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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살겠다. 기본소득!" - 기본소득 심포지엄 후기 (2)

“못 살겠다, 기본소득!!”

<기본소득 심포지엄 - 헬조선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제안> 후기 (2)

 

 

※ 지난 11월 21일, 하자센터에서 열린 <기본소득 심포지엄>의 두 번째 후기입니다. 심포지엄 2부에서 진행한 “기본소득 로드맵을 말하다” 토론회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1부는 4명의 출연자들이 기본소득을 상상하는 자리였습니다. 나는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가,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나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각자가 처한 조건은 달랐지만 기본소득은 이들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불안한 삶의 든든한 뒷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2월 7일, 한국 언론은 핀란드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핀란드 정부가 매달 800유로(한화 약 101만원)를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 정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70%의 국민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주요 정당들도 이 계획을 지지하고 있어서 실현 가능성은 매우 커 보입니다. 시필레 총리는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체계의 간소화를 뜻한다”고 이 정책의 취지를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핀란드가 기본소득을 검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실업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에 따르면 핀란드 실업률은 15년 만에 9.53%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청년실업률은 22.7%까지 올랐습니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제시된 것입니다. 핀란드 담당공무원은 캐나다 도핀 마을의 사례를 들며(1974-79년 기본소득 실험), 사회․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고 밝혔습니다. 우간다과 네덜란드의 일부 도시, 그리고 내년에 스위스에서 진행될 국민투표를 보더라도 기본소득은 머지않아 현실의 정책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같은 달, 네덜란드 19개 지방정부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을 긍정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사회보장급여 수급자에게 기존의 수당 대신 약 115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16년은 기본소득이 더 많이 회자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스위스는 헌법에 기본소득을 명시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됩니다. 핀란드도 내년 말에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 성남시도 지난 11월 25일, 청년배당조례가 통과시켰고, 2016년 1월 20일부터 24세 청년들에게 청년배당을 지급했습니다. 조금 과하게 말한다면, 2016년은 기본소독의 원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녹색당은 현 정당으로서는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당론으로 채택했습니다. 지난 11월 21일 <기본소득 심포지엄>은 녹색당의 기본소득 로드맵이 발표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1부가 끝나고 2부에서, 녹색전환연구소 이상헌 소장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본소득 연구 결과를 쟁점 위주로 발표했고,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녹색당의 기본소득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재원마련, 주거권, 빈곤, 교육 그리고 노동 등 다섯 개 분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우선, 가장 큰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재원 분야입니다. 우리나라도 OECD 평균 조세부담률을 적용하면 기본소득 재원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이상헌 소장은 기본소득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의지와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하고 공론화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기본소득은 복지정책과 충돌합니다. 무상보육이나 기초생활보장, 연금 부분과 같이 기존 제도와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전면적인 실시라기보다는 아동수당이나 학생수당 등으로 시작하는 것이 정치적 효과가 클 수도 있습니다. 증세와 관련해서 법인세 인상으로 물꼬를 트고, 소득세 강화 등으로 점차 확대함으로써 점진적 증세로 설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북유럽처럼 획기적인 증세의 사례도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어렵고, 어떤 것이 덜 어렵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증세한다면 확실하게 누구나 혜택 받는다는 사회적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단계적 증세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 번째 쟁점은 주거권입니다. 이상헌 소장은 기본소득만으로 주거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힙니다. 기본소득은 주거권 문제를 풀기 위한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논의 내용을 전달하면서, 주거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개인능력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합니다. 주거빈곤 계층이 처한 상황은 말 할 것도 없고, 서민이나 중산층의 주거여건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부동산 임대를 통한 일정 정도의 불로소득을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어쨌든 기본소득은 인권으로서의 주거권 확보와 병행하여 추진되어야 하고, 주거권은 현실적인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쟁점은 빈곤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전 인구 중, 월 소득 77만원(중위소득의 50%) 미만의 빈곤인구가 824만 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평균으로 환산하면 월평균 28만원의 소득입니다. 기본소득을 설계한다면 공공부조는 어느 형태로든 존재해야 하고, 적정한 최저소득과 기본소득을 독립적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30-40만원의 기본소득 만으로는 빈곤을 해소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보편적 소득보장정책으로 가는 것이 훨씬 더 중산층의 지지를 받기 쉽습니다. 지지기반도 넓어집니다. 물론 무임승차의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비윤리적인 것이 아닌가,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왜 소득을 지급하는가 등의 집요한 공세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런 질문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대안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가, 기본소득의 가장 큰 난관일 수 있습니다.

