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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 젠트리피케이션과 정의로운 전환

건물 부문 최종에너지 소비는 전 세계의 36%를 차지한다. 직간접적인 이산화탄소 배출은 거의 40%에 이른다(IEA, 2017). 특히 도시의 경우 에너지 소비 대부분은 건물이 차지한다. 가령 서울의 경우 2017년 최종에너지 소비 중 건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1%에 달한다. 따라서 도시의 기후 위기 대응 정책 중 가장 핵심은 건물 부문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건물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규모 건물 효율 개선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 최근 각 나라에서 기후 위기라는 생태적 파국에 맞서 내놓은 정책 방향이자 정책 패키지인 그린뉴딜의 경우 정부 재정 지출을 통한 (주거용) 건물 효율 개선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효율 개선을 통해 적정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적정 주거를 공급하는 정책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주거공간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피난처가 된다는 점에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적정 주거공간은 폭염, 한파, 태풍 등 기후 환경적 외부 위협으로부터 안전과 쾌적함을 보장하는 핵심 방편이 된다. 무엇보다 저탄소 경제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축소될 산업의 경우 일자리 축소가 필연적이라 일자리 창출 계수가 높다고 평가되는 건물 효율 개선 사업은 전환의 충격과 전환으로 인해 발생할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고용 창출의 돌파구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주거 건물 효율 개선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효율 개선 사업을 통해 높아진 건물의 가치로 인해 기존 거주민들 중 임대료 상승분을 감당할 수 없는 주거 약자를 몰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테판 보자로프스키·장 프랑코프스키·세르지오 에레로(이하 보자로프스키)의 공동 사례연구인 저탄소 젠트리피케이션은 폴란드 그단스크 레트니카 지역의 낙후된 도시환경과 건물 개선 및 정비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인 원주민들이 높아진 임대료 등으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만 했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보자로프스키는 오염시설 제거나 공원 등 녹색 도시(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지역 부동산 가치 상승과 보다 부유한 거주자들이 모여들어 원주민이 축출되는 과정인 환경적/생태적/녹색 젠트리피케이션과 구분해 건물효율 개선으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저탄소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지칭했다. 외부환경 개선뿐 아니라 기후 위기, 탄소 저감이라는 논리로 집행되는 건물효율 개선 사업의 부작용을 지적한 것이다. 물론, 시 당국이 지역민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적절한 정보 제공도 없이 공동체의 필요와 해당 지역이 겪는 사회적 배제, 실업 등의 지속적인 문제를 풀지 않으면서 추진했다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은 탈 탄소 정책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에 연구의 함의가 있다.

 

건물 효율 개선 사업은 국내에서도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되어 추진된다. 주거지 도시 재생 사업보다는 상업지 도시재생사업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촉발시키기도 하지만, 기존의 사회 불평등을 완화할 보완적 정책 없이 추진되었던 소규모 주거정비, 재개발 사업이 약탈적 축출 적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켰듯이 저탄소 정책으로 추진되는 건물효율 개선 사업 또한 목표와 어긋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연쇄적으로 에너지 소비 감축을 통한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목표 또한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정책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스의 유류세 인상 반대와 맥이 닿는 지점이기도 하다.)

 

탈 탄소 사회로의 전환과정에서 특정 산업부문의 일자리가 축소됨에 따라 발생하는 전환과정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정의로운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건물 에너지효율 개선 과정에서도 정의로운 전환이 정교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주거 건물 효율 개선 사업의 목표가 제대로 충족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주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불평등한 부동산 소유 관계를 극복해낼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 소유자 중심의 지대 추구 사회가 된 현 상황에서 세입자 및 사용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주거를 공공재로 인식해 모두에게 적정 주거를 보장하기 위한 부동산 권력 구조 개편 과정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기후 불평등과 주거 불평등이 맞닿아 있음에도 기후 위기 대응과 주거 불평등 대응이 상호 충돌하게 된다.

 

다니엘 코헨은 주거를 위한 그린뉴딜에서 정부 주도의 대규모 저탄소 공공주택 공급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민간 부문의 주거공급과 금융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저탄소 적정 주거 공급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거공급량 증대가 곧 주거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논쟁의 문제이지만, 주거 부문의 시장 메커니즘을 통제하고, 주거 공공성을 높이자는 발상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영국 녹색당도 최근 총선 국면에서 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제출할 법안을 발표하면서 10만 개의 탄소 제로 임대 주택 공급과 임대료 인하 법을 포함시켰다. 영국, 특히 런던의 높은 임대료에 대응한 것이긴 하지만 두 법안 자체가 긴밀히 호응하는 정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 또한 건물효율 개선을 일자리 및 소득 창출, 경제 활성화, 산업 부흥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주거 공공성 관점에서 보는 논의를 풍성하게 해야 한다.

 

참고자료:
Stefan Bouzarovski·Jan Frankowski·Sergio Tirado Herrero, Low-carbon gentrification: When climate change encounters residential displacement, 2018

Daniel Aldana Cohen, A green new deal for housing, 2019

Chris Jarvis, Greens Launch manifesto with 10 bills for radical change,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