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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개혁의 맥은 탈표준화로부터!

한국 교육개혁의 맥은 탈표준화로부터!
후기 - “세계 교육개혁의 추세와 한국 학교교육의 제4의 길” - 이찬승 대표 강연

‘리 다니엘스’ 감독의 <프레셔스 Precious, 2013>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배우는가에 따라 그 아이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보면서, 교육이라는 것이 단순히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교육에서 세 가지 요소가 강조되는데, 첫 번째는 가정환경입니다. 한 아이의 재능과 지적 능력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됩니다. 두 번째는 교사입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에 좌우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주인공 클라리스가 가진 숨겨진 재능을 끌어내는 교사의 역할은 탁월했습니다. 세 번째는 사회복지입니다. 가정과 학교로부터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보호하고,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정책은 사회복지시스템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학교제도 만이 교육제도의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슴 시리고 아픈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지만, 그렇다고 아이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영화 <프레셔스> 이야기를 서두에서 꺼낸 이유는 지난 5월 6일, <녹색전환연구소>가 주최한 이찬승 대표(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강연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 이찬승 대표가 강조한 주요 키워드만 나열해보면 이렇습니다. 학교 밖 교육, 교육의 본질적 역할, 사회적 신뢰, 불평등 해소, 공교육 강화, 사회정의, 교육의 비전, 탈표준화, 풀뿌리운동, 학교간 네트워크 등등 제4의 길이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주제어입니다. “세계 교육개혁의 추세와 한국 학교교육의 제4의 길”이라는 주제로 정리된 이찬승 대표의 발표문(녹색전환연구소 홈페이지 게시)은 방대한 데이터를 근거로 교육개혁의 추세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찬승 대표는 교육의 근본적인 역할이 무엇인지를 되물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첫 번째 강연을 맡았던 송순재 교수의 질문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교육문제를 깊게 고민했던 분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육이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연구보고를 살펴보면, 아이들은 삶의 교양을 사회라는 넓은 범주 안에서 배우고 터득하게 됩니다. 이 평범한 상식 위에서 학교교육도 풀려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는 교육의 책무성을 학교라는 틀 안에서만 적용하려 합니다. 시험 성적표는 아이들의 긴 인생의 아주 일부분에 속할 뿐인데 말입니다. 

