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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돈, 안 쓸 수 없다면 함께 쓰자

- 십시일반 모으면 가능해지는 일들

 

‘돈은 안 쓰는 것’이라는 한 방송인의 멘트가 소위 ‘짠테크’ 바람과 더불어 유행을 탔다. 물론 돈을 안 쓰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의 말인즉슨 가능한 쓰지 말고 모으라는 것인데, 그렇게 돈을 모으는 일 역시 언젠가 쓰기 위함이다. 그러니 달리 말해 쓰는 일을 유예하라는 뜻이고, 더해서 그 쓰임에 신중하라는 말일 테다.

빤한 수입 중 적지 않은 금액이 통장을 스쳐 나가고 노후는 불안한 시대. 누가 내 영수증을 들여다보기라도 할 것처럼 지갑을 여는 데 주춤하게 되는 것이 평범한 많은 이들의 살림살이다. 나 역시 그 다수에 속하는 형편임에도, 혹은 그러한 이유로, 한때 돈을 모으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보다 정확히는 돈을 ‘함께’ 모으는 일이다. 혼자 모을 수 있는 돈이 제한적인 사람들일수록 여럿이 머리와 통장을 맞대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이유와 함께 수십만원, 많게는 일이백만 원이라도 무심히 통장에 넣어두기보다는 쓰임이 있는 곳에 잘 쓰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바람이 있었다. 선뜻 ‘쾌척’ 하기는 어렵고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하진 않아서 보다 긴요하게 쓰일 곳이나 사람에게 (맡겨)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의 일터에서는 저축 조합이 그런 기능을 일부분 수행하고 있어 망설임 없이 조합원이 되었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일정 금액을 출자하고 필요할 때 대출 받을 수 있다. 대출에는 물론 이자가 붙지만 출자금 한도 내에서는 이율이 낮은 편이고 출자금에 대해서는 배당을 받으며, 무엇보다 나의 신용과 상환 능력을 입증하느라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을 수 있어 많은 동료들이 유용하게 이용한다. 조금씩 규모가 늘어 현재 7~8억 원 정도의 출자금이 쌓였고, 일부 금액은 유관 업체에 출자하고 있기도 하다. 보유액 이상의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한계는 오히려 건강한 운영의 조건이 된다. 결국 남는 건 조합원들 간 상호 신뢰를 얼마나 잘 구축해 가는가 의 문제다.

시간이나 노동력에 비해 돈을 모으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마치 ‘회비만 내는 회원’, ‘당비만 내는 당원’이라 스스로를 지레 낮춰 말하듯이). 그런 만큼 대안 금융을 표방하는 곳들에서는 단지 돈으로 묶인 관계를 넘어서기 위해 구성원들의 모임이나 관계 형성을 중시하기도 한다. 가령 활동 참여가 대출의 선행 조건이 되는 방식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돈을 모으는 일에서 단지 돈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사회적 가치와 지속 가능성에 투자하기

 

2년 전부터 연말이면 쌀 20kg이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 강원도 홍천 지역에서 오랫동안 유기농으로 지어 오던 땅이 매각될 상황에 처하자 유기농지를 보존하고 농사를 이어가고자 소비자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십시일반 출자금을 모아 지역의 영농조합에서 땅을 매입했다. 쌀은 그 출자에 대한 상환으로, 올해 3년째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개발에 맞선 보존의 의미로 ‘한 평 사기’ 캠페인이 여럿 있어 왔지만 늘상 두고 먹는 쌀로 돌려받는 것이니 만큼 단지 ‘후원’의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돈을 먼저 내고 물품을 나중에 받는 일종의 선구매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적지 않은 목표 금액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 필수적이고, 그 과정에서 공감과 협동의 가치가 부수적으로 발생한다.

이와 비슷한 방식의 보상(리워드)이 주어지는 펀딩은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금이 필요한 프로젝트들을 지원하고 투자자와 사업체 혹은 개인 창작자들을 연결해주는 크라우드펀딩 (crowdfunding) 플랫폼들이 많이 생겨나 ‘투자’가 쉽고 가까워졌다.

