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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칼럼
실종된 기후선거에서 녹색정치 발굴하기

*2022.7 바람과 물 5호 '흙의 생태학' 수록

 

기후위기가 실종된 지방선거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선거들처럼 곧 기억에 희미하게 남고 말 평이한 선거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기후위기라는 이름으로 지구와 동네의 모든 삶이 처한 재난을 막아보고 바꿔보겠다는 이들이 후보로 나선 첫 지방선거였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은 어떤 지역에서 살고 싶은가.' 각양각색의 기후 후보들이 저마다 지역에서  물었다. 후보뿐 아니라 곳곳에서 기후선거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선거는 끝났지만 이 장면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가능성으로 남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번 지방선거는 단비뉴스의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기사 제목이 말해주듯이 확연히 기후가 실종된 선거로 평가되고 있다. 기사에서 평한 것과 같이 "양대 정당은 이번 정당선거에 구색용 공약을 제시했을 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구체적 논의나 실천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대신 팽창과 성장을 강조하는 개발 공약만 앞세우고 있었다. 세계일보가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에너지전환네트워크와 함께한 구체적인 지방선거 분석 결과도 이와 같았다. 한국의 17개 광역단체장 후보 55명 중 40% 이상이 '기후변화 대응'을 '30년 이내 1순위로 풀어야 할 과제'로 인식했지만, 본인 당선 시 '4년 임기 중 1순위로 풀어야 할 과제'로 꼽은 후보는 9%가 채 되지 않았고, 절반 가까이는 3년 임기 중 1~3순위에도 포함하지 않았다. 후보 4명 중 1명이 국가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NDC)보다 낮은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내놓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명분상 차후 역점을 두어야 할 의제로는 기후위기 대응이 등장하지만, 지금 당장의 정치적 현안에서는 계속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기초자치단체의 분석 결과 또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지기(청년이 바라보는 지방선거 기후공약) 프로젝트의 분석에서 568명의 기초자치단체장 출마자 중 기후공약을 발표한 후보는 112명으로전체의 19.7%이며, 후보자들이 낸 2,760개의 공약 중 온실가스 감축이나 탄소중립과 관련된 기후공약은 124개로 전체 공약의 4.5%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전반적으로 지역을 불문하고 단순히 녹지 면적 확대 등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과거의 환경공약이 다수였다.

 

뼈아프게도 이것은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세계일보의 선거를 앞둔 유권자 의향 분석에서 대선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공약(52%)가 '경제회복'이었고 '기후변화 · 환경은 7위(12.6%)에 머물렀다. 제8회 지방선거에서 가장 관심 있게 살펴볼 공약 역시 1위(72.4%)는 '지역 내 경제성장', 2위(64.3%)는 '지역 일자리 창출', 3위(60.3%)는 '지역 내 균형발전'인데 비해 '기후변화 대응'은 5위(20.1%)에 그쳤다. 아직도 무제는 경제에 국한되고 기후는 밀리고 있다. 기후위기가 경제 · 사회 조건을 좌우하고 새로운 전환을 이끌어갈 담론이라는 면은 아직 먼 이야기인 듯하다.

 

분명 시민들은 기후위기를 알고 심각하다고 말해왔다. 《시사IN》의 '2022 기후위기보고서'에서 지금이 기후 위기 상황인지 묻는 문항에 88.6%가 동의하는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과 위기감이 눈에 띄게 일어났지만 결국 정치적 모색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이는 고스란히 선거 결과에서 드러난다. 전반적으로 민주당이 큰 약세를 보였고, 정의당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진보당을 제외하고 기본소득당, 미래당, 노동당, 녹색당에서 이변은 없었다. 녹색 정책의 측면에서 볼 때 민선 7기에서 선도적으로 기후위기를 말하는 지자체장으로 손꼽혔던 경기 고양시 이재준 시장, 대전 대덕구 박정현 구청장, 광주광역시 이용섭 시장, 강원 춘천시 이재수 시장도 모두 연임을 이루지 못했다. 보족하나마 일궈왔던 녹지를 대부분 잃었고 대안 세력이 힘을 얻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치열했던 기후선거 운동

 

아무래도 결과는 암담하다. 3년 전, 한국에서 처음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하면서 때부터 전환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많은 이들이 낙심하고 있다. 시민들의 기후위기 인지도가 이전보다 월등히 높아졌더라도, 많은 정치인들이 기후위기를 '말하거나' 공약에 슬쩍 얹어놓더라도 기후선거가 되지는 못했다. 가봐야 알 일이지만, 적어도 앞으로 5년은 한국은 잃어버린 시간을 보내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그럼에도 선거의 과정에서 보았던 가능성들이 있었다. 녹색전환연구소에서 선거를 앞두고 지난 2월부터 17개 광역 자치단체에서 매주 시민들이 함께 정책을 논하는 녹색전환 공론장을 열어 곳곳의 시민들과 단체들을 만났다. 만남의 장이었던 17개 지역 모두에서 기후선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달렸던 시민들, 기후위기를 전면에 내걸고 선거를 치렀던 후보들이 있었다.

