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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을 연결하는 기본소득" - 기본소득 심포지엄 후기 (1)

 

※ 지난 11월 21일, 하자센터에서 열린 <기본소득 심포지엄> 후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이번 호는 1부에서 진행한 “4인4색 토크쇼”의 후기입니다.

 

헬조선, 노오력, 금수저, 흙수저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것만큼,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이나 국정교과서 추진의 논리가 아전인수 격이라서, 과거로의 퇴행을 넘어 파시즘이 도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 서울시와 성남시가 추진 중인 청년 정책을 대하는 태도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정부는 “지자체가 복지사업을 신설할 때 중앙정부와 협의하지 않으면 복지사업 예산만큼 정부가 지원하는 교부세를 삭감한다”는 시행령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서울시나 성남시가 청년복지정책에 예산을 투입한다면, 박근혜 정부가 그 예산만큼의 교부금을 내려주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포퓰리즘을 내밉니다. 서울시와 성남시 청년정책이 포퓰리즘에 기반했다는 논리입니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대부분의 복지정책은 포퓰리즘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한 유권자에게 지원해주는 것이 복지예산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선거운동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대표적입니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이 역시 포퓰리즘이고,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심지어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지자체의 과한 복지사업은 ‘범죄’로 규정될 수 있다”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협박성(?) 발언을 했습니다. 서울시의 청년정책이 범죄라면 복지선진국이라 불리는 북유럽 국가들은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궁금해집니다. 여론이 들썩이자 정종섭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범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그것의 진위를 떠나, 복지를 지속적으로 축소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의도가 제대로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헬(Hell)조선’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조어가 됐습니다. 정부는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지옥과 다름없는 대한민국’을 표현하는 뜻입니다. 언뜻 섬뜩한 것 같지만, 불안한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절망과 분노를 감안하면 오히려 부족한 신조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노오력’해도 나아지지 않고, 소수의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 다수의 ‘흙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사회, 그래서 많은 이들은 ‘탈조선’을 꿈꾸기도 합니다.

 

전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절반의 노인이 빈곤상태에 처했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청소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살률, 가계부채, 불안정노동 등등 지옥이라고 느낄만한 지표들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소수의 가진 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삶의 불안감이 대다수 국민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입니다. 더 우울한 것은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사회는 최저 삶을 보장하는 비빌 언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지난 11월 21일, <하자센터> ‘하하허허홀’에서 개최된 ‘기본소득 심포지엄’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기본소득을 연구해왔던 <녹색전환연구소>와 <녹색당>이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행사였기 때문입니다. 참석자들은 “실현하자 기본소득!”이라는 구호가 적합하다는데 이견을 달지 않았습니다. 기본소득 실현 이후의 상상은 무척 즐거운 일이지만, 지금은 실현시킬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행사 프로그램도 1부는 4인의 토크쇼를 통해 기본소득을 상상하는 시간이었고, 2부는 분야별 쟁점을 살펴보면서 세부적인 로드맵을 토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기본소득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1부 “4인 토크쇼”는 음악을 업으로 살아가는 김영준 뮤지션과 다큐를 찍는 남순아 영화감독, 대학원을 다니는 백희원 청년 그리고 보성에서 농사짓는 최혁봉 농민 등 ‘불안정 노동’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렸습니다. 우선, 김영준 뮤지션은 이 날 행사를 위해 ‘기본소득 노래’를 만들어오겠다고 약속했었고, 약속대로 멋진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지면상으로 들려주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음원 작업이 마무리되면 녹색당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전에 소개하기도 했지만, 김영준 뮤지션은 ‘전국세입자협회’에서 주거권운동을 꾸준히 해온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생계 걱정 없이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싶지만, 눈앞에 놓인 현실은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돈을 벌지? 이 잡념에 사로잡히다보면 그 외 소중한 삶의 가치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이 너무 비참했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기본소득은 삶이 가르쳐준 대안이었습니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라는 다큐를 찍은 남순아 감독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남순아 감독은 아빠로부터 70만원의 용돈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힘들게 살아가는 주변 친구들을 보게 됩니다. 그 친구들이 누군가로부터 용돈을 받지 않으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도덕윤리에 어긋난다는 자각, 노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몫을 다 하지 못하는 자책, 그래서 남순아 감독은 스스로를 불량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용돈을 받을 때 도둑질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죄책감에 남순아 감독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죄책감이 사라지기는커녕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친구들은 경제적 독립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유예합니다. 저임금과 주거비를 고려했을 때 경제적 독립은 삶의 질을 낮추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삶의 질이 낮더라도 경제적 독립을 선택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부모로부터의 지원 없이 주체적 삶을 선택한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합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임금(알바)노동시장에 편입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독립은 불안한 삶의 시작입니다. 일터에 따라 생계가 좌우되는 친구들은 “삶은 노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불안한 미래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선택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순아 감독은 기본소득에 주목했습니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라는 다큐가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불안에 떨지 않고 살아가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다큐는 말합니다. 어쩌다 부모님을 잘 만나서 ‘금수저’를 갖고 태어나서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당당하게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남순아 감독은 말합니다.

