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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희망의 싹을 틔워야 한다

마저리 켈리, 테드 하워드 지음, 2021, 『모두를 위한 경제-합리적인 공동체의 희망, 클리블랜드-프레스턴 모델 설명서』, 학고재

 

1. 임박한 파국: 기후위기와 불평등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현실 속에 들어와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도 더 심화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UN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의 2018년도 보고서는 기후위기가 초래할 파국을 막아낼 수 있는 시간이 고작 10년 내외라고 밝혔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단기 처방이나 기술적 해법만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평등을 초래하고 화석연료 의존적이며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후위기가 비롯되었기 때문에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그린 뉴딜이나 그린 딜과 같은 개혁적인 정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향점이나 정책에서 차이가 있지만, 핵심은 국가가 재정을 풀어서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녹색산업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서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막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비판도 있고, 현재의 불균형한 세계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수긍할만한 비판이다. 하지만 지난 7월 14일 발표된 ’한국판 뉴딜 2.0‘을 보면 그런 비판조차 아까울 지경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대기업이 새로운 수소에너지와 디지털 경제를 통해 계속 성장함으로써 온실가스도 줄이고 일자리를 만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녹색이라는 외피만 뒤집어 썼을 뿐 과거의 경제성장 전략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50년 탄소중립을 외치면서도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해외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출하는 모순을 보인다. 기후위기와 파국이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발민족주의, 경제성장 우선주의가 지배적이다. 뭔가 해볼 수 있는 시간이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의 현실은 한심한 게 아니라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시민들도 지금의 현실이 고통스러우면서도 그 고통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기 보다는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각자도생의 무간지옥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 이제 희망은 없을까?

 

2. 파격적인 희망의 씨앗을 심기

 

비영리 민간단체 ‘협력하는 민주주의’에서 각각 실행 부의장과 의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마저리 켈리와 테드 하워드는 『모두를 위한 경제』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처한 곤궁을 벗어날 대안과 희망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보기에 현재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경제’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중요한 특성은 ‘추출적(extractive) 경제’와 ‘자본편향’이다. ‘추출적 경제’는 “소수의 특권을 최고 목적으로 삼는 경제”(57쪽)이며 그 경제의 핵심인 ‘자본편향’이란 “부자와 금융계에 유리하도록 시스템 전반에 눈에 보이지 않게 내장된 편파주의”(33쪽)이다. 따라서 추출적 경제 시스템에서는 “지구상 어디서나 금융 엘리트가 극대의 이득을 차지하도록 설계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노동자, 마을, 자연환경 등이 입는 손상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33쪽). 저자들은 추출적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경제 민주주의’ 혹은 ‘민주적 경제’를 제시한다. ‘경제 민주주의’란 보통 사람들의, 보통 사람들에 의한,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경제를 의미한다. 민주적 경제는 인간이 성숙한 도덕적 행위자로 성장하고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체험하면서 살 수 있게 하는 사회제도적 조건(존 듀이)이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겪는 다양한 비자유(경제적 기회 결핍과 빈곤)를 없애는 과정으로서의 발전(아마르티아 센)이 가능한 조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민주적 경제에서 누리는 자유는 “대기업이 금전적 추출을 극대화하려고 온 지구를 쑤시고 다니는 자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실질적으로 번영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57쪽).

 

추출적 경제의 폐해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저항들, 칼 폴라니의 용어로 하면 이중적 운동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연대 경제, 새로운 경제, 공유 경제, 재생적 경제, 삶의 경제, 임팩트 투자, 우리 사주”(37쪽) 등등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흐름이 존재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대안적 운동을 관통하여 통합적으로 살피기 위해 ‘민주적 경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민주적 경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경제 내부로 침투시켜 경제 시스템의 DNA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주적 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한다. ‘공동체의 원칙’(공공성이 우선이다), ‘포용의 원칙’(배제된 이들에게 기회를 돌린다), ‘장소의 원칙’(지역 자산을 마을에 머물게 한다), ‘좋은 노동의 원칙’(자본보다 노동이 먼저다), ‘민주적 소유권의 원칙’(공정과 지속가능성에 기반한 경영 구조를 설계한다), ‘지속가능성의 원칙’(생명의 근간인 생태계를 지킨다), ‘윤리적 금융의 원칙’(투자의 최우선 목적을 사람과 지역에 둔다)이다. 책에는 각각의 원칙을 현실에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들을 주인공과 에피소드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모든 원칙들이 다 중요하지만, 좀 더 강조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원칙은 ‘민주적 소유권의 원칙’과 ‘윤리적 금융의 원칙’인 것으로 보인다.