크라우드펀딩은 크게 리워드 (기부)형과 증권형, 대출형 등으로 구분되는데, 위 사례와 유사하게 지속가능한 농사와 농부를 응원하는 플랫폼인 농사펀드 (farmingfund.co.kr)의 경우가 리워드형 펀딩의 일종이다. 일정 금액을 내고 물품을 받는 방식은 일반적인 쇼핑몰에서 일어나는 거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투자를 받는 쪽에서는 생산품의 차별성, 필요한 자금 규모와 쓰임새 등을 소비자에게 직접 더 잘 알려내고,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이들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담아 구입한다.(그래서 ‘주문하기(구입하기)’는 ‘함께 농사짓기’다.)

예술/창작 영역에 특화된 펀딩으로 잘 알려진 곳은 텀블벅(www.tumblbug.com)이다. 개인이나 그룹 단위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아이디어로 프로젝트를 개설해 숱한 성공 사례들을 만들어내고 있다.(2017년 2월 12일 기준 5,157개 프로젝트, 누적액 300억 원을 넘어섰다.) 영화나 도서/음반/굿즈 제작 등을 비롯한 매력적인 제안들이 계속해 업데이트되고, 그것들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사회운동 영역에서의 펀딩을 진행하는 소셜펀치(www.socialfunch.org) 등 저마다의 목적과 성격을 갖는 다양한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다.

투자금액에 따라 지분이나 배당을 받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2016년 관련 법 제정에 따라 등록된 중개업체를 통해 진행된다. 현재 등록된 업체는 14곳이다. 그동안 322건이 목표액을 달성했고(펀딩 성공률 59%) 총 금액은 497억 원, 평균 약 1억7천만 원 정도다.(크라우드넷 www.crowdnet.or.kr)

대부분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투자 기회 확보와 안정적 수익 창출’을 강조하지만 가령 ‘사회 혁신과 임팩트 창출을 위해 일하는 스타트업, 사회적경제기업, 협동조합의 자금 조달과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등 보다 구체적인 미션을 내거는 곳도 있다. ‘대중에 의한 금융 혁명’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하나의 금융 시스템이면서 또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투자, 후원 등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설령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 하더라도, 은행에서 알려주는 이자나 수익률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 쓰임을 알 수 있는 곳, 기왕이면 화학제품을 생산하거나 갑질을 일삼는 기업보다는 당장 자본이 없지만 건강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스타트업이나 얼마간의 급전이 필요한 소상공인의 숨통을 트여주는 곳으로 흘러가기를 바란다면, 둘러볼 만한 곳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미래’로 돌려받는 원금과 이자

 

오는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할 예비후보의 기탁금을 모금하는 캠페인에 참여하며 ‘돈을 모으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씀씀이를 줄여가되 쓰지 않을 수 없다면 ‘잘’ 쓰는 일, 그러기 위해 잘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일이천 원을 차곡차곡 아껴 모아 수천만 원의 목돈을 만든 사람의 스토리도 감동적이지만 천여 명의 이천만원이 좀 더 묵직하게 느껴진다면 그 까닭은 변화의 가능성과 그에 대한 기대가 함께 담겨 있어서일 것이다.

이러한 캠페인과 앞서의 여러 사례들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후원 혹은 숱한 모금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투자’라는 개념에 조금은 다른 색을 덧입혔다는 것, 구체적인 목표와 결과를 공유하는 경험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착한 전기를 생산하는 햇빛발전소,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의 밭, 동료들과의 상호부조, 공감하는 사회적 캠페인, 주인으로 참여하고 싶은 협동조합,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 그리고 이제 막 꿈틀대는 새로운 프로젝트들까지. ‘분산투자’의 길은 더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설령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투자는 원금과 이자에 상응하는 좀 더 나은 미래로 우리에게 보상해줄 것이다.

더불어 돈을 모으고 그 돈이 쓰이는 과정에서 새롭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함께 쓰여진다. 물론 각종 꼼수와 위법이 난무하는 모금에 관한 이야기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 결말엔 응당 엄벌을. 그리고 우리의 ‘그뤠잇’한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들어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