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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모두에게 좋은 풍년

지난겨울 휴가차 찾은 제주는 곳곳의 감귤밭마다 가득 열린 귤로 온통 샛노란 빛깔이었다. 그런데 수확 시기 날씨가 좋지 않았던 데다 전반적으로 생산량이 ‘지나치게’ 많았던 탓에, 보기에 마냥 흐뭇했던 광경은 누군가에게는 ‘처리’해야 할 골칫거리가 되어 있었다. 공급량을 통제하는 가격안정 정책으로 급기야 ‘산지폐기’가 시행되었다. 흠 잡을 데 없는 열매들까지 단지 때를 잘못 만난 이유로 수확 즉시 도로 땅에 버려지는 모습은 농부가 아닌 내게도 다소 참담하게 지켜보게 되는 장면이었다.

감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과일이라면, 채소 가운데 으뜸은 단연 배추다. 그런데 그 소비량을 채우고도 남는 생산량에 가격폭락은 예삿일이고 배추밭을 갈아엎는다는 소식 또한 이전부터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단골 뉴스였다. 한 농부가 차마 밭을 갈아엎지 못하고 알음알음 필요한 이들이 직접 수확해갈 수 있도록 했다는 ‘미담’이 실린 신문의 날짜는 10년을 훌쩍 거슬러 오르는데, 여전히 ‘갈아엎기’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은 그다지 진전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비단 귤이나 배추만의 일이 아니라 수요공급 법칙의 지배를 받는 어떤 작물이든 풍년이면 푸대접 받는 아이러니는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1983년 기사에서도 사과 1상자 값으로 276원을 받아 풍년이 되레 서럽다는 한 농부의 푸념을 읽을 수 있었다. 당시 물가 기준으로도 터무니없는 적자 농사였다. 무엇보다 한 알의 열매의 ‘가치’가 널뛰는 가격만큼이나 덩달아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실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바라던 풍년이 되었지만

 

작물마다 심고 거두는 시기는 다르지만, 해마다 농촌 곳곳에서는 모내기를 마친 즈음 풍년을 기원하는 단오제를 지내고, 가을 추수를 마친 들판과 마당에서는 축하와 격려와 감사가 어우러지는 잔치가 벌어진다. 풍년은 그처럼 오랫동안 당연하게 바라고 또 감사해 온 땅의 선물이었다. 올여름 폭염은 ‘금배추’를 낳았지만 논에는 기원대로 대풍년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풍년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는 반가움보다는 근심이 담기고 ‘풍년의 역설’이라는 말도 더 이상 역설적이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흔한 표현이 되었다. ‘남아도는 쌀’로 상징되는,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족해진(?) 시대가 빚은 풍경이다. 게다가 쌀값은 풍작이나 흉작에 관계없이 매해 하락을 면치 못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농촌의 한숨을 전하는 기사들 틈에는 ‘풍년대란’이라는, 흡사 풍년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할 것 같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산지 쌀값은 80kg 한 가마니에 13만 원 대로 20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믿기 힘든 소식과 함께.

오래 전에, 부모님이 벼농사를 짓는다는 한 친구가 밥을 남기지 않으려는 내게 “남기고 버려야 쌀값이 오른다”고 했던 농담 아닌 농담이 문득 떠올랐다. 경제학 시간에 배운 가격의 법칙에 빗대 우스개로 던진 이야기지만 마냥 웃어넘길 수 없이 뒷맛이 씁쓸한 말이었다. 풍년을 기뻐할 수 없는 농부의 마음만큼이나.

 

풍요는 어디에서 오는가

 

한편 도시 생활자들은 시장과 슈퍼에서 풍년을 실감한다. 쌀값의 변화보다 더 빠른 셈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제철 채소와 과일 값이다. 천 원 지폐 한 장으로 양파 한 망, 단감 한 줄을 살 수 있는 대풍년의 계절이면 그 풍요는 식생활과 가계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얄팍한 지갑 걱정을 덜어주는 ‘착한’ 가격표에 마음이 든든하다가도, 이따금 그 풍요가 어디에서 비롯했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농가의 가계부에는 일 년 농사의 지출을 메울 만큼 수입을 채워 넣을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30년 전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며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었던 인농 박재일 선생은 <한살림을 시작하면서>라는 글에서 “농산물 값이 내려가면 농민은 울고 소비자는 좋아하고, 농산물 값이 올라가면 소비자는 울고 농민은 좋아합니다. 이처럼 다른 이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는 삶이 옳은 삶일까요?”라고 썼다. 그 물음은 3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구나 세계 각국에서 실려오는 먹거리들이 밥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농촌의 풍년 소식은 밥 먹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지고 있을까? 정부에서는 쌀값 안정을 위해 절대농지마저 해제하려 한다는데, 풍년에도 농사 걱정, 쌀값 걱정 하는 농민들은 실패했거나 보류된 정책의 책임을 묻기를 여전히 멈추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널뛰는 물가에 비해 잠잠한 생협의 물품 가격이 새삼 주목을 받기도 하는데, 특별할 것 없는 ‘비결’이란 그저 시장상황이나 운에 맡겨지는 게 아니라 미리 합의하고 유지되는 값이다. 변화무쌍한 기후 조건과 널뛰는 시장 상황에 그 역시 늘 쉽기만 한 일은 아니지만, 어렵게 유지하고 지켜가는 힘은 다름 아니라 ‘다른 이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는 삶’에 대해 의문을 품는 마음일 것이다.


요사이 크게 오른 채소값에 아우성이지만 다행히 가을배추 작황이 좋아 김장 걱정은 덜어도 된다는 ‘좋은’ 소식도 들려온다. 그런데 장바구니 물가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풍요를 ‘같이’ 누리는 일에도 더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닐까? 빼앗고 빼앗기는 풍요가 아니라 함께 누리는 풍요로. 풍년이면 같이 기뻐하고 흉년이면 시름을 함께 나누는 마음은 아련한 공동체적 향수가 아니라 함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으로 한 걸음 가깝게 하는 덕목이다. 그렇게 다시 모두에게 좋은 풍년을 맞이했으면, 더불어 한 해 농사에 애쓰신 농부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