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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당신의 한 수에 사표는 없다

비판적 지지와 사표라는 유령

 

‘비판적 지지’라는 유령이 매번 선거판을 맴돈다. 이 유령은 새로운 정치세력이 좀 등장할라치면 일단 이번 선거는 이기고 보자고 속삭인다. 미워도 다시 한번, 이라며 턱없이 부족해도 일단 당선시키고 다음에 제대로 판을 짜자고 유령은 주장한다. 그러나 다음은 그 다음, 또 다음, 언제나 다음으로 무한 반복된다.

 

더구나 비판적 지지는 기득권층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투표’를 자극해 기득권층의 지지층도 더욱더 결집시킨다. 선거연합이라면 분명한 명분과 합리적인 합의가 있어야 지지하지 않는 층을 설득해서 이쪽으로 표를 결집할 수 있는데, 그게 없으니 저쪽도 악의를 품고 악착같이 단결한다. 서로 표로 대결하면 누가 이길까?

 

그리고 자신에게 투표한 시민들을, 특히 자신을 비판적으로 지지했다는 시민들을 따로 구분할 수 없기에, 권력을 잡은 정치인들은 지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니 비판적 지지는 선거 이후에 정치적인 관심보다 냉소를 부를 수밖에 없다.

 

비판적 지지는 이런저런 좋은 이유를 대지만 결국에는 기득권이 가진 몫을 건드리지 않은 채 남겨 두고 힘 있는 자들의 세상을 떠받들게 한다. 그래서 이 유령은 보수적인 기득권과 교활한 기회주의 정치세력, 정치적인 무능력이 만든 ‘최선의 현상유지 전략’이다.

 

더구나 이 유령은 비판적인 지지를 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비판적 지지는 자신의 진심과 꿈을 속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힘이 없고 언제나 우리 쪽의 상황이 불리하다는 논리는 자존감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참는다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어도 정치적으로 자유롭다면 우리는 반쪽이나마 시민의 삶을 누릴 수 있는데, 비판적 지지는 그 가능성마저도 차단한다.

 

‘사표(死票)’라는 유령도 마찬가지이다. 사표는 안 될 사람에게 표를 낭비하지 말고 될 사람에게 밀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런데 유권자의 선호는 드러나지 않으면 반영될 수 없는데, 사표는 시민의 본심이 드러나는 걸 가로막는다. 반대하는 의견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선거 이후에 협상이라도 할 텐데, 사표는 결국 이런 협상의 가능성도 봉쇄한다. 살고자 표를 던진다지만 살아남았을 뿐 살아갈 방법이 없다.

 

사표 역시 최악을 막아야 한다는 다급함으로 주장된다는 점에서 비판적 지지와 다를 바가 없다. 이거 먹고 떨어져라, 식의 마음이 이렇게 처참한 정치현실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또 이 유령들에 흔들리고 있다.

 

비판적 지지론과 사표론이 등장한 지 한참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이 좀 행복해졌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나? 마치 돌려막기처럼 이놈 대신 저놈으로 대신했지만, 기득권층의 세계와 서민들의 세계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역사는 힘 있는 자들이 바꿔왔다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강자가 되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궤변 앞에서 세상을 바꾸는 대부분의 실제 힘이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단순한 진리는 망각된다.

더구나 지금의 위기는 단순히 이 놈 대신 저 놈을 택한다고 해서 극복될 수 없다. 지금 생태계의 위기는 정치, 경제, 문화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4대강, 평창올림픽, 핵발전소 등은 이런 위기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경제발전과 생태적인 사회의 실현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대안을 자처하지만 모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기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당신의 한 수, 우리들의 대마(大馬)

 

국회의원 한 두명이 당선된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당연히 그 한 두명으로는 절대로 안 바뀐다. 하지만 그 한 두명이 잘난 한 두 명으로 그치지 않고 그 한 두 명 뒤에 수천 명의 당원들이 길게 손을 잡고 함께 움직인다면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녹색당원들은 지금 그런 변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나와 당신, 우리의 한 수. 그래서 마이크 잡기 좋아하는 선수들의 유세나 정당연설회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유세와 정당연설회가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녹색당이라는 대마는 우리들의 한 수, 한 수로만 완성될 수 있으니까.

 

책 『숨통이 트인다』는 녹색당이 한국사회를 구할 신의 한수라고 외치며 당신의 한수를 보태기를 권한다. 녹색당이 일찌감치 비례대표 후보들을 정하고 여러 정책들을 카드뉴스와 논평으로 알리는 것도 나와 당신, 우리의 한 수를 위해서이다.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들의 출사표와 정책을 모은 작아 보이지만 우리들의 한수, 한수가 모여 대마를 만들고, 그 한 수, 한 수들이 서로 촘촘하게 이어져야 대마가 된다. 이것이 바로 정치이다.

 

그래서 당신이 빠지는 순간, 우리가 유령에 홀려 눈을 돌리는 순간, 녹색당이라는 대마에 구멍이 생긴다. 녹색당은 우리의 삶과 정치를 바꿀 포석이기에 사표는 없다. 대마불사(大馬不死), 녹색당은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