 

광주에서는 수백 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주기후위기비상행동 중심으로 '기후시민단'을 모집해서 기후가 선거의 핵심이 되도록 활동했다. 튼실한 기획으로 정책제안서 전달과 정책협약식을 가지고 인수위원회 면담까지 이루었다. 충북에서는 '충북녹색전환포럼'을 발족하며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서울에서는 녹색전환 공론장을 열었던 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 외 여러 단위들이 '기후정의서울 지선공동행동' 연대체를 형성해 각 정당과 서울시장 후보자들에게 질의서를 보내고 평가하는 '나는 기후 후보에 투표한다'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기본소득 · 진보 · 정의 ·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들은 녹색정책의 연대감을 보여주는 의미로 녹색전환 정책 협약을 맺고 '기후정의의원연대(가칭)'를 만들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녹색당의 선거는 기후정의의 이름으로 열렸다. "지구를 살리는 녹색, 동네를 바꾸는 선택"을 슬로건으로 녹색당의 모든 후보의 정책공약에는 기후위기가 강조되어 있었다. 마포구 대흥 · 염리 구의원 선거에 출마한 이숲 후보는 전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경의선 공유지 활동가로서 '선거는 쓰레기가 아니니까'의 슬로건으로 선거를 치러냈다. 서울시 비례의원 이상현 후보도 국ㅈ연대 기후정의 활동가로서 기후정의 조례 제정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전환에 필요한 각 부문을 하늘, 땅, 물, 바람, 마음의 정치로 새롭게 구분 지으며 선거를  치렀다. 그 외에 경기, 제주, 경남, 대전, 충남, 대구, 광주 등에서 나온 녹색당의 후보들도 각각 지역에 특화된 기후 정책을 선보이며 기후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경북 안동시에서 출마한 허승규 시의원 후보는 불과 200여 표의 적의 차이로 아쉽게 떨어져서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 외 지역정당의 움직임도 이번 선거에서 눈여겨볼 점이었다. 정당법상 허용되지 않지만 이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지역정당네트워크가 결성됐고, 직접행동영등포당, 은평민들레당에 이어 전북 등 여러 지역에서 창당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기존 정당들이 많들어내는 추상적이고 삶과 괴리된 공약 말고 기후위기, 1인 가구, 자전거 교통 등 지역 주민들의 삶과 밀착해있는 공약"을 제안했다. 녹색당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진보 4당이 '기후정의조례제정운동본부'를 설립하여, 현재 각 지역에서 제정되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조례'를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기후정의 조례'로 보다 급진적이고 내실 있게 바꾸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탈석탄 연대체 비욘드콜에서는 석탄발전소 소재 지역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탈석탄 정책을 촉구하는 정책제안서를 보냈고, 기독기후지선공동연대에서는 모든 광역 지자체에 기후정의 도시를 약속하는 촉구 캠페인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대선 전부터 기후 바람을 이끌던 기후위기비상행동과 새롭게 기후운동을 만들어가려는 기후정의동맹의 공동주관으로 9월의 기후총파업이 선거 가운데에 기획되고 있었다.

 

녹색정치 만들어가기

 

세계의 선거에서 기후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녹색정치가 펼쳐지는 것을 감안하면, 2022년 치러진 두 번의 선거에 대한 아쉬움은 너무 크다.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 녹색당 그리고 자유민주당이 '신호등' 내각을 구성하여 '사회생태적 시장경제를 통한 기후보호'를 주요 정책 기조로 삼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파리 15분 도시로 폭넓은 지지르 얻은 사회당 소속 안 이달고 시장이 기후 공약을 제시하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칠레에서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해결을 구호로 내세운 35세의 가브리엘 보리치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기후 대응 헌법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산불로 극심한 피해를 겪은 호주에서는 노동당 소속 앤서니 알바니즈가 새 총리로 당선되고 청록색을 상징으로 급진적인 기후정책을 제안한 무소속 후보들과 녹색당이 약진하는 등 명실상부한 기후선거가 펼쳐졌다 . 이와 같이 각국이 당면한 기후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선거라는 정치적 과정을 적극 활용하는 과정을 보면서 기후위기를 민주주의로 대응하는 것이 부족하나마 중요한 길임을 생각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마시는 물, 숨 쉬는 공기와 같은 자연조건의 문제이지만 그 어떤 문제보다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적 결정을 통해서 정해진 우리 사회의 존립 방식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라면, 그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급진적인 정치적 결정이 없이 어찌 평온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모든 실천과 행동의 과정을 거쳐 마지막에는 결국 정치의 중요성이 남는다. 그렇지만 기후위기의 정치는 분명 난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 번도 부딪혀 보지 못한 종말이라는 난제의 크기, 현 정치의 관성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느리고 광범위한 성격 등 이전의 사회가 마주한 문제와는 너무나도 다른 양상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녹색정치란 참으로 어렵다. 녹색정치를 국가와 사회를 기존 경제성장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에서 해방시켜 지속가능한 녹색 패러다임으로 만드는 과정으로 정의한 문순홍의 말, 근대의 민주주의를 다시 새로게 고쳐 쓰는 것이라는 김종철의 말, 전환은 집, 광장, 의회 세 공간에서 영성과 활동과 제도의 변화가 동시에 갖춰질 때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현대 정치생태학자 요르고스 칼리스의 말들을 놓고 볼 때, 녹색정치를 실현하는 것은 현재를 뒤집는 수준의 전환을 요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대전환을 위해서 녹색 정치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점,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하눅의 정치는 어려운 역사를 겪어왔다. 거대 양당이 적대적 정치구도 속에서 권력을 주고받는 가운데 진보 정당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좁고 멀고 험난한 한국 정치의 토양에서 녹색정치가 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다시 씨를 뿌리는 일이다. 녹색정치는 선거에 국한될 수 없다. 배울 것은 한국의 역사 속에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것은 중앙이든 지방이든 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역에서 만난 기후시민들의 옆에 서서 함께하고 공부하고 활동하고 살아갈 것이다. 모든 씨알이 당장 싹트기를 바랄 수는 없다. 땅에 심어진 도토리가 싹이 트기 위해서는 몇 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지난 몇 년, 기후위기를 막으려는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추수를 바라지 않고 흐르는 물에 씨를 뿌리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런 때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