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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밥이 되는 시간

녹색전환 _ 삶, 생활 이야기 

소설 <봉순이 언니>에는 토스트와 우유로 아침식사를 하는 가족들 틈에서 전날 저녁에 남겨놓은 찬밥을 국에 말아 먹는 봉순이 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때는 1960년대, 밥상의 변화를 거부하고 쌀밥을 고수하는 봉순이 언니와 달리 화자인 ‘나’의 엄마처럼 “우리보다 잘사는 서양 사람들도 이 빵만 먹는다”며 자발적으로 ‘서구식 식생활’를 택한 이들도 있었다. 게다가 대대적으로 ‘혼분식’을 장려(혹은 강제)하고 ‘무미일(無米日)’을 제정하는 등의 정책이 더해지면서 많은 ‘봉순이 언니’들도 마지못해 입맛을 바꿔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귀하던 쌀이 남아돈다. 생산량은 해마다 줄고 있지만 소비는 더 가파르게 줄어드는 탓이다. 바뀐 입맛은 고스란히 우리 밥상과 식생활 문화에 스며들었다. 2014년 또 다시 최저치를 경신한 1인당 쌀 소비량은 65.1kg으로 1970년과 비교하면 절반을 훨씬 밑도는 수준. 하루 소비량으로 환산했을 때는 약 170g으로 두 공기가 채 안 되는 양이다. 한편 밀가루 소비량은 1인당 33.6kg로 쌀의 절반가량이며, 우유를 쌀보다 더 많이 먹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통계도 있다.(원유 기준, 1인당 72.4kg)

쌀밥이 중심이었던 밥상에서 이제 주연급 자리를 꿰찬 빵과 면, 육류까지. 다채로워진 먹거리들 틈에서 새삼스레 쌀을 걱정한다. ‘무미일’이 있던 그 시절로부터 반세기 남짓 지나, 정부는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8월 18일을 ‘쌀의 날’로 지정했다.

집밥, 요리, 그리고 쌀

‘아침엔 우유 한 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1990년대 한 대중가요는 바쁜 도시인의 삶을 이렇게 노래했다. ‘밥‘ 차리고 먹는 시간을 노동과 맞바꾼 삶. 2015년 식으로 말하면 ’저녁이 없는 삶‘ 정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집밥은 브라운관 속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현실은 잦은 외식과 간편식 매출의 고공행진이다. 쌀 소비가 줄어든 이유를 ’입맛의 변화‘에서만 찾을 수 없는 까닭이다. 손쉬운 집밥 레시피들이 쏟아지지만, 동시에 ’혼밥‘(혼자 밥 먹기)이 늘면서 집에서도 밖에서도 ’차려진‘ 밥상보다 적당히 ’때우는‘ 식사가 잦아졌다. 한국인의 주당 평균 요리시간은 3.7시간으로 조사 대상 22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gfk.com, 2014년 조사)

정부와 민간에서 ‘아침밥 먹기’라든가 쌀을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제공하는 등 쌀 소비를 촉진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지만 음식의 선택 폭은 넓어지고 한편에선 시간빈곤에 시달리는 요즘, 그러한 노력이 실제 쌀 소비로 얼마만큼 이어질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때 그 시절처럼 국가가 입맛을 ‘강제’할 수 없음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리고 골라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넘쳐나는 풍요로움에 감사하지만, ‘우리 쌀’, 지켜주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걸까?

책임지는 소비의 미덕

조합원으로 있는 생협에서도 아직 공급되지 않고 쌓여 있는 쌀이 걱정이다. ‘책임소비’를 위해 지인들에게 쌀을 선물하고 집에서 먹을 쌀을 구입하면서, 밥상의 변화 속에서도 ‘쌀을 (더 많이) 먹어야 하는 까닭‘을 자문해본다. 우리 농업의 상징과도 같은 ‘쌀’의 의미, 식량자급을 위한 마지막 보루, 논의 생태적 기능까지 여러 이유들을 들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고 우리와 가장 가까운 먹을거리’라는 당연한 이유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실제로 프랑스의 식생활교육에서는 자국에서 빵을 먹는 이유에 대해 ‘밀이 제일 많이 나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생협에서 책임소비는 생산자들의 ‘생활’을 보장하고 이후 약정량을 줄이지 않기 위한 소비자들의 의무다. 생산자들이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될 때 그들의 생계뿐 아니라 애써 가꿔온 유기 논을 유지하고 결국 다시 우리의 밥으로 돌아오는 끊임없는 순환.

나라 전체적으로도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책임소비가 필요한 것은 다르지 않다. 어려운 농업 현실 탓에 논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도 늘고 있지만, 여느 작물처럼 가격경쟁력을 이유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당연하게 먹어왔고 앞으로도 먹어야 할 ‘쌀’의 특별함이다.

말 많던 쌀 시장은 올해부터 전면 개방되었다. 별다른 준비와 대책 없이 시장에 내맡겨버린 ‘책임’은 묻되,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밥상의 주인으로서 책임지는 소비의 미덕.

그래서, 다시 열심히 밥을 짓는다. 쌀을 먹는 일은 도시에서 부엌에서 농사짓는 일이다. 농민 기본소득이 심심찮게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에 앞서 농업이 공공의 영역이라는 공감대가 우선이라면, 그 공공의 영역을 훼손하지 않고 또한 농부라는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직업이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밥 짓는 일이다. 농업은 농민에게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 이 땅에서 밥 먹는 모두의 일이다. ‘쌀이 밥이 되는 시간’, 삼시세끼 밥 지어 먹는 그 시간만큼은 인색해지지 않고 보다 ‘넉넉해졌으면’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