 

1) 민주적 소유권의 원칙

 

자본편향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추출적 경제를 민주적 경제로 바꾸기 위해서는 소유권에 대한 설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은 사회구성원이 다 같이 노력해서 만든 거대한 부를 계속해서 독점적으로 가져갈 권리가 있는가?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주주들의 목표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이 책의 저자인 마저리 켈리는 아무도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자본 권리 신수설’(the divine right of capital)이라고 비꼬았다. 마치 자본은 원래 그런 권리가 있고, 이것을 자연적인 법칙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비난하는 것이다. 소유권을 민주화한다고 하면 곧바로 국가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들은 아니라고 명토 박는다. 추출적 경제가 경제 엘리트들의 손에 권력을 집중시킨 것이라면 국가 사회주의는 관료 엘리트들의 손에 권력을 집중시킨 것으로서 민주적 경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기업의 소유권을 민주화시키는 것은 단순히 노동자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나 혹은 노동자들이 경영 통제권을 다 갖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적 소유권은 회사를 설계할 때 회사의 목적이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의 달성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하고, 자산(혹은 자본) 소유권을 보통 사람들에게 분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 사례로 나온 EA 엔지니어링은 호소의 수질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을 주로 하는 회사인데, 2014년에 회사의 주식 지분을 ‘우리사주 신탁제’로 100% 전환한 바가 있다. 우리사주 신탁제는 노동자와 기업이 공동으로 출자해서 기금을 만들고, 기금 운영에서 나온 성과를 다시 나누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런 방식은 ‘직원 소유’와 ‘공동 이익’이라는 기업의 목적에 온전히 부합하는 방식이다.

 

클리블랜드의 에버그린 협동조합은 ‘직원소유제기금’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기금의 취지는 “민간 기업을 매입해 직원소유제로 전환시키는 것”이며, “좋은 노동을 창출하고, 부를 지역에서 순환시키며, 동시에 투자가들에게도 가치를 만들어주려는 것이다”(215쪽). 이러한 ‘직원소유’방식은 추출적 경제 시스템 속에서 막대한 부가 극소수 엘리트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가장 과감한 방식은 대기업의 소유와 통제권을 겨냥하여 경영권을 매입해버린 다음, 이사진을 새로 선임하고 기업의 목적도 새로 정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지속가능성의 원칙’에 소개된 사례이다.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석유기업을 공공이 매입하여 소유권을 민주화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전략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거대은행을 살리기 위해서 구제금융을 실시했는데,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구제금융을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녹색 양적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화폐를 창출해서 친환경 기간 시설에 직접 자금을 대라는 것이다. 이처럼 소유권의 민주화는 경제 민주주의와 지속가능성을 함께 담보할 수도 있다.

 