 

물질적 빈곤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빈곤화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상헌 소장은 “실존과 소통의 빈곤화 현상의 만연”에 대해, 한국의 경제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상태에서 탈근대적인 고용위기를 폭력적으로 부채질하는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합니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가 말한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사회분위기가 고착화된다는 데 있습니다. 파시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빈곤에 공동으로 맞서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본소득이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그래서 빈곤문제 해소만으로 축소시킬 것이 이니라, 공동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그래서 “못살겠다, 기본소득”과 같은 선언을 가지고, 기본소득을 출현시키면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네 번째 쟁점은 교육입니다. 불안정노동과 실업이 늘어나면서 학력인증이나 소득보장을 담보로 억지로 유지되는 학교교육이 무의미해졌습니다. 학교교육이 노동고용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의 가장 큰 효과 중에 하나는, 노동을 통해서 소득을 얻고 이를 통해서 생계를 보장받는다는 근대 모델을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이상헌 소장은 소개합니다. 개인의 능력주의를 근간에 깔고, 경쟁을 통한 보상과 차별을 원리로 하는 기존 학교 교육은 어찌 보면 기본소득의 이념에 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래서 다른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보장이 필요한데, 기본소득이 이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고, 다양한 삶의 꼴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쟁점은 노동입니다. 비정규직 확산과 근로빈곤 심화로 인해 노동소득분배율은 갈수록 낮아져서 노동자간 임금 불평등이 OECD국가 중 최악의 상황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소득불평등구조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실시되어도 최저임금제는 현실에 맞는 금액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한국은 OECD 2위의 장시간노동국가(2163시간, 독일은 1383시간)입니다. 노동시간만 단축하더라도 일자리 창출효과는 지대합니다. 하루 7시간 혹은 주 4일 노동을 이야기할 때, 기본소득과 노동시간단축이 연동하는 방안은 불안정노동자에게는 커다란 이익입니다. 시간당 임금이 낮은 불안정노동자의 경우에는 노동시간단축으로 인한 소득감소분보다 기본소득을 통한 소득 증대분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상헌 소장은 기본소득은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1만원과 병행되어야 불안정 노동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본소득은 탈노동(탈자본)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노동문제의 인식 및 해결 프레임의 혁명적 전환을 요구할 필요가 있고, 기본소득을 매개로 광범위한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전면적인 운동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현실만큼, 정치적 현실가능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핵심과제라며 끝을 맺었습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준비한 PPT를 통해 녹색당의 기본소득 로드맵을 설명했습니다. 하승수 위원장은 여러 계층의 위기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청소년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도는 비교 가능한 국가 중에 최하위입니다. 매년 비교 자료가 나올 때마다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청소년들에게도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많은 나라들은 아동수당, 학생수당, 구직수당 등이 보장됩니다. 우리나라는 고작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학자금 보조를 해줄 뿐입니다.

 

노인들에게도 한국사회는 헬조선입니다. 노인들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렇게 된 요인은 빈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평균 빈곤율보다 노인빈곤률이 3배 이상 높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노인의 49%가 빈곤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대한민국 노인 절반이 빈곤상태라는 겁니다. 네덜란드의 노인빈곤률은 1.6%에 불과합니다. 네덜란드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1,079유로를 지급합니다. 환율로 130여만 원이 매월 지급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에서 50년만 거주하면 모든 이들에게 무조건으로 지급됩니다.

