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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가 부동산에 잡아먹히는 때, 기후X주거 정의의 밀물을 타고


1. 서: 기후가 부동산에 잡아먹혔을 때


말세다. 대선을 앞두고 다 망해가는 듯하다. 한 여론조사에서 대선을 앞두고 의제의 우선순위를 조사했다.  토지•부동산문제가 60%, 기후•환경문제가 3%가 나왔다. 기후가 부동산에게 잡아먹히고 있다. 20배라는 격차에 숨이 막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애당초 토지부동산과 기후환경을 분리해서 물었던 것 자체가 우리의 현주소다. 자연과 사회를 분리하는 오래된 인식의 이분법이 아직도 건재하다.

오랫동안 토지는 자연의 다른 이름이었다. 칼 폴라니가 사고팔아서는 안 될 것으로 노동 화폐 상품화에 이어 자본의 자연 수탈을 ‘토지 상품화’라 말하며 비판했던 것이 한 예다. 우리로 오면 지오멘탈리티를 연구하는 윤홍기 교수의 말처럼 풍수지리관에 녹아있는 집-토지-자연관을 살필 수 있다. 정주공간과 자연을 분리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쩌면 아파트 층수가 높아진 것처럼 우리의 인식적 간극도 널찍이 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것은 ‘일반적인’인식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사회운동 판에서도 연결되어 일어나는 문제다. 그동안 기후판과 주거판은 동떨어져 있었다. 신공항 짓지 마라, 석탄계획 철폐하라는 기후환경 판의 구호와 기자회견은 주거권 보장! 공공임대주택 확대하라! 비적정 주거 폐지하라! 등과 다른 시공간에서 열렸다. 정책의 영역에서도 분리에 익숙한 관행은 각기 ‘영역’의 정책을 뾰족하게 가다듬고 따로 간다. 때로는 환경이냐 불평등이냐 서로 먼저라고 다투는 일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남(다른 영역)이가?

한국의 극심한 부동산 문제가 파흉을 일으킬 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민달팽이유니온과 함께)했던 연구가 2년이 다 되간다. 참고문헌이 하나도 없어 고생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 불모지에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를 포함하여 기후X주거 공론장이 우후죽순 열리고 있다. 시대의 요청이다. 연결지점이 너무 명확하다.

11월 마지막 주, 기후X주거의 장이 세 네 번은 열렸다. 녹색전환연구소의 연구나, 서남권 기후X주거정의 네트워크, 집걱정없는세상연대의 행보, 용산과 민달팽이 유니온, 화성보통청년들 공론장 등 우리는 이미 기후판과 주거판이 합쳐지는 지각변동을 보고 있다. 이 밀물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 그린리모델링과 주거의 탈탄소화


정부와 탄소중립위원회의 시나리오 안을 보면 그린리모델링 100%라는 충격적인 정책방향이 담겨있다. 2020년에 시작한 그린뉴딜의 리모델링이 고작 공공건물 몇 채 태양광 달고 단열 개선하고 끝났던 것과는 양적으로 다른 규모다. 그 적은 목표와 무책임한 체계는 막론하더라도, 기후위기 대응의 타임라인은 이미 찍혔다. 그런데 위험하기 그지 없다. 이 그린리모델링 100% 방향에는 누가, 어떻게가 없다. 이것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한국판 뉴딜처럼 예산 60-70% 가까이가 대규모 해양풍력을 짓겠다는, 그린 산업단지를 만든다는 대기업에게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다. 현대가 신규 아파트를 광고하며 내건 “녹지가 자본이다”같은 슬로건이 먹히면 기후운동과 주거운동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주거의 탈탄소화를 내건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의 주거권과 이동권, 정주권을 지키는 방안을 모색하자.


3. 미래의 용산에 필요한 집/공간은?


어떤 집과 공간이 필요한지 상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집구경 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공간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빈곤사회연대처럼 공간침입자가 되든, 집걱정없는세상연대처럼 무주택자가 공동행동을 하든, 아예 다 같이 연말에 텐트 들고 용산부지를 커머닝하면서 살든 손 놓고 보지 말고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가자. 도대체 녹지와 공공임대주택은 왜 상충관계(Trade-off)로 여겨지는가. 집도 짓고 공원도 만들면 안되나. 스웨덴의 공항 폐쇄와 영국의 히드로 공항 소송은 멸종반란과 기후정의 운동 단체들의 점거와 시위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그 뒤에야 정책과 제도들이 따라온다. 정책 청사진을 그리고, 조례를 만들고, 기후X주거 결의안을 통과시켜보자. 한국 부동산 백년대계 역사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상징적인 비전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4. 결: 밀물타고 기후X주거 정의!


다시, 밀물이다. 기후위기가 점점 또렷하고 복합적으로 다가온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국토가 바다에 잠기고, 주거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악조건이 미래에 기다리고 있단다. 그러나 위기는 항상 형성과 변화를 내재하고 있다. 독일의 부동산 임대료 상한제와 몰수 투표안이나, 스웨덴의 공항 말고 공공임대주택 안은 이런 취지에서 나왔을 것이다. 위기는 미래의 것만이 아니다. 3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주거취약계층이라고 불리던 이들은 계속 번갈아가며 ‘그곳에’ 있었다. 이미 위기 한가운데서 서 있는 우리고 지금이니, 기후X주거 정의 외치기 딱 좋은 때겠다.

 

*이 글은 2021년 11월 28일 용산청년주거포럼에서 토론문으로 제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