교육이 위기를 맞았다는 증거는 오래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교육시스템의 부정적인 측면이 긍정적인 측면을 능가했다는 Robert J. Marzano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이찬승 대표는 단적으로 영국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영국은 2003년부터 공교육을 민간으로 넘기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2010년에 이르러서는 3,500개 중․고등학교가 민간으로 넘어갔다고 진단합니다. 불과 7~8년 만에 70-80%의 공교육이 민간으로 넘어간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그래서 이찬승 대표는 “Learning Futures”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영국은 2015년이 되면 과반수의 고등학생들이 의무교육을 떠날 것이다. 2020년이 되면 전통적인 학교는 역사적 흔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라고 암울한 교육의 위기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신인류의 탄생을 맞이했습니다. 컴퓨터, 비디오, 영상물에 노출된 아이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인류입니다. 따라서 이들 신인류에 맞게 미래 학교에 대한 예측과 이에 따른 전략이 도출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회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계층 이동의 어려움은 교육위기의 징후이기도 합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고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5% 혹은 조금 넓게 잡으면 10%에 해당되는 능력을 가진 계층과 나머지 계층으로 나뉘는 이 현상은 ‘중산층의 사라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찬승 대표가 제시하는 교육의 새로운 역할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지속가능성을 최고의 목표로 삼자고 제안합니다. 사회적․경제적․문화적․생태적 지속가능성이 교육 목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초 공교육의 목표만 제대로 수행한다면 사교육은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공교육의 법제화를 통해서라도 파행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둘째, 정의로운 민주시민 교육을 강화할 것을 주문합니다. 이는 SJE(Social Justice Education)라고 하는 사회정의교육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테면, 수학교육을 사회정의와 접목시킬 수 있는데,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수십조 원을 주택, 의료, 빈곤 등에 투자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사람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수학뿐만 아니다 다른 과목과 사회정의를 융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도덕적 교육이념(Moral Purpose)을 추구할 것은 요청합니다. 한국의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준별 수업은 이 이념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준별 교육은 아동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100미터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라면, 어떤 아이는 뛰어서 도달하고, 또 어떤 아이는 걸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휠체어를 타고 가고, 목발을 짚고 걸어가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도달하는 속도와 방법, 코스가 다르더라도 100미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기대치를 낮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도덕적 교육이념의 내용입니다. 넷째, 사회성과 감성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사회적 인식능력이나 관계능력, 자기인식 능력과 자기관리능력, 그리고 책임감 있는 의사결정능력 등은 삶을 살아가는데 실질적인 역량입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교육의 여정과 완전히 단절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면서 유지할 것과 버릴 것을 추려야 합니다. 가령 교육개혁에 있어서 제1의 길이 추구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나 교사의 자율성은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의 효율성과 활력을 꾀하면서 공평성과 형평성을 강조한 제2의 길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취성과 대중의 참여, 교사네트워크 등의 제3의 길의 장점도 살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실패한 요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 위에서 제4의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패의 요인을 개혁하는 것이 제4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3의 길이 실패한 요인은 무엇일까요? 이찬승 대표는 3가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중앙집권주의적인 정부의 무절제한 개입에 있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교육의 표준화로 다양성을 망쳤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가게 됩니다. 모든 관심이 대학입시에 올인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두 번째는 기술/데이터 지상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적과 같은 데이터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판단을 호도하는 경향이 드러납니다. 그런 잘못된 판단이 학교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셋째, 저급한 열정은 또 하나의 요인입니다. 특히 모두가 제도권 교육에 길들여지면서 단기적이고 표피적인 수준으로 교육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찬승 대표는 희망의 근거를 찾기 위해 여섯 나라의 사례를 살펴봅니다. 영국의 RATL프로젝트, 미국의 NCLB, 핀란드의 전반적인 교육정책, 싱가포르의 바람직한 인재교육,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의 사례, 그리고 일본의 센터시험 폐지 등이 그것입니다. 이 중에서 핀란드와 싱가포르를 견줘보면 한국 교육개혁의 방향을 구상해볼 수 있습니다. 사민주의를 바탕으로 발전한 핀란드의 교육개혁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 가장 모범적이라고 이찬승 대표는 부러워합니다. 예방적 관점에서 통합교육의 권장, 교육의 분권화, 교사 자율성에 대한 신뢰, 협동과 책임을 중시하는 공동체 문화 등 30여 년간 정부 차원의 노력은 본받을 것이 많습니다. 이에 비해 중앙집권적 정책 속에서 발전해 온 싱가포르는 사회적 감성을 살리는 교육을 지향합니다. 핀란드로 가는 길이 어렵다면, 싱가포르의 교육정책과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를 되짚어 봅니다. 우리는 가슴 뛰는 통합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시민들의 참여 통로가 열려 있는가? 투자 없이 성과 없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가? 기업은 교육적 책무를 다 하는가? 파트너로서 학생참여가 이루어지는가? 진정한 교수학습은 준비되었는가? 우리에겐 점검해야 할 물음이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교육문제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 정도로 교육이라는 영역은 온 국민을 ‘전문가화’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해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표준화를 탈피하라!’ 제4의 길을 위한 단초입니다. 표준화에 따른 성적이 교육의 결과라고 여겨지는 이상,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아이들은 불행해질 것입니다. 한국 교육이 제로섬게임이라는 외통수에 걸려 있는 느낌입니다.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맥 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맥 점을 잡으면 나머지는 풀립니다.” 서두와 말미에 강조한 내용입니다. 과연 한국 교육개혁의 맥은 무엇일까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강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