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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서 시작되는 녹색전환

최근에 희망제작소 10주년을 기념하여 허핑턴포스트와 공동으로 기획한 기획연구 ‘시대정신을 묻는다’의 연구 결과를 보았다. 몇 개월에 걸쳐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전망하게 하고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데이터 분석을 한 것이었다. 이 연구기획에 의하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목격되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불안, 그리고 위험들은 크게 두 가지 사회발전 모델에 의해서 비롯된 파열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국가주도 성장지상주의’(박정희 모델), 그리고 또 하나는 (격차기반의) 시장주도 성장지상주의‘(IMF 모델)이다. 한국 사회는 이 두 가지 모델이 겹쳐져서 지배하고 있는 사회이며, 그나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 두 가지 모델의 유효성은 없어진 상태지만 그 속에서 만들어진 전략적 행위들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들을 책임지지 않고 고삐 풀린 시장이 마치 사탄의 맷돌처럼 사회구성원들과 자연을 갈아내고 있으며 거기서 사회적 연대가 끊어진 개인들은 각자 도생의 전략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진단을 토대로 이 연구에서 제시하고 있는 한국의 시대정신과 미래 가치는 안전한 ‘놀이터’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화두이다. “안전한 '놀이터'란 사회가 개인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바람직한 환경으로, 생존을 위협받지 않으면서 마음 놓고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열린 환경을 말한다. 그 안에서 개인들이 생존을 위한 과도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선 안에서 공존‧공생하는 지속가능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원하는 사회의 상”이라는 것이다(허핑턴포스트, 2016.6.20.).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인터뷰 대상 전문가들에게 물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제시한 방법은 예컨대,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 강화’, ‘기본생활 보장 강화’, ‘교육·보육 등 육아비용 절감’, ‘지대추구 경쟁을 멈추고 능력에 따라 일하게 해주는 임금차별 해소’ 등이었다.

 

 

희망제작소와 허핑턴포스트의 공동 연구기획의 결과는 녹색전환연구소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연구에서 대안으로 이야기한 내용이 실상 녹색전환연구소가 추구하는 녹색전환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넘어서서 안전하면서도 서로를 신뢰할 수 있으며, 이윤보다는 생명을 우선시하는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녹색전환인 것이다. 녹색전환연구소 김종철 이사장은 연구소의 설립 취지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지금 우리나라 브레인의 대부분은 ‘현재 상황의 연장과 확대’라는 전제 위에서 기존 체제의 유지, 기득권층의 이익을 수호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정부 산하 기관, 대기업 산하 연구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 연구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을 지향하는 논리, 사상, 신념으로는 지금 인류 사회 전체가 직면한 환경 위기와 자원 고갈, 경제 공황, 민주주의의 위기는 물론이고, 빈부 격차나 고용 문제, 복지 및 교육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을 어떤 것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전망을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연구소가 필요합니다. 2013년 7월 10일에 창립된 녹색전환연구소는 한국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역사적으로 어떤 상황, 어떤 시대에 처해 있는지 정확히 읽고,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데 지혜를 모으고자 합니다.”

 

그런데, 소장으로서 지난 3년간의 활동을 돌아 보건대, 연구소가 방향설정은 제대로 했을지 몰라도 3년간 활동을 한 성과는 아직 미약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당장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이 획득한 득표수를 생각하면, 정말 우리가 생각한 비전들이 시대정신이긴 한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니면 현실의 굴레와 과거의 관성이 그만큼 강고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박정희 모델과 IMF 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모델을 위한 단초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3년 동안 연구소가 그나마 노력을 한 것이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조금씩 확산시킨 것이다. 처음에는 녹색당의 당론으로 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문제였지만, 지금은 노동당에서도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사드문제에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까지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언급을 할 정도가 되었다.

 

국제적으로도 지난 6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과 관련한 국민투표를 한 결과가 고무적이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물론 기본소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다만 기본소득 논의를 통해 우리가 목표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 공유에 대한 인식, 그리고 공유 자원의 활용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권리 주장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경제성장 지상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박정희 모델과 IMF모델에서 가장 많이 억압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와 시민적 권리이다. 박정희 모델에서는 파시즘적 국가논리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었고, IMF모델에서는 자기조정적 시장논리에 의해 형식적 투표권 이외에 모든 시민적 권리가 실종되었다. 즉, 경제적 가치가 모든 사회적 가치를 억압하고 급기야 정치적 권력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상품화될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상품화하였기 때문에 이를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인 화폐의 보유 여부가 권리의 행사를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돈이 곧 법이요, 돈이 종교인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죄인이고, 자유도 누리기 어려우며, 구성원으로서의 자격과 권한도 제한된다. 심지어 개나 돼지로도 불린다.

 

 

앞으로 인공지능이나 로봇시대의 도래로 실업이 늘어나고, 이민자들이 더 늘어나게 되면 시민적 권리를 어떻게 배분하고 향유할 것인가의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원천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두 모델의 극복은 사회구성원들의 권리 주장이 다시 복원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기본소득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의 자유로운 권리 주장이 복원되기 시작하면, 결국 대안적인 사회경제적 모델도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추동했던 자유주의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관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다양한 권리와 욕구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편협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했다. 즉, 인간은 사회정의나 공정함 같은 사회적 가치보다는 조금이라도 금전적인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전제했던 것이다. 예컨대 경제성장 지상주의에서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었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도 그렇다. 부유층이 더 많은 소득을 얻게 되면 그 돈이 물처럼 흘러내려가 서민들과 저소득층도 잘 살 수 있다는 가설이 낙수효과이다. 이 가설에서는 소수의 부자들이 과도하게 사회적 부를 챙겨가는 것과 상관없이, 조금이나마 거기서 떨어지는 개인적 이득에 사람들이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설령 큰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공정함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있다.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것이 있다. 먼저 실험에 참가한 두 사람을 제안자와 응답자로 나눈다. 그리고 먼저 '제안자'에게 일정한 돈(예컨대 100달러)을 주고 이 돈을 어떻게 나눌지 응답자에게 제안하도록 한다. 그러면 '응답자'는 이 제안을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응답자가 제안을 수용하면 두 사람이 돈을 나눠 갖지만, 응답자가 거절하면 아무도 돈을 받지 못하고 게임이 끝난다. 모든 사람이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가정대로라면, 실험에 참가한 모든 제안자는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대 이익(예컨대 99.9달러)을 제안하고 응답자는 아주 소액(0.1달러)이라도 돈을 받는 것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실험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지역마다 문화나 가치관이 달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제안자는 절반 내외의 돈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제안한 금액이 전체 액수의 약 30%에 미치지 못하면 (심지어 30%가 제법 큰돈이라도),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한 푼도 못 받게 됨에도 불구하고 제안을 거부하였다. 작은 이득보다는 공정함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거대한 전환』에서 자세히 논증하고 있듯이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 동기로서 경제적인 것이 등장한 것은 역사상 매우 최근의 일이고, 그나마 자기조정적(self-regulating) 시장이라는 유토피아적인 사고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과장되게 강조되고 있는 것뿐이다. 인간은 매우 복합적인 존재이며, 다양한 동기로 움직이는 존재다. 이것을 금전적 이득이라는 경제학적 동기로 환원시키는 것 자체가 폭력적인 인식이다.

 

기본소득에 의해 사회구성원들의 자유로운 권리 찾기가 시작되면 다양한 행동 동기와 가치관이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사회를 자기조정적 시장으로부터 보호하는 완충막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기본소득에 기대하는 일차적인 기능이다. 이솝우화를 빌어서 말하자면, 기본소득이 우리의 로두스섬이니 우리는 바로 여기서 뛰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