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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안전!

무엇보다 안전!

박정연(부산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2010년 덴마크에서 제작된 다큐 <영원한 봉인 Into Eternity>은 이렇게 시작한다.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여기는 우리들이 먼 미래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 인류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묻은 곳입니다. 이 시설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곳은 영원히 이대로 손대지 말고 내버려두세요. 건드리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절대로 여기에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하세요. 그러면 안전할 것입니다. 여기는 은폐된 장소입니다.”

미래의 인류가 절대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은폐된 장소”에는 고준위방사선폐기물인 사용후핵폐기물이 묻혀있다. 이 사용후핵폐기물들이 인간과 환경에게 주는 피해가 최소화되는 시간이 최소 10만년이다. 10만 년 이라는 긴 시간동안 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국가가 없어질 수도 있고, 빙하기가 닥치거나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 100년도 아니고 1000년도 아니고 10만년이라는 시간은 예측조차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은폐된 장소는 드러나지 않고 격리될 수 있을까? 

‘은폐된 장소’에 대한 “인간의 침입”, 이것이 폐기물처분장을 준비하는 엔지니어들과 규제기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미래 인류들은 이곳이 성전이나, 무덤, 혹은 보물창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은 폐기물처분장 곳곳에 표식 체계(marker system)를 준비했다. 여러 언어로 돌에 새긴 문자와 그림, 혹은 종이에 적힌 서류도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더 보편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표지판과 비슷한 일러스트를 준비하고 공포를 느끼는 풍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안하여 일그러진 모습으로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표현한 뭉크의 ‘절규’를 경고장으로 쓸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끔찍한 쓰레기를 만드는 핵발전소 하나가 2017년 6월 18일에 멈출 예정이다. 고리 1호기. 고리 1호기는 한국의 핵발전소 중 가장 작은 것이다. 고리 1호기가 멈춘다고 핵폐기물의 양이 급속히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고리 1호기 폐로 결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고리 1호기는 한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상업용 핵발전소 영구정지 대상이다. 고리 1호기로 인해 핵발전소에 대한 법과 제도가 처음으로 제정되었고, 이후 건설된 핵발전소의 선례로 작용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고리 1호기의 폐로 과정 역시 앞으로 15년 동안 11기의 핵발전소 설계수명이 끝나는 한국의 상황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둘째로 고리 1호기 폐로는 부산을 비롯한 전국적인 반핵·탈핵 시민운동의 결과물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이다. 낡은 원전 하나가 멈춘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핵발전소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사회운동의 결과물인 것이다. 셋째는 고리 1호기의 폐로가 에너지 정책에 새로운 장을 열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핵발전에서 벗어난 새로운 에너지시스템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고리 1호기 폐로의 전과정에 걸쳐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점검해 봐야 한다. 우선 고리 1호기 폐로 과정의 원칙부터 정하자. 고리 1호기 폐로의 전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고 담보되어야 할 것은 “경제성”이 아니라 “안전”이다. 핵발전소와 연관되어 너무나 식상한가? 아니다. 안전은 식상하지도 않고 지겹지도 않으며 원칙중의 원칙, 기본중의 기본이다. 지역주민과 국민의 안전은 물론이고 폐로 전과정에 참여하는 작업자의 안전도 담보되어야 하며, 폐로 이후 해당 부지도 발전소가 세워지기 이전과 같이 안전하게 복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제대로 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실제적인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핀란드는 고준위폐기물처분장에 대한 고민을 핵발전소운영 초기부터 시작했고, 1987년 원칙이 되는 법률까지 제정했다. 주된 원칙은 첫째, 미래의 세대가 짊어지게 될 의무의 경감, 둘째, 미래 세대의 보호, 셋째, 폐기물처분장에 대한 정보를 미래 세대에게 알려가는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영구정지가 코앞인데, 해체를 어느 기관이 담당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정해진 것이 없다. 사고의 위험성을 대비한 안전관리 규정과 사고 책임에 관한 법령도 만들어야 한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해체 산업 시장의 독과점과 불공정한 상거래를 방지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해야 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입찰절차가 시행되도록 하는 관리 규정도 필요하다. 폐로이후에도 사용후핵폐기물을 옆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지역주민에 대한 안전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핵발전 관계자가 아닌 시민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고 실질적으로 정책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이들의 참여와 함께 안전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를 비롯한 모든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민, 정부, 산업계, 학계,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거버넌스, 혹은 독립된 전담 조직이나 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또한 바닥으로 떨어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신뢰를 회복하고, 원안위 본연의 임무인 규제와 감시의 역할을 더 강화하도록 압박을 할 필요도 있다. 이 정도의 과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만약 이 과정이 생략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