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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지역에 뿌리내리되 지역에 갇히지 않는 정치

- 일본 전국자치체의원입헌네트워크 의원들을 만나다


지난 6.13 지방 선거가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지역 현안과 의제는 중앙 정치의 이슈에 묻혀 좀처럼 부각되지 못했고 거대 양당의 지방의회 독식도 여전했다. 우리 지역과 동네의 일,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누가 어떻게 논의하고 결정하는가 라는 질문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결과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우리에 비해 지방자치와 분권이 보다 체계적이며 활발히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앙 정치에서 다뤄지지 않는 지역의 의제를 전면에 내거는 다양한 지역 정당과 후보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중 한 줄기로 1960년대 안보투쟁의 경험 속에서 새로운 정치를 구상하기 위해 혁신자치체운동 등 지역시민운동을 벌여온 흐름이 있다. 지역의 환경운동, 노동운동, 생협운동의 경험과 조직 기반이 정치 운동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정당법상의 세세한 규정을 두지 않고 보다 폭넓게 정치활동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특징도 그 바탕에 있다.
이들 지역 의원들은 주민 삶에 밀착한 생활 의제들을 다루며 풀뿌리 정치를 실현해왔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이 지역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치와 글로벌 이슈를 함께 고민하는 속에서 2014년에는 아베 정권의 개헌 추진 등 극명한 우경화 흐름에 반대하는 지역 의원들 700여 명이 초당파적으로 협력하는 ‘전국 자치체 의원 입헌 네트워크’ 가 꾸려졌다. 입헌주의와 평화주의를 두 기둥으로 하며, 탈핵(반핵)도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최근에는 한반도 정세 변화와 평화 체제 조성의 흐름에 주목하여 북일 관계를 포함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자치체 의원들의 역할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8월말, 한일간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모색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일본 자치체의원입헌네트워크 소속 의원들과의 간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정치의 대안을 고민하는 의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지방자치가 중앙을 바꿀 수 있을까
이번 방문단의 일원인 마츠야 키요시 의원은 1987년부터 시즈오카 지역에서 시의원과 현의원 등으로 활동해왔으며 녹색당 창당과 이후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일본의 녹색당 그린즈 재팬은 2012년 7월 창당했다.). 현재 전국자치체의원입헌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왜 일본에서는 지방자치가 발달했음에도 중앙 정치를 바꾸지 못했을까?’ 라는 질문에 그는 일본 정권이 줄곧 북한의 위험을 강조하며 안보 이데올로기를 강화해왔고 한편으로는 지역에서도 우익적 지방 자치 운동이 강화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아베와 자민당이 20~30%밖에 되지 않는 지지율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 중 하나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경제가 회복되는 추세라는 데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지방자치가 더 힘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업화와 재벌 중심의 경제를 대체할 작은 규모의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냄으로써 정권의 토대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지역에서부터 대안 모델을 만들어 경제를 바꾸면서 동시에 정권을 바꾸는 전망, 나아가 개헌 국민투표에서도 승산을 만들어 헌법9조를 지켜낸다는 목표이다.(현재 개헌에 대한 여론조사는 찬반 의견이 절반 정도씩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일본 헌법은 중앙과 지방자치의 대등한 권한을 보장하고 서로 간섭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관행상 지방이 중앙에 종속되어 가는 모습도 보인다고 한다. (그 극단적 사례가 오키나와이다.) 따라서 헌법이 보장하는 권한을 되찾고 민주적 장치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성이 중심이 된 생활 정치의 과거와 현재


생협 운동을 통해 정치 운동에 진입한 여성들의 활발한 활동도 일본 지방자치의 특징 중 하나이다.
도쿄생활자네트워크 소속인 야마구치 레이코 도쿄 도의원의 경우 지역의 생활클럽생협운동을 통해 지역 정치 활동에 참여하여 3기 째 의정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60년대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지만 점차 과격성을 띠면서 시민들과 멀어졌고 이후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자신 역시 정치와 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다 이후 생협운동을 통해 결합하게 된 경우라고 소개했다.
최근 들어 지역정치의 줄기 중 하나인 ‘네토(네트워크)’ 활동이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데 대한 자체의 반성과 성찰도 들려주었다. 1977년에 결성된 도쿄 생활자 네트워크의 경우 자민당, 공산당 외에 가장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동안 ‘생활 정치’ 를 내걸고 총 184명의 지방 의원을 배출했다. 정치권력의 사유화와 특권화를 막고 다양한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의원 연임을 3선으로 제한하는 자체 규정을 두고 임기 이후에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정 활동과 시민 정치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순환 원칙이 흔들리는 등 자발성과 헌신이라는 그동안의 동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코마츠 히사코 전 도쿄도 의원은 생활자네트의 기반인 생활클럽생협 조직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생활클럽의 경우 초기부터 정치운동을 지향하고 그 수단으로써 협동조합을 통한 공동구매 활동을 해왔는데, 그에 필요한 여러 집단적 결정 과정 속에서 자연히 주부들의 민주적 역량이 향상되고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왔다. 그런데 현재는 소비운동이 아닌 소비 자체에 머무르는 경향이 생기고, 공동구매를 통해 사회를 바꾼다는 의식이 점차 약해지면서 조합운동이 정치운동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은 현실이라고 한다.


또한 이전에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운동으로서 기존 정치 세력과 차별화되고 장점을 가질 수 있었던 반면, 지금은 사회적으로 여성들의 기회가 많아진 데다 주요 의제인 육아나 노인돌봄 문제가 여타 정당에서도 다루는 이슈가 되어 정책의 매력이 떨어지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그 밖에도 네토의 중요한 가치인 자치, 분권, 정보공개 등을 일반인들에게 피부로 와닿도록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무당파와 정치적 무관심이 늘어나는 현실에서의 여러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번 방문에서 한국 시의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에서도 분권과 자치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이전보다 크게 높아졌음을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교육감 직선제와 교육 현장에서의 다양한 실험 등 일본보다 훨씬 앞서 있는 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아시아 평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군마현에서 3선에 성공한 카도쿠라 쿠니요시 의원은 정권 교체를 목표로 현재 여러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아베 정권과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으로 외교 안보 분야를 꼽았다. 그는 중국, 미국, 러시아와의 관계와 함께 최근 한반도 변화에 따라 무엇보다 가장 가시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시작점으로 북일 관계와 한일 관계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동아시아평화회의 이부영 운영위원장은 이와 관련하여 2015년에 한국의 시민 운동 영역에서 일본 평화 헌법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했던 사례처럼 시민 운동 차원에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드는 데 동아시아 각국이 함께 협조하고 일본의 시민 운동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협정 체결 촉구 운동을 벌이는 등 가능한 지점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진행중인 북한의 비핵화는 일본의 핵무장을 포함한 재무장을 막는 가장 직접적 요인이 될 것이며, 따라서 한반도에서의 긴장 완화와 평화 확립을 위해 일본의 민주주의 세력들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궁극적으로 일본에서 건전한 지방자치를 촉진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국을 방문한 의원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의 정치 변화를 가능하게 한 대중 운동의 힘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반면 지역에서 풀뿌리와 생활에 기반한 정치를 오랜 기간 일궈온 힘은 20년이 넘도록 성숙한 지방자치를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광장의 정치와 풀뿌리 생활 정치의 조화가 양쪽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 정치를 넘어 동아시아 차원의 거대한 변화를 내다보는 시기,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고 이후를 모색하는 만남은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나와 지역, 국가와 세계가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듯이 정치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지역 정치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국경을 초월하는 자치와 평화의 물결로 연결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