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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에서 두 번째 주민발의가 성공할까?

<방방곡곡 기본소득 수다투어 – 시흥 편>

 

시흥에서 두 번째 주민발의가 성공할까?

기본소득,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지난 6월,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10.5%였습니다. 단시간 노동자, 시험 준비생, 경력단절여성 등이 포함되는 체감실업률은 23.4%가 넘는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포인트가 높아진 수치다. 통계만으로도 청년의 고용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은 저성장 시대의 청년의 삶은 고단하다.

 

성남시 청년배당을 받고 있는 한 청년을 심층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이 청년은 이렇게 말한다. “과연 저는 부모님보다 잘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어요.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미 망했어요.” ‘이생망’이라는 청년들의 자조 섞인 신조어가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개인 역량으로 돌파할 없는 현재의 시스템. 청년이 넘어서기에 문턱이 너무 높다.

 

청년 관련 갖가지 지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실업률 뿐 아니라, 주거빈곤율, 소득증가율, NEET 비율, 비정규직 비율, 사회보험 가입률, 청년 부채 등등 취약계층에 청년이 제외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래서 성남시는 연 100만원의 지역 상품권을 청년에게 제공하는 청년배당을 시행하고 있다. 단순히 청년이 불쌍해서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시장의 언급처럼, 마땅히 성남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청년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상식에 의하면, 청년은 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노동력을 수용해야 하는 노동시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가 그렇다.

 

가까운 미래에 청년은 부모와 노인세대를 부양할 만큼의 사회적 부를 쌓아야 한다. 그런데 청년의 상황은 취약하다. 청년의 삶이 고단하다면 부모세대의 삶도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복지 대상에서 비껴나 있던 청년을 이재명 시장은 복지의 범주로 호명했다. 임금노동의 원리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시도일 수 있다. 청년에게만 유독 ‘근로의 의무’를 부여했다면, 이젠 그들에게도 보편적 ‘시민권’을 부여할 차례다. 이는 급진적인 요구가 아니다. 불가피한 우리 사회의 선택이다.

 

성남시 청년배당이 출현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청년정책은 선별적 정책이었다. 창업을 하겠다는 청년에게만, 대학에 등록하겠다는 청년에게만, 취업을 하겠다는 청년에게만 지원되었다. 소수의 청년들이 받았다. 현금 50만원을 최대 6개월간 지급하는 서울시 청년수당도 그렇다. 일정한 조건을 갖추고 조건에 맞는 지출만 가능하다. 이 시점에 “청년정책은 보편성을 가지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배경으로 한 성남시 청년배당은 가장 보편적인 청년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자의는 아닐지라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시민권은 성남시 청년들이 가장 먼저 획득했다. “환대 받는 느낌이었다.”, “성남시가 내 삶을 배려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청년정책의 존재를 확인했다.” 청년배당 수령자들의 이야기다. 부가적인 효과도 컸다. 소상공인들의 소득이 증가했고(청년배당 지급수단은 상품권), 가족도 청년배당(상품권)을 공유했다(대부분 가족에게 양도). 청년배당(기본소득)은 나와 너를 연결하고 있었다.

 

“시흥에서 청년기본소득 가능할까?” 지난 7월 8일, 시흥YMCA 청년살롱에서 가졌던 간담회의 주제다.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그리고 한국YMCA전국연맹이 공동진행한 <방방곡곡 기본소득 수다투어>의 첫 번째 지역이 시흥이었다. 시흥은 전국 최초로 주민발의를 통해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한 경험이 있다. 2015년 8월 4일, ‘시흥시청년기본조례’ 청구서가 시흥시에 접수된 후, 11월 6일까지 총 3개월 동안 이 운동을 주도했던 청년들이 14,373명의 서명을 받았다. 유권자 2% 이상을 받아야 하는 청구인 수 6,125명의 2배를 훌쩍 넘는 결과였다. 그 해 12월 18일, 시흥시의회 정례회는 청년들이 제출한 주민발의(안)을 가결함으로써 전국 최초로 주민발의에 의해 ‘청년기본조례’가 제정된 것이다.

 

사진 : 기본소득 전국투어 - 시흥, 토론 모습  @전국투어

 

이 날 간담회 주제발표에 이은 토론은 묵직했다. 청년뿐 아니라 모든 연령과 계층이 사회구조적인 덫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왜 청년에게 기본소득인가?”라는 물음에서부터 토론은 시작됐다. 사실, 성남시 청년배당도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청년배당은 청년복지를 획기적으로 확장시켜, 자기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성남시의 대답이었다. 앞서 기술했지만, 복지 범주에서 배제된 청년을 그 범주 안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양육수당, 노인기초연금과 유사한 기본소득 성격의 보편정책이 청년에게 다가간 것이다.

 

“기본소득을 주제로 주민발의운동이 가능할까?”라는 현실적인 물음도 제기됐다. 지난 장미대선 과정에서 몇 몇 후보들이 기본소득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며 반짝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기본소득은 대중에게 낯선 의제다. 2년 전, ‘청년기본조례’ 주민발의운동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당시에도 “성공가능성에 대해서는 불투명했다”고 회고했다. 그때를 돌아보면, 청년들은 “실패하더라도, 청년의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부가적 효과를 기대했다. 그런 점에서 ‘청년 + 기본소득’이라는 의제가 주민발의 성공여부를 떠나 공감대를 넓혀 가는데 마중물의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원은 가능한가?” 기본소득과 한 세트로 묶이는 질문도 뒤따랐다. 지방정부의 예산운용은 경직성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이어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었다. 다만 성남시 사례가 주는 시사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재원을 우려하는 질문에 이재명 시장은 이렇게 답한다. “청년배당은 성남시의 자체예산 사업으로, 부정부패 없애고, 낭비 줄이고, 세금징수 강화하여 열심히 마련한 예산으로 빚 다 갚고 하는 일”이다. 예산을 아끼는 것만으로 한 연령층에 연 100만원의 청년배당이 가능했다. ‘어디에 분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숨어 있는 예산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시간이다. 자신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 시간은 삶의 여유다.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여유. 논의는 시작되었다. 인천이 청년기본소득조례 주민발의에 불을 붙였고, 서울이 곧 네트워크가 출범한다. 어쩌면 시흥이 먼저 시작할지 모르겠다. “청년기본소득은 시흥에 정주하는 청년을 늘릴 것이다.” 누군가의 마지막 멘트다. 기본소득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