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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자료 - 칼럼
선거제도,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고 전면 비례대표제로!

지역구를 없애지 못한다면 의원정수 500명으로!

국회 스스로 못 바꾼다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자!

 

요새 동네 거리에는 국회의원이나 정당 명의의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현수막은 주로 이런 내용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 2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우리 동네를 지나는 GTX-C구간 공사를 확정했습니다.” 매년 국가 예산안을 의결하는 연말에 볼 수 있는 현수막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볼 수 있었다.

 

지역 발전을 위해 국가 예산을 확보했다는 국회의원들의 자기 과시는 어찌 보면 낯 뜨거운 일이다. 왜냐하면 국회의원은 자신의 동네를 위해서 일하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는 헌법을 개정하고 법률을 제·개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기관이다. 또는 국가의 예산을 심의하고 국가 행정을 감사·조사하는 역할도 지닌다. 그들이 활동하는 범위는 지역구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다. 국회는 국가 예산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합리적 토론의 장이어야 하는 것이지,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정쟁의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매년 반복되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는 현 선거 제도 개혁 없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등만 당선되는 선거 제도는 동네를 위해 돈 한 푼 더 챙김으로써 자신의 성과를 최대한 홍보해야만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구조다. 지역의 이해 당사자들 눈치 보기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치원 3법만 보더라도, 시설장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혹은 그 이유를 핑계로 통과시키지 못하고 ‘패스트 트랙’ 으로 연명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겐 민의보다 차기 선거가 더 중요한 것이다. 국가 정책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두고 매번 반복되는 지역구 후보자 공천 잡음은 지역구 제도를 존속시켜야 하는지를 되묻고 있다. 연고도 없는 사람을 낙하산으로 내리 꽂는 일은 다반사다. 능력과 무관하게 말 잘 듣는 자기 사람을 내세우는 정치 기득권자들의 행태는 유권자들을 절망시키곤 한다. 지팡이라도 꽂으면 당선된다는 독과점 지역주의 정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정치 기득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선거 제도를 바꿔야 민주주의가 한 발 더 나갈 수 있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며 비례성 높은 선거 제도로 개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12월 15일, 5개 원내 정당이 연동형 비례 대표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합의했지만, 그 후 거대 양당의 주요 당직자들은 이 합의를 무시하는 언사를 내뱉고 있다. ‘연동형 비례 대표제로 합의한 적이 없으며,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힘주어 말하는 이도 있고,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의원 정수를 270명에 맞추자’는 제안도 한다. 예상은 했지만, 선거 제도 개혁은 험난한 길이다.

 

국회의원들이 선뜻 연동형 비례 대표제를 받지 못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지역구를 줄여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 대표제는 어떤 식으로든 비례 의석을 늘려야 의미를 지닌다. 300명 의원 정수에서 적게는 10%, 많게는 20%까지 늘려야 한다는데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구를 줄이는 일은 난망하다. 예컨대, 2012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석은 246석이었다. 당시에도 비례 의석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2016년 총선은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지역구 의석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7석을 늘이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했다. 대신 비례 의석 7석이 빠졌다. 그만큼 지역구 의석은 정치인들의 밥그릇이며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래서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다.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전면적인 비례 대표제를 실시하자는 뜻이다. 물론 지역구를 없애는 것이 정치 발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지속돼 온 지역구 제도는 오히려 정치 발전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국회의원 스스로 지역구를 조정하여 비례 의석을 늘리지 못하는 처지라면, 과감히 지역구를 없앰으로써 국회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말하자면, 전면적 비례 대표제를 도입한다면 지역구 조정을 위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고, 지역에서 이해 집단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게 된다. 그럼으로써 오롯이 국가를 위한 입법 및 행정 감시 활동에 매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전면적 비례 대표제가 가장 바람직한 선거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정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언감생심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지역구 의석과 비례 의석을 똑같이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의 지역구 의석은 대략 250석 선에서 조정 가능하다. 이를 그대로 두고, 비례 의석을 250석으로 맞추는 것이다. 지역구 제도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이를 견제할 만한 동수의 비례 의석이 필요하다. 총 500명 규모다. 인구 비례에 따라 OECD국가들의 평균 의원 수와도 비슷한 수치다. 지역구 조정을 위한 치열한 정쟁이 필요 없다. 물론 국민들의 원성은 감수해야 하지만, 충분히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바닥인 상황에서, 전면적 비례 대표제나 의원정수 500명 확대는 무모한 주장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대통령을 탄핵 시키며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국민들이 국회를 극도로 불신하는 현상은 정치 무용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불만의 결과다. 따라서 선거 제도 개혁에 있어서 민심을 핑계로 지역구 제도를 공고히 하거나 의원 정수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중단해야 한다.

 

국회가 선거 제도를 제대로 뜯어 고칠 자신이 없다면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위원회가 그랬던 것처럼, 국민에게 물어보라. 무작위 추첨을 통해 ‘바람직한 선거 제도를 위한 공론화 위원회’ 를 구성하여 다양한 선거 제도를 소개하고 토론하게 하자. 어쩌면 연동형 비례대표보다 더 좋은 선거 제도가 탄생할 수도 있다. 선거 제도 개혁 앞에 멈춰선 한국 정치 장벽을 국민의 집단 지성으로 넘어가 보자. 공론화 위원회가 정치 개혁의 위대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