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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나이듦에 대한 태도] 세대 간 연대를 생각한다

 

30대 초중반에 경력이 단절된 한 여성은 마흔이 될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좌절감에 빠졌지만, 자녀가 성인이 된 후 숨통이 트였다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책을 접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다 한 정치인이 눈에 들어왔고, 얼떨결에 시의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50 중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연극을 좋아하고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이것저것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시기입니다. 주위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며 마음의 평화를 갖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보다는 지혜가 쌓여가는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죽는 날까지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이 이 여성의 소망입니다.

 

60대 후반에 들어선 한 여성은 다른 이들의 삶보다 10년 늦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10년 이상 늦은 출산. 41살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중년에 육아와 병행하는 노동은 정말 고달팠습니다. 누구보다 나이를 의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찌어찌하다 책을 한 권 내게 됩니다.(<평화가 깃든 밥상>, 2009) 출판은 개인의 역사에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경이로움이랄까. 이후에도 몇 권의 책을 더 내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풍요로워지고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심지어 경로우대증을 받았을 땐,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게 되었구나! 마음이 평화로운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군인으로 30년을 복역한 이 남성은 70대 초반을 살아갑니다. 6.25전쟁을 겪고 베트남 전쟁도 참여하며 굴곡의 역사를 생생히 목도했습니다. 서슬 퍼런 박정희 시대를 묵묵히 살아왔던 이 남성은 40대가 훨씬 넘어 우연히 돌베개에서 출판한 친일판 관련 서적을 만나게 됩니다. 이 순간이 ‘생각의 전환’을 불러온 특이점이었습니다. 한국사회가 모순덩어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던 사회 이면을 보면서 생각의 지평이 열렸고, 군대가 금했던 서적을 하나하나 몰래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녹색평론>을 만나면서 지금은 여주에서 녹색당원으로 살아갑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참여’가 나이 듦의 태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가 사회 안정망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진 : @경기녹색당

 

지난 6월 30일에 진행된 “나이 듦에 대한 태도” 집담회에는 예상과는 달리 청년들의 참여도 높았습니다. 우리는 한국 역사상, 어쩌면 세계사적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세대인지 모릅니다. 그럼으로써 밀려오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경로우대증을 받는 연령층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 청년들의 생각이 더 복잡할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노인과 청년의 고민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대 간 연대’가 더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인이든 청년이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으면서, 느슨하지만 넓은 세대 간 네트워킹이 각 세대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 무력감을 조금은 상쇄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뾰족한 정답은 없을 겁니다. 계속 소통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집담회 2시간은 너무 짧았다는 것을 깨닫고, 또 다른 기회를 만든다면 시간을 넉넉하게 준비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두 번째 <나이 듦에 대한 태도>가 언제쯤 마련될지 모르겠지만, 적절한 시기에 이런 자리를 또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날 패널로 참석해주신 신재현 님의 글을 아래에 싣습니다. 손글씨로 작성한 프린트물을 타이핑한 것입니다. 세 분 중에 유일하게 원고를 준비해주시기도 했지만, 고희가 넘은 한 노인의 생각을 잠시라도 엿볼 수 있어서, 아래에 공유합니다.

 

 

신재현(여주당원)

 

○ 나이 듦에 대한 나의 태도

 

나의 세대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궁핍한 때였습니다.

식량, 주거, 일용품 등. 그러니 문화적인 욕구는 사치로 봐야지요.

젊어서는 직장생활 등 생업에서

나와 가족의 생존을 위한 책임감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보며,

그러다가 어느 덧 머리 허연 때를 맞이했습니다.

이거 뭐야 하며, 나이 듦을 어처구니없어 하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지난날을 회상하곤 합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가?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내가 참전한 베트남 참전은 무엇이었는가?

근래의 세월호 참사 문제는 진상을 은폐하는가 하고.

수많은 간첩조작, 70년이 넘도록 민족, 국토 분단은 해소되지 않고

남북이 긴장을 유지하고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가?

독립국가라고 하는 나라에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는가 등.

이것은 정상이 아닌 모순의 현상 등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나는 70세가 넘으면서 역경을 겪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큰 유감은 없습니다.

나이 듦의 세대치고 모두가 역경을 헤쳐 오며 살아났던 세대니까요.

그러나 내 자식만이 아닌 우리의 미래세대는

행복하고 전반적인 안정망이 유지되고 제반 모순이 없는 토대에서

살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러한 희망은 이 사회의 안전망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함께 손잡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

전부는 아니더라도 점차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작은 힘들이 모이고 모여 촛불혁명을 이루어 몰상식을 몰아내듯이,

이러한 참여가 나이 듦과 어른이라는 존칭에 맞는 삶이고 태도라고 믿고

사회 활동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모든 나이든 사람들이 꼭 지켜야 할 태도라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모든 나이든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 나이 듦에 대한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나이 듦이란 어느 층을 지칭하는지, 50대도, 60대도 나이 든 세대라 할 수 있으나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대상은 70대 이후로 생각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이 분들의 삶은 해방 전후사의 혼란기와

오로지 경제성장만이 한국사회를 안정화시킨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사회 각 요처에서 땀 흘려 한국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세대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것으로 볼 때, 이 분들의 나이 듦의 삶은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라 봅니다.

오로지 가족과 자식의 뒷받침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분들이

본인의 안위를 뒤로 미룬 채, 나이 듦에 마주쳤을 때

어떤 층은 자신들의 노후가 완비돼 있는가하면

어떤 분들은 극빈에 내몰려 오히려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 처한 분들도 자주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정의라는 명제에 눈이 가지 않습니다.

이웃의 불행을 내 불행으로 함께 아파해줄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더러운 돈이 있는 곳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한 때 경제성장의 역군들이 존경의 대상에서 방치된다면, 그건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국가와 사회는,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돌보고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삶을 이어가도록 지원하고 정착되었을 때,

그 나라는 반듯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