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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거위의 꿈과 구스다운 사이

 매서운 한파가 예고됐던 한겨울의 어느 날, 단벌로 겨울을 나던 친구는 두툼한 새 외투가 필요하다며 온라인 쇼핑몰 앞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가격과 디자인에 더해, 강추위를 막아줄 수 있을 만큼의 기능성은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상대적으로 값이 더 나가는 것들엔 어김없이 거위털 또는 오리털 소재가 사용됐고, 저렴한 가격으로 눈길을 끄는 제품에는 대개 ‘폴리에스테르 100%’ 등의 표기가 붙어 있었다.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친구에게 ‘오래 입을 옷인데 아무래도 따뜻한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무심코 말을 보태고 나서, 곧바로 후회가 일었다. 그 따뜻함의 차이가 과연 얼마쯤인지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동물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옷은 가급적 입지 않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거위의 날개인가요 거위의 몸통이었나요’라고 시작하는 장남주 시인의 ‘구스 패브릭’이라는 시에 멜로디를 붙여 만든 노래가 있다. 노랫말처럼 새들의 아름다움과 깃털의 가벼움은 완벽하게 포장되어 매력적인 상품으로 전시된다. 친구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는 이제 따뜻한 겨울옷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농담처럼 얘기했었다. 실제로 거위털이나 오리털이 충전재로 들어가지 않은 두터운 옷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불평도 해대면서. 그러면서도 ‘여러분, 구스 입지 말아요’라고 보다 힘주어 얘기하지 못했던 것은 완벽한 대안을 함께 말해야 하고 또 스스로 완벽한 실천가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무엇보다 ‘개인의 선택’이 불가침의 가치로 존중받는 듯 보이는 시대니까.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먹는 동물에 비해 ‘입고 덮는 동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두었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열린 ‘비건 페스티벌’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먹을거리 부스들 사이 ‘비건 패션’ 매대를 잠시 기웃거렸던 기억이 최근에 다시 떠오른 것은 가슴털이 뽑혀 맨살이 드러난 거위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최악의 AI 사태에도 달걀값 걱정을 넘어 그 심각함을 진지하게 다루는 뉴스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을 지금의 시국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하물며 달걀도 치킨도 아닌 따뜻함과 포근함을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은 우리의 시야에서 더 많이 벗어나 있다. 색색의 두툼한 패딩점퍼와 탐스러운 털장식이 대다수 행인들의 패션을 책임지는 이 계절에, 그 온기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거듭 반복되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깃털 한 장의 무게

 

 겨울철이 다가오면 의류 업계와 침구 업계는 앞다투어 보온과 무게에서의 비교우위를 앞세우며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리고, 그러한 제품들을 좋은 삶의 필수품으로 여기도록 부추겨왔다. 아웃도어 시장 규모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우리나라는 다운 소비량 또한 연간 5천 톤 이상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구스 이불 역시 소비가 가파르게 늘고 있어 2014년 한 해 판매된 전체 이불속 가운데 20%가 구스다운으로 채워졌다. 최근에는 기준 비율을 지키지 않고 허위로 표기해왔다는 업계의 행태가 적발되기도 해 실제 거위털의 비율을 꼼꼼히 확인할 것을 주문하기도 하지만, 따져봐야 할 항목에는 단지 표기상의 엄밀함만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의 윤리성 또한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의 안락한 수면과 보온을 책임지느라 사육장의 거위들이 살아 있는 내내 십수 차례 털을 뽑히는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채취 과정에서 깃털 훼손을 줄이기 위해 사람의 손으로 직접 뽑는다는 점을 품질의 차별화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거위의 고통과 맞바꾼 구스다운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겨울은 따뜻할 수 있다’고 알리는 한 스토리펀딩의 댓글란은 거위털을 채취하는 모습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몰랐다, 충격적이다, 반성한다, 앞으로는 사지 않겠다’는 반응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 ‘자괴감’이 든다는 말이 전혀 과장된 언사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분명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말과 행동이 여전히 더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소재를 꼼꼼히 살펴 동물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옷을 구입하겠다 결심하는 순간, 선택권은 대폭 축소되고 긴 검색의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다운의 경우 살아 있는 상태에서의 털 채취를 금하고 윤리적인 사육 환경을 보증하는 RDS 인증, 모직(울) 소재의 경우 양털 채취 과정에서 학대가 없었음을 뜻하는 뮬레싱-프리 등의 표기가 있지만 라벨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아직  제한적이다. 그 밖에 가죽이나 장식용 털까지, 무심코 입고 써 왔던 것들이 옷장 속에서 적지 않게 발견될 것이다.

 

 그래서 ‘일일이 따지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다’는 항변은 매우 익숙하다. 실제로 유기농 목화솜 정도의 희귀한 선택지를 제외한다면 우리의 ‘의’ 생활은 어떤 식으로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타 생명의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알아야 할 의무가 주어지는 것 아닐까.

 

다름 속에 하나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일

 

 모피 산업은 공장식 축산과 마찬가지로 생산과 소비의 완벽한 분리를 만들어냈다. 소비자들에게 아름답거나 행복한 동물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동시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동물이 생명을 지니고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에 무감각해지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들의 관심과 필요가 계속해서 동물을 값싸게 대량으로 길러내거나 동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원들을 더 많이 더 ‘질 좋게(?)’ 취하는 데 있다면, 4차산업혁명이 얘기되는 이 시대에도 열악한 사육환경과 노동 조건은 계속되고, 모피를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와 대체재의 개발도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기술자들의 일이지만 ‘어떤 기술’이냐를 결정하는 힘은 시장상황의 변화에 있을 수도, 혹은 소비자의 인식이나 요구, 정치적 결정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다. 착한 소비와 공정무역이 확산되는 만큼, 적어도 밍크코트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게 된 변화의 방향이 유효하다면, ‘에코 퍼’와 솜패딩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더 폭넓게 보장되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어차피 고기도 먹는데’라는 말로 합리화하거나 포기하기엔, 인류는 그동안 많은 것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왔다. 때때로 치맥을 즐기지만 동물복지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서 발견해야 할 것은 모순이나 비일관성이 아니라 그러한 저마다의 다름을 하나의 목소리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일 것이다. 동물들이 처한 상황을 염려하고 그것을 바꾸어내는 일은 ‘동물애호가’라든가 ‘동물권운동가’로 불리는 특정 누군가의 몫이 아니다. 겹겹이 껴입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실천가’들과 더불어 여전히 다운을 포기하기 어렵지만 생산 과정에서의 학대에 반대하는 당신, 동물의 온기에 의지하지만 그들의 고통에 덜 빚지며 살아가고 싶은 당신의 목소리가 보태질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