상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상가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과 주장을 했는지, 우리 사회와 우리 교육을 어떻게 바꾸려고 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보다는, 그냥 하나의 박제가 된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돼버렸습니다. 한국식 교육의 사상과 혼을 배울 수 있는 우리만의 자산이 있음에도, 저 멀리 서구의 사상가들만 쫒는 이상한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송순재 교수는 혁신학교와 학교혁신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이어나갔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혁신학교는 2009년 경기도교육청이 처음 채택한 정책이고, 그 후 6개 시∙도교육청으로 확산되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정책입니다. 지난 2014년 6월 지방선거 결과로 13개 시∙도교육청에 소위 진보교육감이 진입하면서 혁신학교 정책은 그 화려한 개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혁신학교의 핵심은 입시경쟁교육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야 할 아동의 삶이 주변부로 내쫓기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삶 자체가 교육의 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삶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혁신학교의 초점입니다. 송순재 교수는 “학교는 존재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합니다. 한국 현실에서 답할 수 있는 것은 “대학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는 모두 부수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혹은 비본질적인 존재로 전락한 상태입니다.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삶을 위한 교육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대학만 바라보는 사회이기 때문에 대학입시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송순재 교수는 역발산을 제안합니다. 학교를 학교답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겁니다. 대학입시제도는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처럼 한국사회의 난맥상이 돼버렸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대학입시제도의 대안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바닥에 단단히 뿌리내린 거대한 성곽에 계란을 던지는 양상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혁신학교와 같은 학교 현장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 가면,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그것이 쌓이고 넘쳐서 대학입시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학입시제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위 단위의 학교가 변하는 힘으로 포위해가자는 것이 혁신학교와 같은 아동의 삶을 중심으로 한 교육개혁을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 동안 현장과 호흡해왔던 송순재 교수는 남한산 초등학교에서 가능성을 입증했고 학교폭력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는 중학교의 모델도 만들어왔습니다. 고등학교도 가능합니다. 선사고등학교가 그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그래서 송순재 교수는 혁신학교와 같은 정책을 통해 개혁의 모판을 깔고, 공교육의 표준을 다시 만들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자고 제안합니다. 사회적인 개혁의지가 변화의 희망을 보여주었듯이, 이런 희망의 싹을 틔우면서 대학입시제도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송순재 교수의 주장입니다. 물론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 외에도 송순재 교수는 협력적인 인간교육,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자치공동체 학교 건설, 개성적이고 인격적인 지혜교육, 자율성과 독창성, 다양성을 촉진하는 교육과정, 토론과 참여형 수업, 인문학과 예술∙체육을 통한 전인교육,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교사양성과정의 변화 등을 강조했습니다. 혁신학교가 이런 것을 담보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혁신학교는 정의로운 학교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강연을 통해 여러 의미 있는 사례를 제시했는데, 그 중에서도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efterskole)’의 사례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방과후학교’ 정도가 되겠지만, ‘방과 후에 공부하는 학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즉, ‘에프터스콜레’는 정규과정의 학교이지만, 1년짜리 학교입니다.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 자기가 발전시키고 싶은, 혹은 자신의 장점을 개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에프터스콜레’에서 1년 동안 관심 분야를 조금 더 깊게 배울 수 있는 학교입니다. 당연히 그 과정을 이수하면 정규학년으로 인정해줍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혹은 스포츠에 재능이 있다면 그 분야를 심층적으로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다시 정규과정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러한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를 모델로 해서 올해(2015년) 자유학기제 ‘오딧세이학교’라는 이름으로 시범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5월 개강을 목표로 희망 학생 40명을 모집해 1년간 운영할 계획이며, 성과에 대한 연구를 거쳐 프로그램을 점차 확대해나갈 방침입니다. (자세한 소개는 발제문 참고)

대학입시제도가 교육개혁의 중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대학입시제도가 혹은 대학이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면 한국교육의 시스템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교육개혁의 대안을 대학입시제도의 변화에서 찾으려 합니다. 얼핏 가장 빠른 길처럼 보입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학교라는 현장에 소홀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는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대학진학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한 학교를 묵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학교라는 본연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혁신학교가 됐든 오딧세이학교가 됐든 주변부로 내몰린 학교를 다시 중심으로 끌고 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적 시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우리사회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삶이 있는 한, 우리는 그곳을 직시하며 변화를 꾀해야 합니다. 오늘의 강연이 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김현(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