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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탄핵정국은 정치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좋은 기회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여러 조연들이 만들어낸 이 한 편의 장편 대하드라마는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막 인트로가 시작됐다. 언젠가는 끝이 보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이 이 대하드라마의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촛불은 대통령 탄핵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을 밝힌 촛불은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길 원한다. 공평한 사회, 기득권 타파, 민주주의 회복. 분노의 방향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한다. 낙관적으로 보면, 탄핵정국은 정치시스템을 변화시키는데 좋은 기회다.

 

 그러나 장벽이 만만치 않다. 여야3당은 합의를 통해 ‘개헌특위’를 구성하겠다고 합의했다. 개헌 논의 과정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여야 3당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대통령제의 난맥상을 이유로 권력구조개편 만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개개편도 시도될 수 있다. 90년 ‘3당 합당’처럼 말이다. 조기대선 국면과 맞물리면서 개헌 논의는 모든 이슈를 잡아먹게 된다.

 

 물론, 30년 된 87년 헌법체제는 변화된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개헌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헌하지 않더라도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는 개혁과제는 얼마든지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대표가 지난 23일, "탄핵에 찬성했던 의원 234명 중 180명만 동의한다면 국회는 어떤 개혁안도 통과시킬 수 있기에 바로 지금이 개혁의 적기"라고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국회의원만 뜻을 모으면 된다. 대표적으로 선거법을 바꿀 수 있다. 우리나라 선거법은 오랫동안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 2015년 2월,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서를 냈다. 이 의견서의 요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정당 지지도와 의석 점유율 간 불비례성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최근에 발표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의견서(2016. 8)는 선거연령 하향을 제시했다.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참정권을 18세로 낮추겠다는 방안이 담겨 있다.

 

 투표결과의 비례성은 매우 중요하다. 개개인의 투표행위가 투표결과에 고스란히 반영될 때 정치라는 그릇에는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대선 결과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트럼프보다 2.1%포인트(286만표) 더 받은 힐러리 클린턴이 어떻게 패배할 수 있는가? 미국 선거제도가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불비례성은 단순다수 소선거구제의 특징이다. 2004년 우리나라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38.3%를 얻었음에도 50.6%의 의석을 차지했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37.5%의 득표를 얻고도 51%의 의석을 차지했다. 어느 선거든 득표율과 의원 점유율은 어긋나 있다. 그러니 소수의견이 반영될 정치적 창구가 협소해진다. 1등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대의제의 문제라기보다는 불공정한 선거제도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다당제를 위해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안철수 전대표의 주장은 반 발짝만 나간 것이다. 대통령 결선투표만으로 다당제의 본래 정신을 살릴 수 없다. 지지하는 정당과 의석 점유율이 일치할 때만이 다당제가 정착될 수 있다. 1등에 투표하지 않으면 모두 사표가 되는 현재의 선거제도는 다당제 구조를 만드는데 한계가 명백하다. 그래서 결선투표제와 투표 비례성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실제로 다당제 정치구조를 지닌 대부분의 나라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형태의 비례성이 강한 선거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 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찰개혁이나 사법개혁, 경제민주화도 지금의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헌법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의지의 문제다. 권력자의 입맛에 부역하는 검찰, 수백억원의 대가성 뇌물을 권력에 헌납하는 재벌. 21세기와 어울리지 않은 촌스러운 정치막장을 보고 있자니,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지금은 2016년이잖아요?”라는 말이 민망해진다.

 

 국민투표와 병행해야 하는 개헌은 어차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개혁 과제가 마무리된 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 무엇보다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이 주도해선 안 된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경희대 김상준교수가 제안하는 ‘시민의회(The Citizens Assembly)’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추첨 민회를 통한 헌법 개정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 마디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헌법 개정 절차법’을 만들어 합의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헌법을 개정하자는 취지다.

 

 개혁의 주도권을 쥐게 된 국회를 지켜보고 있는 촛불은 거대하다. 적어도 230만 촛불의 격에 맞게 정치시스템 수준도 높여야 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꼼수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머리를 못 깎겠다면 시민에게 맡겨라. 피 없는 혁명을 만들고 있는 위대한 시민에게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