 

청년이 처한 징표 - 유니클로와 김혜자고등어조림 도시락

 

진솔하게 자기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백희원 운영위원은 청년이면서 예비구직자입니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향후 10년간은 내 노동을 팔지 않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고 배움이 있는 일 위주로 선택”할 것이라고 백희원 운영위원은 말합니다. 청년은 미래를 준비하는 여정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실험과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시기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미래까지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습니다. 당장 일하지 않으면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끼 식사를 두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백희원 운영위원도 알바를 찾습니다. “현재 벌어먹기 위해 미래를 팔아먹고 살아야”하는 현실에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 사례를 말하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중저가 브랜드인 ‘유니클로’가 온 몸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유니클로’ 할인행사는 참새 방앗간입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김혜자고등어조림 도시락’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집에서 해먹는 밥보다 편리하고 맛있고 가격도 저렴합니다. 몸에 좋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유니클로’와 ‘김혜자고등어조림 도시락’은 어느새 청년의 삶을 상징하는 징표가 되었습니다. 편의점을 둘러보니, 정말 ‘김혜자고등어조림 도시락’이 있었습니다. 3,000원대였고, 6가지 반찬이 있었습니다. 제가 청년이었어도 이 도시락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백희원 운영위원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집 밥을 해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2015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네요.

 

장애인에게도 기본소득과 같은 비빌언덕이 필요하다고 백희원 운영위원은 말합니다. 발달장애를 지닌 동생은 열심히 공부해서 획득한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눌한 말투지만 커피 하나만은 잘 다룰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취직해서 하는 일은 설거지였습니다. 대한민국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장애인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장애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뒷배가 된다고 백희원 운영위원은 말합니다.

 

농민의 예견된 궁핍, 국가의 책임

 

농민에게도 기본소득은 절박한 문제입니다. 토크쇼에 참여한 전남녹색당 최혁봉 운영위원장은 전남 벌교로 귀농한지 11년이 된 농부입니다. 유기농으로 고구마와 키위를 키워 살아갑니다. 농사짓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살림살이도 더불어 늘어납니다. 땅이 있어야 농사도 짓고, 농기계도 장만해야 하고 고구마 저장 토굴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유지비가 늘어나고 농지가 넓어지면서, 1억 2천의 빚이 생겼습니다.

 

농가 평균 1년 농업수입이 1천만 원 규모입니다. 농가당 평균 빚은 3천만 원입니다. 7년 상환, 연리 2%를 하더라도 매년 460만원을 갚아야 합니다. 수입의 50% 가까이는 은행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남성의 경우 여름 농한기에는 공사 현장 일용직으로, 여성의 경우 식당이나 각종 잡일로 생활을 유지합니다. 최혁봉 위원장도 농사와 가공품, 목공일, 그리고 공사현장 일용직으로 생활을 버티고 있습니다. 이것이 농업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의문이 생깁니다. 농민의 궁핍이 왜 생기는 것일까? 왜 게으름피우지 않고 1년 동안 열심히 농사일에 몰두해도 먹고 살기 힘든 농민이 대다수일까? 최혁봉 위원장은 국가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우루과이라운드부터 최근의 한중FTA, 그리고 정부가 참여의지를 보인 TPP까지, 정부가 농업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질 기미도 없습니다. 상업과 공업이 중심이 된 산업구조가 이어지는 한, 정권이 바뀌어도 근본문제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농민의 궁핍은 예견된 경로입니다.

 

20년 전과 지금의 쌀값은 똑같습니다. 올해 쌀 한 가마는 15만-16만 선에서 수매가 됐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국가는 대농을 장려합니다. 대농은 농산물 가격이 소폭으로 오르더라도 농사량 자체가 많다보니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농민들도 자의건 타의건 대농의 길을 선택하지만 대부분은 좌절합니다. 궁핍한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소득이 이 현상을 극복하는데 가장 강력한 정책이라고 최혁봉 위원장은 확신합니다.

 

농민에게 기본소득은 자율성을 부여합니다. 정부가 정해준 농업정책의 틀을 거부하면서 자율적으로 자신의 조건에 맞는 농사를 해나갈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농민에게도 뒷배가 되어줍니다. 최혁봉 위원장은 기본소득이 실현되면 당장 두 가지 일을 해보고 싶어 합니다. 하나는 ‘녹색당(堂)’을 만들 계획입니다. ‘집 당(堂)’인 ‘녹색당’은 전국사무처 활동가든, 당원이든 누구라도 아무 때나 찾아와서 쉬어 갈 수 있는 ‘녹색의 집’입니다. 또 하나는 벌교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보려 합니다. 전남도의원 후보로 출마했던 2014년 지방선거 결과는 최혁봉 위원장에게는 고무적인 결과였습니다. 낙선은 했지만, 정치판을 바꿀 수 있는 희망도 목격했습니다. 생계에 허덕이지 않는다면, 녹색정치를 꽃피울 수 있겠다는 것이 최혁봉 위원장의 생각입니다.

 

진정한 ‘부’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

 

농민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정치적 의제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아무리 뛰어다녀도 농민 스스로 위기에 처한 농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있는 형국입니다. 물론 기본소득만으로 농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혁봉 위원장은 기본소득에서 한 가닥 희망을 찾습니다. 자율적 농민이 될 수 있고, 정치적 시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소비자의 밥상은 농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건강한 밥상을 위해서라도 농민이 불행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국민의 건강은 농민의 여유로운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창작활동에 집중하고 싶은 뮤지션, 또래 친구들에게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청년,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고 싶은 대학원생, 그리고 농사일에만 전념하고 싶은 농민까지, 처한 조건과 목표가 다르지만 이들의 필요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것은 기본소득이었습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부’가 아닙니다. ‘부’는 필요하지 않는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조장할 뿐입니다. 진정한 ‘부’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시간을 쓸 수 있는 여건입니다. 기본소득은 그 여건을 제공해주는 단초라는 것을 ‘4인 4색 토크쇼’ 참여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