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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텀블러가 대신 말해주는 것들

아차, 하는 순간

 

종이컵이 내 앞에 놓였다. 가방 속에 든 텀블러도, ‘머그컵에 주세요’라는 말도 잊은 탓이다. 어떤 경우는 주문을 잊은 점원의 무심함 탓에 별 수 없이 종이컵을 받아들기도 하고, 아예 머그컵 자체가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올 때도 있다.

 

‘그까짓’ 종이컵 하나에 왜 마음이 편치 않을까?

 

아마도 음료의 대용량화에 맞춰 더 크고 튼튼해진 컵과 플라스틱 덮개, 두툼한 겉싸개까지, 잠시 손에 쥐었다 버리기엔 그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게 느껴져서일 테다. 게다가 일회용 종이컵의 재활용률이 고작 14%밖에 되지 않는다는 자료를 본 뒤로는, ‘재활용’이라 쓰인 통에 넣으면서도 과연 다시 ‘되살려져’ 쓰임을 얻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내 마음 따윈 아랑곳없이 테이크아웃 문화는 빠르게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었고 꼭 그만큼의 속도로 일회용 컵 소비량 또한 꾸준히 상승중이다.(2012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만 약 230억 개 종이컵이 사용되었다.) 쓰임이 다하면 여지없이 폐기되는 짧디 짧은 생. 새삼스럽지만,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게 필요 이상으로 소비되고 버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2008년에는 음식점, 학교, 병원, 기숙사 등에서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규제가 ‘완화’되었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도’가 폐지되었다. 법적 강제도 경제적 유인도 사라진 상황에, 의지할 것은 각자의 마음 혹은 의지밖에 남지 않았다.

 

 

그 많은 텀블러는 다 어디로 갔을까

 

늘어난 것은 종이컵 사용량만이 아니다. 새로운 소비트렌드로 부상한 이른바 ‘MD상품’ 경쟁이 과열되면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계절과 시기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텀블러와 머그컵 들을 내놓고 있는데, 이런 제품들은 출시 직후 단시간 매진 사례를 낳을 정도로 호응이 높다.

 

그런 반면 카페에서의 텀블러 이용객 수가 ‘많아야 하루 3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환경재단, ‘2014년 텀블러 이용 실태조사 보고서’). 대체로는 세척 문제와 휴대의 불편함 등을 ‘미사용’의 이유로 꼽았다. 텀블러가 패션 소품의 지위로 각광받는 시대지만 정작 잘 눈에 띄지 않았던 까닭이다. 더구나 단지 수집하고 소장할 목적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짧은 생을 마감하는 종이컵만큼이나 뜨거움과 차가움을 충분히 담아보지 못한 텀블러의 생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

 

 

텀블러라는 ‘기호’

 

미각이 썩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같은 음료가 일회용 컵에 담겼을 때와 텀블러 혹은 머그컵에 담겼을 때 맛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것 또한 가급적 일회용 컵 사용을 꺼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인데, 그것은 말하자면 개인적 ‘기호(嗜好)’ 같은 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텀블러를 꼭 챙겨 들려는 이유는 비단 몇 개의 종이컵을 아끼기 위해서라거나 혀의 즐거움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기호(記號)로서 내가 하지 못한 '말‘들을 대신 해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와 같은 마음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마치 메시지가 선명한 배지들을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것처럼.

 

‘그까짓 종이컵 하나쯤이야’라는 말은 종이컵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하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는 ‘나 하나쯤이야’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나 하나 노력해보아야 이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해묵은 회의가 작동하기 때문. 당장 영화관 같은 곳에만 가더라도 음료가 담긴 채로 온갖 쓰레기와 뒤섞여 버려지는 종이 혹은 플라스틱 컵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런 광경은 애써 텀블러를 꺼내 든 손을 무색케 한다. 더욱이 전 세계적 기후변화나 폐기물, 오염 문제 같은 거대한 이슈를 마주하는 순간순간, 나라는 존재도 이 컵도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다는 좌절감이 엄습하기 마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컵을 챙겨 넣었다. 쉽게 쓰고 버리는 시대가 유감이라고, 짧은 생을 마감하고 땅속 깊이 파묻히거나 유해물질을 내뿜으며 태워질 그 물건들의 생이 안타깝다고, 나를 대신해 말해주기를 기대하며. 텀블러를 든 연예인의 모습처럼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행여 어느 한 사람의 눈에 띄어 그이의 좌절감 해소에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1+1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또 기대하면서.

 

우리에겐 그런 일상의 소소한 희망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와 너가 같은 마음임을 확인하고 서로를 지지해주는 힘이면서, 또한 그로 인해 일회용 컵을 쓰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다.

 

 

바야흐로 선거로 꽃피는 정치의 계절. 하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날에 주어진 ‘기호’에 표기하는 것으로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일상에서 충분히 말해지지 못한 어떤 것 때문인 것은 아닐까? 사실 정치적인 것과 무관한 실천이란 없으므로, 사소한 행동 속에서 낯선 타인과도 동지가 되는 순간들로 생활의 정치화를 조금씩 해나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