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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녹색당, 정치권 교체를 하라

새해가 들어서도 작년에 이어 온통 암울한 소식들뿐이다. 정부는 연말에 기습적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 유린 문제를 외교적 협상으로 둔갑시켜 헐값에 팔아먹고서는, 연휴라서 할머니들께 미리 연락을 못했다고 파렴치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전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는 한·미·일 군사-경제협력 관계에 더 무게를 두기로 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대외전략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한일 관계였고, 그 핵심에 위안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 미국의 숙원이었음은 누가 봐도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바로 며칠 후에 북한에서 수소폭탄실험에 성공했다고 느닷없이 속보를 전했다. 물론 아직 성공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두고봐야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핵실험의 징후를 2주 전에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게는 아무런 언질을 해주지 않았고, 며칠 후에는 한반도 영공에 B-52 폭격기를 띄우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한국은 무방비 상태로 이 소식을 접한 후에 서둘러 대응책을 내놓았다. 확성기를 사용한 대북 선전전. 이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참담한 고통과 인권 탄압을 헐값에 팔아먹은 결과라는 말인가? 이렇게 국제적 호구 노릇하려고 그 잘난 협상을 했다는 말인가? 국민들이 이 협상이 무효라고 주장하자 대통령은 엄포를 놓으면서 이 협상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말라고 국민들을 윽박지른다.

 

작년에 취업한 청년층(15-29세)의 64%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8년 전에 비해 10%나 증가한 수치라는데, 불안정한 고용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거의 없이 힘겨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이렇게 많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암담하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의 주식시장이 7% 가까이 폭락하면서 고작 열흘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에서 공중으로 사라진 돈이 5천조원이라고 한다.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지구적 투기 자본에 특히 취약한 한국 경제는 얼마나 치명적으로 이러한 경제상황에 영향을 받을지 끔찍할 따름이다. IMF 조차 한국의 가계부채가 이자율 상승의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경고를 보냈는데, 미국이 달러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고, 국내 가계 소득과 구매력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침체에 빠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암울한 것은 과학기술의 변화가 이러한 구조를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로봇화나 인공지능의 발달은 사실 노동에 대한 수요를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근대 경제학은 항상 노동에 대한 수요는 무한정 있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래서 노동 공급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로봇화나 인공지능의 발달은 경제학의 이런 가정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놓는다. 완전히 새로운 경제학을 써야할 상황인 것이다. 이제 과학기술지식과 자본을 가진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의 탈노동, 저/무소득 잉여대중을 지배하는 처절한 사회가 헬조선의 미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해방이후, 부모 세대 보다 자녀 세대가 더 못 사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최근 방송 출연 이후 인기를 얻고 있는 홍대앞 인디 밴드 그룹 중식이 밴드는 <선데이 서울>이라는 노래에서 청년 세대의 좌절감을 이렇게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가난이 죄가 되냐고?/ 친구야 꿈이 있고 가난한 청년에겐/사랑이란 어쩌면 사치다 / 나는 힘없는 노동자의 자식/낭만이란 내겐 무거운 사치다./ 아직은 꿈많은 책임질 것 없는 청춘이라서/나는 아직도 노래 부르며 산다./ 빚까지 내서 대학 보낸 우리 아버지/졸업해도 취직 못 하는 자식/오늘도 피씨방 야간알바를 하러 간다. 식대는 컵라면 한 그릇/ 하루의 첫 담배는 날 행복하게 하지/담배도 끊어야 하는데/ 어디서 돈벼락이나 맞았으면 좋겠네/ 나의 기타 나 대신 노래 좀 불러줘/ 빚까지 내서 성형하는 소녀들/빚 갚으러 몸 파는 소녀들/홍등가 붉은 빛이 나를 울리네/이 노래가 나를 울리네”(후략)

 

청년들만이 아니다. 노인인구의 절반 이상은 빈곤층이고, 소득에 비해 살인적으로 높은 주거비용은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줄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방에 산다. 그것도 반지하방이나 고시원방, 쪽방과 같은 열악한 방에서. 절망과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정치가 돌파구를 열어 줄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로 정치란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서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은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는 이러한 이상적인 의미의 정치에서 한참 동떨어져있다. 노회한 정치권력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국민들의 민생과 공익을 들먹이고 있다. 선명한 정치철학과 가치에 기초해서 정책을 생산하고, 생산된 정책들이 정치시장에서 경쟁하여 대중들의 선택을 받고 또 평가받아서 도태되거나 발전하여 서서히 진화하는 그런 선순환의 정치구조나 정당시스템이 우리에게는 없다. 말만 민주주의이지 실제로는 지역감정, 학연, 계파의 이해관계 등등으로 모인 거대 정당들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폐해(예컨대, 뽑아준 사람들의 의사를 배반한다든지, 소수의 의견은 체계적으로 무시되는 등)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후진적 정치구조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녹색당의 존재는 한국 정치구조의 후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녹색당은 무엇보다 선명하게 생태주의라는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무한한 경제성장과 발전을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수의 기득권만 살찌우는 발전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생태주의 가치가 녹색당의 기본을 이룬다. 그리고 비례대표가 당선되더라도 임기를 나누어 국회의원을 한다는 공동체적 지향을 보인다.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 기초에 있다. 그리고 한국의 기성 정당이 보여주는 지역색, 특정 리더 중심의 계파 정치, 남성 꼰대들이 판을 치는 권위주의가 녹색당에는 없다. 이런 녹색당이 이번 총선에서 약진을 해준다면 우리는 정치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종편 프로그램 중에서 ‘썰전(戰)’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얼마 전에 새누리당 전 혁신위원장이었던 이준석씨가 올해 총선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정권교체 이야기가 많이 나올텐데, 양당이 제대로 못하면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권교체가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녹색당이 그 정치권 교체를 자임하고 나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선거 구호로 “정권 교체 말고 정치권 교체”를 앞세워도 좋을 것 같다. 녹색당에게 한국 정치권 교체를 엄중히 부탁드린다. 그래서 한국의, 더 나아가서 세계의 대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기를 간곡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