 

농민에게도 기본소득이 필요합니다. 1990년 중반부터 도시근로자와 농가의 소득이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의해 농산물이 개방된 시점과 맞물려 있습니다. 하승수 위원장은 이 자료를 보여주며, 농가소득의 축소는 농민의 탓이 아니라 국가가 시장개방을 한 탓이라고 강조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돈을 줍니다. EU는 농민들에게 직접 주는 직불금의 비중이 32%가 넘습니다. 우리나라는 4%에 불과합니다. 농산물 시장개방은 결과적으로 농민들의 소득을 착취한 것이고, 약탈한 것입니다. 스위스는 농가소득 중에 직불금이 50%가 넘습니다.

 

모두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노인연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하고, 장애인 연금 지급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승수 위원장은 각자도생만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작은 파이를 더 잘게 쪼개야 하는 형국에서는 모두의 어려움이 지속될 뿐입니다. 파편화된 운동을 묶을 수 있는 연대의 고리가 필요합니다. 그 매개가 기본소득이라고 하승수 위원장은 말합니다.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세력이라면 기본소득은 훌륭한 연대의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소득이 복지예산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녹색당의 로드맵이 최저임금 현실화, 주거기본권 보장 등과 연계하는 이유입니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승수 위원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이라고 소개합니다. 첫째, 조세형평성을 강화하는 것, 둘째 예산낭비를 줄이는 것, 셋째 중복 복지예산은 통합하는 것 등이 기본 방향입니다. 조세형평성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국민부담률을 OECD 평균으로 끌어올리면 상당한 세수가 마련됩니다.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은 24.3%지만 OECD국가들의 평균은 34.1%입니다. 약 10%만 끌어올리면 전 국민에게 매달 30만원의 기본소득 재원이 마련됩니다. 증세에 대한 국민 저항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녹색당은 2단계 방안을 제시합니다. 1단계에서는 중․하위 근로소득자들의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조세형평성을 강화하고, 2단계는 이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보편증세를 하는 것입니다. 보다 세세한 방안은 녹색당의 기본소득 로드맵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둘째, 4대강 사업과 같을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줄이면 상당한 재원이 확보됩니다. 셋째 중복 복지예산을 통합할 수 있는데,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대표적입니다. 현재 70%의 노인에게 지급되는 월 2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은 기본소득의 성격과 같습니다. 이를 통합하여 40만원을 지급하면 노인들에겐 더 이득입니다.

   

1단계에서는 현재의 구조에서 가장 취약하면서 빈곤율이 심한 사람들에게 우선 지급합니다. 청(소)년과 노인, 장애인, 농어민 등이 대상입니다. 물론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 등은 기본소득만으로 생활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녹색당 로드맵에는 보충급여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명칭을 어떻게 정하든, 기초생활보장선을 정하고 이에 미달된 사람들에겐 보충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 됩니다. 이렇게 1단계에서 우선 지급하는 사람들은 총 2,100만 명이 됩니다. 1단계 증세로 확보되는 재원은 65.1조원이고, 이는 국민 조세부담률이 4% 가량 증가한 수치입니다. OECD 국가들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2단계에서는 모든 이들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됩니다.

 

