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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미세먼지가 바꾼 풍경들

배달노동자 ㄱ씨는 봄이 되었지만 여전히 바쁘다. 이른바 ‘콜’이 밀려들어 쉴 틈 없이 오토바이에 배달음식을 싣고 나른다. 예년 같으면 날씨가 풀리는 봄날엔 배달 주문이 줄어 상대적으로 한가한 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연일 나쁨을 기록하면서 외출 대신 배달음식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에 대신 거리에 오토바이가 늘었다. 더구나 실내공기에 대한 민감도도 덩달아 높아졌는데, 실내 미세먼지는 음식 조리 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시세끼 밥상을 차리는 것에도 신경이 쓰일 지경이라 배달음식 주문이 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눈비 오는 궂은 날씨만큼이나 보기에만 화창한 날 또한 밀려드는 일거리에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 배달 중에는 요사이 언론을 통해 많이 소개된 보건용 마스크, 그중에서도 차단 수치가 높다고 알려진 제품을 착용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쓰고 벗기 번거로울 뿐더러 숨쉬기 불편하고 습기 등의 문제도 있어 마스크보다는 멀티스카프 정도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미세먼지를 걸러주진 않겠지만 그조차 쓰지 않았을 때에 비하면 고질병이던 비염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열린 국회 미세먼지 대책 특별 위원회에서는 미세먼지로 인해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고 환경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는 8년차 집배원의 사례가 소개되어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이민은 이미 미세먼지의 연관검색어가 되었다. 개인의 의지로 피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직업, 심지어는 국적을 바꾸는 일까지를 생각하게 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는데, 누군가에게는 그런 생각조차 사치일 뿐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는 황사나 미세먼지 경보 발령 지역에서 옥외 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 적절한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는 사업자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경보’에 해당하는 일수는 ‘주의보’ 발령 일수보다 훨씬 적고(서울시 2017년 기준 6일) 위 경우처럼 실제 현장에서는 직무 및 작업 여건상 마스크 착용이 쉽지 않다는 고충도 따른다.

일상적으로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스크 착용은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응이다. 세탁하거나 재사용 할 경우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하니 사고 버리는 비용도 만만찮다. 마스크 가격 인하와 무상 지급 요구가 빗발치는 이유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건강 취약 계층에게 마스크를 무상 지급하고 있기도 하다. 주로 어린이와 저소득층 노인 등이 그 대상이다. 하지만 무조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는 것은 호흡 곤란 등의 문제가 간과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최선의 대응이라 할 수 없다.

미세먼지 예보 기준이 미국·일본 등과 같은 수준으로 보다 엄격해지면서 경각심과 사회적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뒤늦게 나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바뀐 기준에 따라 ‘나쁨’을 가리키는 날이 많아지면서 마스크를 쓰거나 외출을 자제하라는 권고만 반복되고 정책의 시행과 성과는 더딘 상황. 한편에서는 고농도인 날에 대응하기보다 연평균 농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이 실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민감·취약 계층의 건강을 보호하는 노력과 함께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소한의 공기청정기’가 의미하는 것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된다면 실내 풍경은 공기청정기가 설치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뉜다. 미세먼지 시대의 필수 가전이 된 공기청정기. 팬이 가열차게 돌아가는 모습과 동시에 떨어지는 미세먼지 수치를 보며 그나마 안심이 된다는 후기를 심심찮게 보고 들을 수 있다. 한편 국내 시판 공기청정기의 가격이 비슷한 성능의 해외 판매 제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불안을 틈탄 마케팅이 성행하면서, 소비자들에게는 정보의 취사 선택과 현명한 소비의 과제가 추가로 부과되었다.

그런가 하면 구입과 관리가 부담인 사람들은 나름의 방안을 강구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5만원 안팎으로 공기청정기를 손수 제작하는 DIY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체로 팬과 필터를 기본 재료로 하며 만드는 과정 또한 그리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제작자들은 기본적인 원리에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더한 제품을 만들고,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며, 호기심과 실험정신을 자극한다.

손수 만들기, 함께 만들기는 오프라인에서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열린 미세먼지 박람회에서는 공기청정기와 마스크, 미세먼지 차단망, 측정기 등의 제품과 각종 공기 정화 식물들이 부스를 채운 행사장 한편에서 손수 공기청정기를 만들어보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이를 주관한 ‘십년후연구소’에서는 최소한의 부품으로 필요한 기능에 충실한 공기청정기를 함께 제작하거나 제작 키트를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시판 공기청정기, 그리고 더 다양한 DIY 제품들 사이에서도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저렴한 가격과 쉬운 제작 방식 뿐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한다는 점이었다. 십년후연구소에서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공기청정기의 생산과 사용, 사용 후 폐기의 전 과정에서 미세먼지가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며 “생산하고 사용하고 폐기할 때까지, 미세먼지 발생을 최소화하는 공기청정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고 업그레이드 된 ‘최소한의 공기청정기’는 성능 면에서도 기존 제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측정 실험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미세먼지의 원인으로 꼽히는 자동차, 화력발전, 끊임없는 공사와 공장 가동, 기후변화까지. 이 문제가 어려운 것은 결국 밖을 향해 해결을 요구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눈앞의 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일 못지않게 그러한 오염이 어떻게 생겨 나는지를 성찰하고 자각하는 것, 이를테면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배달 문화와 미세먼지의 상관관계 등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일이 진짜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미세먼지 소송은 오는 10월 첫 변론이 예정되어 있다. 소송 변호를 맡은 지현영 변호사는 판결 자체보다는 미세먼지의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환경이 계속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환경성 질환에 노출될 것이고 국가에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직업적으로 혹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더 많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이들, 공기질에 예민하고 호흡기가 취약한 이들, 경제적 여건과 정보 접근의 측면에서 소외된 이들이 가장 앞에 서게 될 것임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적어도 숨 쉬는 일에 있어서는 평등한 권리가 더욱 보장되길 바란다면, 공기청정기의 전원을 켜는 동시에 편리함의 유혹을 이겨내는 실천 하나씩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