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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그것을 알려주마] 선거가 끝나고, 현수막이 남았다.

선거가 끝나고 거리 풍경이 한결 여유로워진 느낌이다. 선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현수막들이 일제히 걷혔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때보다 기표할 투표용지가 많았던 이번 지방선거에는 전국적으로 9,363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총 13만 8,192장의 현수막이 사용됐다. 대로변, 목 좋은 교차로는 자리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에다, 커다란 건물 벽을 덮은 대형 현수막은 내부의 모든 층에 시야가 차단되는 불편을 초래함에도 별다른 규제가 없어 변함 없이 내걸리고 있다. 선거 후 당선/낙선 사례 현수막까지 합하면 총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선거 현수막은 올해 4월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기존 ‘당해 선거구 안의 읍면동마다 1매로 규정하던 것에서 읍면동 수의 2배 이내로 개수 및 게시 장소에 대한 규정이 완화되었다. 유권자의 알 권리와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여전히 쉽고 효과 있는 홍보 수단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선거 현수막의 경우 제작, 게시, 철거에 드는 비용이 선거 비용에 포함되어 해당 기준에 따라 보전 받을 수 있다. 적어도 비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선거 비용을 보전 받을 게 확실시되는 경우 가능한 허용된 최대의 개수를 걸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번 선거에서 선거 비용 전액을 돌려받는 대상자는 5,640명으로 전체 후보자의 60%, 선거 비용 절반을 보전 받는 대상자 979명을 합하면 70%에 이른다.

 

 

철거된 현수막은 어디로 갈까

선거가 끝나고 철거된 현수막은 어디로 갔을까? 비록 우리 시야에서는 사라졌지만, 매일같이 발생하는 무수한 쓰레기처럼 대부분은 어딘가에 묻히거나 소각을 기다리는 처지일 것이다. 현수막 천으로 흔히 사용되는 것은 폴리에스테르 원단에 단면 코팅 처리를 한 ‘그래픽 천’ 으로,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을 발생시키고 매립할 경우 썩는 데 수십 년이 걸리며 염료 등의 물질이 토양을 오염시킨다.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운명이다.

폐현수막 문제는 선거 때마다 계속 제기되어왔다. 지난 2012년 총선 당시 발생한 폐현수막은 1만 4천여 장, 무게로는 21톤. 폐기 비용은 28억 원으로 추산됐다. 비단 선거철이 아니어도 폐현수막의 처리는 늘 골칫거리였다. 그동안 지자체와 환경 단체들을 중심으로 폐현수막을 장바구니, 마대 자루 등으로 재활용하는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노인, 저소득층, 장애인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사회적 기업과 협약을 맺어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도 운이 좋게 살아남은 현수막은 재활용 또는 업사이클 업체에서 새로운 쓰임을 얻게 된다. 올해 상반기에 대규모 쓰레기 대란을 겪었던 만큼, 환경부에서 나서 선거 현수막 재활용 시범 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폐현수막으로 장바구니를 만들어 일부 지역 마트 및 재래시장에 무상 배포할 계획이다. 하지만 보다 다양한 쓰임을 찾지 못한다면 버려지는 현수막의 수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철저한 세탁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코팅이나 인쇄 원료의 물질이 묻어나는 문제도 재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친환경 현수막’은 불가능할까? 이번 선거에서 ‘친환경 선거’ 캠페인을 제안한 사회적기업 터치포굿에서는 현수막 제작 시 ‘에코 폰트를 사용해 잉크를 줄이고 불필요한 색을 넣지 않는’ 것으로도 환경에 영향을 덜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코팅을 하지 않고 소각 시 발생하는 유해물질을 사전에 차단하는 친환경 원단, 또는 ‘타이벡’과 같이 연소 시 물과 이산화탄소만이 남는 재료를 사용한 현수막을 제작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이 경우 플라스틱으로 100% 재활용이 가능하며, 새로운 디자인을 입혀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일도 보다 수월하다. 아직은 다소 높은 비용이 장벽으로 존재하지만, 이처럼 활용만이 아니라 폐기 과정에까지 고민이 이어진다면 다양한 대안들이 생겨나고 기존의 방식을 대체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언제까지 현수막에 의존해야 할까

궁극적으로는 친환경 현수막을 넘어 현수막 자체의 쓸모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온갖 정보를 디지털로 소통하는 시대, 언제까지 현수막에 의존하는 선거 홍보를 계속해야 할까. 더구나 정보 전달의 측면에서도, 현수막에 담기는 제한적인 문구가 유권자의 판단과 투표율 상승에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을까. ‘현수막 공해’라 일컬을 만큼 미관과 시야를 해치고 안전 문제까지 야기하는 지금의 방식은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선거 기간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거리 곳곳을 점령한 현수막은 한국 특유의 현상으로 이야기된다. 상업적 홍보물이나 정책 공지뿐 아니라 단체 등의 행사와 활동 안내 시에도 현수막은 고민거리다. 결국 마땅한 대체 방안을 찾지 못하면 늘 그렇듯 불과 몇 시간의 쓰임을 다한 뒤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선거 현수막을 포함해 널리 알려야 하는 공지와 안내의 경우 일정하게 지정된 장소에 규정에 따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일회성 필요의 경우에도 이후 재사용과 재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가 더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선거가 끝나고 현수막이 걷혔다. 그 속의 어떤 말들은 함께 거두어지고, 또 다른 말들은 더 힘을 얻어 다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살아남은 그 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되는 시간과 공간이 더 많아질 때, 그래서 결국 정치가 일상과 더 가까워져야만 짧은 선거 기간 반짝 눈길을 끄는 현수막에 보다 덜 의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선거가 여러 변화의 시작을 알리고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선거로 마무리되었다면, 다음번에는 선거문화에서부터 변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