하승수 위원장은 ‘상상’을 넘어 ‘실현’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미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 20만원을 70%의 노인들에게 제공하고 있고, 성남시가 청년배당을 2016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그리 낯선 정책이 아닙니다.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니고, 실현 불가능한 몽상가들의 정책도 아닙니다. 오히려 부분적 기본소득을 국가 정책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녹색당의 기본소득 로드맵이 이런 논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이남신 소장은 노동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이 ‘존재소득’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합니다. 공동체 성원이라면 마땅히 최저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접근은 노동운동가로서 신선한 제안이었습니다. 기본소득이 전체 사회운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최근 몇 년간 비정규노동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쟁점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임금과 불안정고용으로 대표되는 비정규 문제나 중소임대사업장의 노동자 문제가 정치권이나 사회여론 수준에서 주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뜨거운 화두였습니다. 그러나 이남신 소장은 현실에서의 계승은 미진하다고 분석합니다. 그래서 과연 출구가 있을 것인가? 이남신 소장은 정책 의제 수준에서 송곳 같은 의제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출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남다른 의제라고 말합니다. 물론 비정규 문제의 해법으로 거론되는 사용사유제한이나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 두 가지 원칙은 상당히 중장기적인 대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지개벽 수준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체제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해법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남신 소장은 차별해소를 위해서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만, 최근 가장 관심 받고 있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병행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사회에서 불평등도가 획기적인 수준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본소득은 양극화가 극심하고 빈부격차가 구조화되는 상황, 그리고 가난이 신분처럼 대물림되는 희망을 잃어가는 시대에 새로운 출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어쩌면 기본소득이 지닌 ‘탈자본의 철학’은 거대담론이 돼버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안사회의 모델로서 녹색당의 기본소득 로드맵이 ‘을들의 연대’를 위한 중요한 매개가 되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경험하고 목격해온 여성환경연대 장이정수 대표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받아왔다고 진단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성운동도 이러한 차별을 없애고 남녀 간의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 뿐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여성운동의 주요 과제였습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법제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녀 성평등 지수는 낮습니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한 남녀 간의 성평등이 기본소득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장이정수 대표는 말합니다.

 

장이정수 대표는 차이와 차별이 없는 완전 평등한 사회가 가능할까를 묻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자본주의체제에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이 절망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대안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정치구조, 경제구조에서 기본소득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산업화 이후, 수 십 년간 여성운동이 지향했던 사회가 난망해진 현재의 상황을 반추하면, 기본소득이 꿈꾸는 사회가 짧은 시간에 실현되기는 쉬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장이정수 대표는 자본주의 이후 대안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성들도 임금노동에 참여하길 강요받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공백이 생긴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이 여성들의 역할로 분업화되면서 새로 생기는 돌봄노동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 되었고, 사회적으로 값싼 노동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남성들의 일자리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점점 값싼 노동으로 변해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고민이 생깁니다. 여성운동이 남성 노동과 여성 노동이 동일하게 값싼 노동으로 등치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는가? 혹은 남성의 임금노동을 여성의 노동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헌신해왔는가? 과연 소득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결국 기본소득도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소득’ 이외의 다른 용어는 없을까? 그래서 장이정수 대표는 용어가 새롭게 개발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본소득이라는 말 속에 내제화된 자본주의체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장이정수 대표가 가진 또 하나의 문제의식은 ‘일상의 실천’입니다.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운동이 잘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여성 관련된 법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여성혐오 현상이나 역차별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아래로부터 여성의 요구나 일상의 삶 속에서 나온 바람들이 정책화되지 못하고 선거라는 국면에서 일괄적으로 수용됨으로써 빠르게 법제화가 이루어진 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본소득 운동을 하는 당원들에게 일상적으로 어떤 실천과 운동이 필요한지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상의 운동이 되지 못한다면, 성평등 문제가 그렇듯이, 기본소득도 법제화에 그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꿈꿨던 기본소득 이후의 상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일상으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장이정수 대표는 말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현수 정책실장은 장애인이 처한 비참한 삶을 전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장애인은 폐기물 취급을 받고,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분류가 되고, 보호와 통제의 대상, 때로는 죽임조차도 정당화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조현수 실장은 말합니다. 2015년 1월, 대구에서 발달 장애인 언니를 둔 동생이 “할 만큼 했는데 지쳤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고, 4월에는 발달장애 아들을 살해한 70세 아버지, 그 아버지가 자살을 시도한 일도 있었고, 8월에는 70대 노모가 40대 장애아들을 살해한 사건, 10월에는 50대 정신 장애인이 방치되어 굶어 죽은 사건 등등 가슴 저린 장애인의 삶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장애인은 그 누구보다 열악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헬조선’입니다.