2) 윤리적 금융의 원칙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추출적 경제는 금융화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지역 경제 시스템에 에너지와 활기를 불어넣기는커녕, 지역 외부의 투자자들에게 이윤이 더 빠르게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금융경제란 본질적으로 주식·채권·대출·주택 담보 대출 같은 자산을 모은 것으로, 모두 실물 경제에 청구권을 행사하는 증서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 1달러를 빚질 때마다 다른 누군가의 자산은 1달러씩 늘어나게 마련이다”(210쪽). 금융화가 진전된다는 것은 실물경제 대한 청구권도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결국 거품이 터지게 된다. 2008년 금융 위기가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었다. 따라서 금융화된 추출적 경제를 제어하려면 금융기관을 공공 소유로 만드는 것이 첫 시작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2008년 금융 위기 때 거대 금융 기업 일부를 사실상 국유화하기도 했다가 슬쩍 다시 민간에게 돌려준 적도 있다. 유럽의 민간 싱크탱크인 ‘신경제 재단’은 유럽이나 미국 모두 다음 위기에 대비하여 거대 은행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공공 소유로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제레미 코빈의 실험도시라고 이름붙인 프레스턴은 윤리적 금융의 원칙을 실현시켜 “경제에 민주주의를 더 많이 부여하고 소유권을 분산함으로써 회복 탄력성을 높인” 사례이다(200쪽).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국 정부의 재정 긴축 정책으로 인해 프레스턴 같은 소도시들은 타격이 컸다. 과거 산업혁명의 요람이었던 프레스턴은 2010년 고용과 복지 모두 영국에서 최악의 도시가 되었고, 영국 자살률 1위 도시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지역의 마지막 은행이 문을 닫게 되자, 시의회는 지역 은행을 재건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대안 은행의 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햄프셔 마을 은행’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금고 연합’이었다. “햄프셔 마을 은행은 독일의 지역 저축 은행인 ‘슈파르카센’과 ‘협동조합 은행’을 모델로 한 것이다. 슈파르카센은 법에 따라 은행이 소속된 마을 공동체를 지원한다는 목표를 사업허가증에 명시하며, 은행 부문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불과하지만 중소기업 대상 대출 비중은 70%나 된다”(206쪽). 영국의 마을금고 연합은 2015년에 만들어졌는데, “지역 협동조합 은행 18개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각 은행은 소속 지역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 임무다. 고객이 은행을 통제할 수 있고,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한다”(206쪽). 또한, 프레스턴은 대기업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이 소유한 기업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시의회는 ‘지역 경제 전략 센터’와 함께 지역 내의 앵커 기관(대학, 공공기관, 병원 등)의 2012~2013년 지출을 조사했는데, 10억 파운드나 되는 지출 중에서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금액이 불과 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시의회는 공공주택관리청, 센트럴 랭커셔 대학교, 경찰서 등을 설득하여 프레스턴에 뿌리를 둔 농업, 인쇄, 건설 업체를 더 많이 이용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2016~2017년 지역 내 지출이 18%로 올라갔고, 임금이 생활임금 수준에 못 미치는 일자리가 23%에서 19%로 줄어들었으며, 실업률은 2014년 6.5%에서 3.1%로 내려갔다. 하지만 영국 중앙 정부는 긴축 정책을 앞세워 프레스턴시의 노력을 외면했고, 프레스턴의 은행에서 자본이 빠져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특정한 도시의 노력만으로 윤리적 금융이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다. 중앙 정부의 전국적 정책이 뒷받침 될 때에야 이러한 실험이 성공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중앙정부는 아니지만 미국의 노스다코타 은행은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노스다코타 은행의 소유주는 주정부이고, 지역 주민이 소유한 은행과 신용조합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그 결과 노스다코타주는 1인당 금융 기관의 수가 미국 전체 평균의 여섯 배 가까이 된다. 그 덕에 노스다코타주는 2008년 경제 위기도 큰 탈 없이 견뎌낼 수 있었고, 여기서 영감을 얻어 뉴욕시,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루이스, 뉴멕시코, 뉴저지 등지에서도 공공 소유 은행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208쪽)

 

 

3. 생각을 바꾸자

 

우리는 자본편향을 가진 추출경제를 마치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불평등은 점점 커지고, 기후위기는 심화되었다. 사실 이럴 필요가 없다. 이러한 상황이 비정상적이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 소수가 아니라 모두가,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 더 중시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 시스템 전환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앵커 기관들의 참여와 중앙정부의 지원이 이러한 시스템 전환을 제대로 견인해낼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결코 간단하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민주화를 위한 사회적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이 책에는 주로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중심으로 원칙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농업, 먹거리 분야의 사례가 빠져있어서 다소 아쉽다. 어쩌면 우리가 농업, 먹거리 분야의 민주적 경제 사례를 만들어서 저자들이 향후 개정판에 추가할 수 있도록 보내줄 수 있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파격적인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많은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본 글은 녹색평론 180호에 실린 서평으로 녹색평론사와 저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