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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적막해지는 꿀벌의 계절

꿀벌의 계절이 왔다. 그런데 도시라서 그런가, 꿀벌이 통 보이지 않는다. 벌통을 놓으면 근린공원에 벌이 보인다지만 멀지 않은 과거, 벌통이 주변에 없어도 꽃밭과 음료수 잔 주위를 지배하려는 꿀벌들로 공원이 귀찮았는데, 이제 추억이 되었다. 

4월 둘째 주말이면 수도권의 벚꽃이 만개한다. 그때 넘치는 상춘객 사이를 걷는 이유는 오직, 꿀벌을 보려는 의도다. 유럽과 북미는 ‘벌집군집붕괴현상’으로 걱정이 태산인데, 우리는 태평하다. 여의도 윤중로의 연인도, 불광천의 하얀 길을 걷는 주민도 꿀벌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별 관심이 없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세기 말부터 북미와 유럽에서 심각하게 진행되는 벌집군집붕괴현상이 중동아시아로 퍼진다며 경계 신호를 보냈다. 중국 과수원은 농부가 직접 꽃가루를 수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데, 우리도 그 모양인지 오래다. 벌집군집붕괴현상이 유행병은 아니라지만 통 무감각하니, 이러다 우리나라에 더 위중하게 번지는 건 아닐까? 
UNEP 사무총장이 “인류는 21세기가 되면 자연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져왔지만, 꿀벌은 우리가 자연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방법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던데, 자본과 과학기술을 앞세우면서 여전히 오만하기만 한 인간은 자기 후손의 삶을 안녕하게 이끌 수 있을까? 

윤중로 상춘객의 표정을 신명나게 보도하는 방송매체들은 꿀벌에 전혀 초점을 맞추지 않는데, 우리나라에 벌집군집붕괴현상은 없다고 전문가들은 답한다. 다행인가? 꿀을 찾아 벌통을 빠져나간 꿀벌들이 돌아오지 않는 벌집군집붕괴현상은 아니지만 바이러스가 매개하는 ‘낭충봉아부패병’이 토종벌에 창궐하고 있다고 한다. 토종벌이 아니라면 괜찮은 걸까?

열대 질병인 낭충봉아부패병을 차단하려면 벌통에 소독약을 미리 살포하고 감염된 벌통을 애벌레 채 소각해야 한다는데, 그 질병은 지구온난화가 안내했을 가능성이 높겠다. 헌데 석유가 인도하는 편의에 탐닉하는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통제하지 못한다. 기상이변을 몰고 오는 지구온난화는 생물종의 폭넓은 적응력을 요구하는데, 우리의 사고는 편향돼 있다.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획일주의에 길들어 있다.

토종벌이든 양봉이든, 수컷과 여왕벌이 자유롭게 짝짓기하고 알 낳았다면 군집 내의 유전자는 다양할 테고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개체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꿀벌은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거의 잃고 말았다. 아니, 빨리 많은 꿀을 차지하려는 탐욕이 빼앗았다. 이제 세계 곳곳의 꿀벌은 면역력마저 위축되고 말았다. 꿀은 많이 모으지만 환경변화에 속수무책이다. 

꿀벌 감소는 양봉업자의 소득을 줄이는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3천5백억 원의 소득을 벌꿀로 얻지만 과일이 제공하는 경제적 가치는 8조원에 이른다. 과일 뿐인가? 호박과 같은 채소, 참외나 딸기도 꿀벌이 없다면 재배가 불가능하다. 머지않아 농산물의 가격이 치솟겠지. 나무와 풀도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고 세상은 적막해지겠지.

유럽과 미국의 학자들은 과다한 농약 살포는 물론, 휴대폰 전자파와 유전자조작 농산물에 혐의를 둔다던데,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은 모양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농약에 혐의를 두는 전문가가 미국에 있는데, 프랑스의 그 농약회사는 펄쩍 뛰었단다. “프랑스는 아무 문제없는 걸?” 프랑스 농약회사의 주장은 믿을만할까? 휴대폰 전자파? 막강한 통신회사의 압력과 회유를 이겨낼 독립 과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연구비가 없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세상은 문제의 농약 사용을 포기하고 핸드폰과 무선통신을 거부하며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파종에 저항할까? 활동가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소비자들이 각성한다고 해도, 다국적기업인 농약회사, 통신회사, 생명공학회사가 꿈쩍하지 않겠지. 오히려 연구를 억압하겠지. 기업에 충직한 과학자를 고용해 왜곡된 자료를 언론에 돌리며 독립과학자와 활동가를 윽박지르겠지.

구제역과 조류독감처럼 벌집군집붕괴현상도 사람의 끔찍한 탐욕이 빚었는데, 내일을 걱정하는 소비자의 책임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미국산 쇠고기가 아무리 값 싸고 질 좋다고 홍보해도 한사코 외면하는 소비자들은 농약을 치지 않았으므로 유기농산물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내 땅을 살리려는 농부의 용기를 격려하고 지원하기 위한 우정 어린 행동이다. 그렇다면 어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꿀벌을 키우는 양봉이나 토종벌 업자 없나?

유기농 벌꿀을 찾는 행동만으로 부족하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거부하는 몸짓 못지않게 중요한 행동은 따로 있다. 최첨단으로 치달으며 우리의 뇌를 획일화하려는 풍조에 대한 저항이지만 통 엄두가 나지 않는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4년도 견딜 수 없다고? 우물쭈물하다 꿀벌보다 사람이 먼저 사라질지 모르는데, 휴대폰은 길들여지라고 쉬지 않고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