 

장애등급제가 도입된 시기는 1989년입니다. 등급에 따라, 소득 수준에 따라 장애수당이 차등하게 지급되어 왔는데, 1990년은 7,100명에게 2만원씩, 2003년에는 11만 명에게 5만원씩, 그리고 2005년에는 33만 명 중, 중증에게 6만원, 경증에게 2만원씩을 지급했습니다. 장애인연금은 2010년에 도입되었습니다. 국민연금 A값의 10% 수준인 20만원의 기초급여와 장애로 인해서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 예컨대 의료비나 의료보조기 구입비와 수리비 등을 지급하는 제도가 장애인연금입니다. 부과급여는 최대 8만원이 지급됩니다. 그러나 이 금액은 생활을 이어가는데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노동시장 내에서 노동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조건의 장애인들에겐 정부가 지급하는 최저생활비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 당연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현수 실장은 기본소득 논의가 더 증폭되길 기대합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하는 장애인단체의 고민 중에 하나는 전기요금이나 도시가스요금을 할인해주는 감면할인제도의 존폐입니다. 감면할인제도는 간접적인 소득지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될 경우, 조현수 실장은 중장기적으로 직접적인 소득보장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감면할인제도 자체가 하나의 낙인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조현수 실장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8만원 정도의 부과급여로는 의료비와 보조기구 구입유지비로 충당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장애연금과 통합할 경우, 보충적인 부과급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녹색당의 로드맵에 반영되길 희망합니다. 그러면서 장애인운동의 사례를 이야기합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처음 주장했을 때, 장애인조차도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를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정치권도 부정할 수 없는 의제가 되었습니다. 기본소득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조현수 실장은 말합니다. 꾸준한 공론화의 과정이 기획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급한 일로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조한혜정 교수는 토론문으로 대신했습니다. 토론문의 주요 내용은, 개발 패러다임의 비판으로 시작해서 공유와 공공재, 공통재, 공유 개념을 다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면서, 시장경제와 임금노동 패러다임을 벗어나 노동과 일, 활동이라는 다양한 생산 활동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기본소득 이슈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과 같은 후기 근대적, 탈 근대적 상황에서는 선진국 /후진국의 이분법이 아니라 선망국/후망국의 개념으로 사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민적 공공성을 바탕으로 인간다운 질서와 시민성 및 시민다움을 키워가고 환대의 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함께 살자, 기본 소득!”은 어쩐지 전체주의를 강요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본 소득: 적대와 폭력을 넘어서 관용과 환대의 질서로!” “자폭 테러의 세상이 되기 전에 비빌 언덕을!” 이런 식의 슬로건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기본소득 실시는 세계의 고도성장 사회, 특히 식민지로부터 시작한 개발독재 사회에게 모델이 될 획기적인 구원의 사업이여야 하고, 우리가 잘 준비한다면, 실현가능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두 개의 발제문에 덧붙여, 재원과 관련한 몇 개의 버전, 구체적인 예산낭비 사례, 새로운 집과 공간 개념의 제시, 물질적 빈곤을 넘는 관계와 소통의 빈곤에 대한 논의, 교육과 사회화의 낙후성에 대한 논의, 노동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하길 요청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을 섣불리 제시하기보다는 깊은 논의 속에 점진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토론문은 하자센터의 김희옥 님이 대독했습니다.

 

기본소득의 ‘공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번 심포지엄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발표와 토론, 의견이 오가면서 기본소득은 회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한 때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구호가 통용됐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일할 수 없게 되는 시대에는 ‘일하지 않는 자도 함께 먹고 살아야 한다’는 구호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시대가 다르면 정책도 달라야 합니다. 모두가 불행하고 불안정한 사회에 살아간다면 ‘불안정함’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정치가 칼자루를 쥐고 있습니다. 20대 총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