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연구소 로고
알림 - 칼럼
작은 집이 아름답다

녹색전환 _ 삶의 기술

작은 ‘집’이 아름답다

김현 (모심과살림연구소)

삶에서 꼭 필요한 물건은 사실 몇 가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배낭을 짊어지고 떠난 여행길에서라거나. 그처럼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내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집이 있다면 그런 여행 같은 삶을 꿈꾸는 이들이 탐낼 만한 ‘아이템’일 것이다. 만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이 ‘집’은 실제 마르탱 루이스 데 아수아라는 건축가에 의해 실물로 구현됐다. 공기를 주입하면 금속성 폴리에스테르로 된 8제곱미터의 공간이 만들어져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아주 기본적인’ 집의 기능을 하는데, 물에 뜰 정도로 가벼운데다 언제 어디서든 접고 펼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단순함과 배제를 극대화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모두 충족시키는 제품을 요구하는 현대인의 태도’에 철저한 무시로 응수하는 이 ‘작품’은 ‘집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다. 실로, 지난 수십 년은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집의 크기를 키워온 시간이었고, 덩달아 늘어난 것은 부록처럼 딸려온 ‘빚’이었다. 그리고 넓어진 공간을 야금야금 채워가는 물건들은 ‘보다 더 큰’ 집에 대한 갈증을 끊임없이 부채질한다.
집의 크기만큼이나 비대해져버린 우리 삶의 외형을 마주할 때 얼핏 스치는 당혹감. 그런데 과감히 집을 줄임으로써 선후관계를 알 수 없는 그 매듭으로부터 탈출한 이들이 있다. 실제 거주하기에 무리가 없으면서 삶의 무게를 최소화한 집은 어느 정도 크기일까? 저마다의 기준이 있겠지만 그들이 사는 ‘작은 집’은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작은집’을 선택한 사람들
언제부턴가 ‘스몰하우스(small house)’라는 말은 단지 ‘작은+집’의 조합이 아닌 하나의 고유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소형주택’보다는 말 그대로 ‘작은집’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동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집.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것은 큰 집에 대한 꿈을 잠시 유예한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작은집’을 주거 공간으로 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은 이제 개인적 삶을 넘어 하나의 ‘운동(movement)’이 되었다.

1999년 자신이 지은 집에 처음 ‘스몰하우스’라 이름 붙인 제이 셰퍼(Jay Shafer)는 그저 ‘많은 물건과 공간에 신경 쓰지 않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작은집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당시 그가 지은 집은 10㎡(3평)가 채 되지 않았다.) 뒤이어 이 ‘스몰하우스’ 대열에 동참한 많은 이들 또한 소유를 줄이고, 환경에 영향을 덜 주면서, 자유롭게 본연의 욕구에 보다 충실한 삶을 살고자 작은집으로의 이주를 실행에 옮겼다.
이쯤 되면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의 단조롭고 남루한 집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집들은 대부분 생활에 필요한 기본 설비와 집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옵션’을 갖추고 있으며, 디자인적으로도 훌륭하다. 트레일러 위에 설계할 경우 이동성은 ‘덤’이다.

집을 얻는 비용에 인생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거나, 언제 비워줘야 할지 모를 집이 아닌 ‘나만의 안정적인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작은집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 여기서 ‘내 집’은 단지 소유의 의미만이 아닌 내 생각과 삶의 표정이 묻어나는 집을 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삶의 질’과 맞바꾸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점, 오히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스몰하우스’에서 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데서 작은집운동(small house movement)의 확산 가능성을 본다.

슈마허 이후 40여 년, 다시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작은집운동은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혹시나 불필요한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삶을 지어 나가는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작은집운동은 단지 구호로서가 아니라 그 안에 각양각색의 삶의 모습과 스토리를 채워나감으로써 조용한 공감 속에서 퍼져 나가고 있다.

‘적당함’의 미학과 ‘뺄셈’의 기술
규모가 작고 단순해질수록 집짓기는 전문가의 영역에서 벗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작은집운동이 활발한 미국의 경우 DIY가 발달한 문화적 배경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마추어 빌더(builder)들의 건축에서는 생활과 만나는 ‘적당한’ 기술의 진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제주에서 ‘월정리 작은집’을 설계한 작은집연구소(aboutzip.kr)에서도 작은 집의 취지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내 손으로 집 짓기’를 꼽는다. 필요할 때 전문가를 섭외하되 가능한 동네 일꾼을 포섭하는 것으로 작업을 진행하니, “그들은 일감이 생기고 건축주는 건축의 경험을 공유하고 친구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집 짓는 과정에서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거나 건축 폐자재를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태양광 패널과 빗물 정수 시설을 활용하면 외부 에너지나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현저히 낮출 수 있다. 작은집은 이처럼 거대 공급망에 가려져 있던 소규모 생산과 자급, 자원 (재)활용의 기술을 삶의 영역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작은집을 설계할 때 유용한 ‘뺄셈의 기술’은 공간을 채우는 물건과 생활의 규모에 있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작은 집을 권하다』라는 책에 소개된 이들의 경우, 생활공간과 수납공간을 분리해 물건들을 한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보관하다 정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처분하거나, 자신이 소유한 물건의 수에 스스로 제한을 두고 (게임의 룰처럼) 그 규칙을 지키는 방법 등으로 삶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작은집’이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괴짜 같은 삶의 방식을 넘어서는 지점은 적게 소유하고 더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흐름과 맞닿을 때 보다 명확해진다. 작은집운동의 선구자 제이 셰퍼 역시 “돈과 외부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고 생활에 필요한 설비를 공유하여 낭비 없는 생활이 가능한 장소를 만들고자 시도”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주방이나 세탁기, 화장실, 샤워 시설 등을 공유하는, 일종의 ‘작은집 커뮤니티’다.
집을 줄이고 집 밖의 공유 공간을 늘려 갈 때 ‘작은 집에서 넓게 사는 삶(Living large in small house)’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는 비단 작은집 커뮤니티만이 아니라 공동주택과 아파트에서 행해지고 있거나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당신과 우리를 위한 ‘작은집’
‘주거 빈곤’과 ‘하우스푸어’ 시대에 스몰하우스가 획기적인 대안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에너지 위기 등 보다 근본적인 현실 진단에 다다르면, 작은집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질 몇 안 되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의 작은 집과 그 빌더들을 소개한 책 『로이드 칸의 아주 작은 집』의 표지 문구는 지금 ‘작은 집’에 주목하는 까닭의 한 줄 요약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줄이고, 직접 만들며, 이동하고, 자급자족하는 21세기형 삶의 선택”

더불어, 독립적으로 생활하되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작은집 커뮤니티 모델은 꼭 붙들고 싶은 대안이다. 소박하고 생태적인 생활과 동시에 멋과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는 당신에게, 작은 집을 권한다.

참고
『작은 집을 권하다』 다카무라 토모야, 오근영 역, 책읽는수요일, 2013.
『작은 집이 아름답다』 필리츠 리처드슨, 윤길순 역, 동녘, 2015.
『로이드 칸의 아주 작은 집』 로이드 칸, 이주만 역, 한스미디어, 2013.
“작은집운동의 확산과 빚 없는 삶” 하만조, 『모심과 살림』 5호, 모심과살림연구소, 2015.
“제주 자연 안에 들어선 3평의 작은집” MK뉴스, 2014.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