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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구태정치로는 평화도 미래도 보장할 수 없다

거대한 전환이 시작됐다. 아니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한반도에서나 지구적으로나 대전환은 불가피하다. 생존과 공존, 평화를 위한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방북으로 인해, 전쟁의 위협이 없는 한반도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걸림돌이 되는 것은 미국, 일본, 중국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국내 정치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번 방북에서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포함한 3당 대표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북측 인사들과의 일정을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명을 들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제1 야당의 행태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방북 성과를 높게 평가하는데, 평소에 미국을 추종하던 제1 야당은 성과를 깍아 내리려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그 중요한 순간에 엉뚱하게도 ‘일본 자민당의 정권 복귀’ 에 관한 간담회를 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정치로는 이제 열리기 시작한 평화의 길이 견고하게 되기 어렵다. 평화를 위해서는 정치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흔히 동 . 서독을 우리가 참고할 사례로 얘기하지만, 서독의 정치는 우리의 정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서독의 정치는 동-서독간의 관계에 대해 장기적이고 일관된 안목으로 접근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비례 대표제 선거 제도가 있었다.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 제도에서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정당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또한 특정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기 어려우므로 여러 정당들간의 협치가 불가피하다. 서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1970-80년대에 서독의 거대 양당인 사회민주당과 기독교민주당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했지만, 단독 집권이 아닌 연립 정부의 형태였다. 그리고 연립 정부의 파트너였던 소수 정당은 자유민주당이었다. 어떤 때는 사회민주당과,  어떤 때는 기독교민주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한 자유민주당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는 1974년부터 1992년까지 서독의 외무부 장관을 맡았다. 그래서 일관되게 동-서독 관계를 풀어갈 수 있었다.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바뀔 때마다 남북 관계가 출렁거리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정치였다.

또한 서독은 연방제 국가였고 지방 분권이 잘 되어 있었다. 이것은 통일 후에도 지역 간 갈등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자기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각 주에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서독은 양원제를 택하고 있어서, 상원에서는 각 주의 이익이 대표 되는 것이 가능했다.

 

따라서 한반도가 대전환을 맞는 시점에, 대한민국의 정치도 근본적인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시스템 개혁이 필수적이다. 선거 제도를 연동형 비례 대표제로 바꾸는 것은 물론, 지방 분권도 담대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한편 올 여름의 폭염이 보여주는 것처럼,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이제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혁명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경제성장 논리에 밀려서 온실가스 감축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미국, 중국같은 온실가스 대량 배출 국가만을 탓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빨리 증가하는 국가군에 속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폭염과 강추위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농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식량 위기, 물 위기를 낳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농업 정책은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뒷 순위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 때문에 지금도 청와대 앞에서는 농민 단체들의 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멀리 보며 문제를 풀어가는 정치가 아니라, 당장의 정치적 이익에만 급급한 정치의 탓이 크다.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임기 4년의 국회의원들이 자기 임기 동안에 풀 수 없는 문제이다. 장기적이고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 그것은 결국 정당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당들이 책임 있게 정책을 제시하고, 정책으로 경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선거 제도가 역시 중요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 역시 비례 대표제 선거 제도를 택한 국가들이 많다. 비례 대표제 선거 제도에서는 정당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도 정책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밖에 없고, 녹색당과 같은 새로운 정당들도 국회에 진출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일은 어제와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어떤 모습의 미래가 될 지는 많은 부분 정치에 달려 있다. 전환의 시대에 걸맞는 정치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선거 제도의 개혁도 필요하고, 새로운 정당들의 성장도 필요하다. 당장 올해 하반기에 선거 제도 개혁이 이뤄지느냐가 국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그리고 2020년 총선에서 구태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물론 쉽게 희망을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 제도 개혁도 무척 어려운 일이고, 정치가 크게 변화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삶을 바라는 시민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들이 모아진다면 지금 필요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 이 글은 지난 9월 22일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도 게재되었습니다([대전환의 밑그림 – 녹색전환연구소 5주년 기념 기획연재] 네 번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