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연구소 로고
알림 - 칼럼
[민중의소리X녹색전환연구소]② 기후위기 시대, 불평등에 잠긴 집

9.24 기후정의행동 특집② 쏟아지는 폭우 속 증발하는 시민들의 주거권
 

특별기고를 하며

 

녹색전환연구소는 9.24 기후정의행동을 맞아 정부와 지역정부의 기후 에너지 정책 분석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살펴보았다. 기후위기 대응이 실종된 한국사회에서 시민이 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 9.24 기후정의행동에 함께 해야하는 절박한 이유를 제안한다.

 

 

지난 8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졌다. 더 꺼질 것도 없는 낮은 땅에서부터 사회적 안전망은 무너져 내렸다. 며칠간의 폭우로 인해 무려 13명이 사망했고, 6명의 실종자, 154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정부에서 현재(22.9.10.)까지 파악한 규모만 이정도이다. 도시엔 큰 인명피해를 냈고, 지역 농가들은 막대한 재산손실을 입었다. 명절을 한 달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더욱 처참했다.

 

이번 기록적 폭우는 서울에서 지하와 반지하 같은 적정하지 않은 주거공간에 사는 사람에게 집중적인 피해를 입혔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주거문제와 더불어 장애, 빈곤과 같은 다층적인 문제를 함께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기후위기, 결론적으로 불평등 문제다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던 신림동에선, 반지하 집에 빗물이 들이닥치자 경찰에 신고했지만 구조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설상가상 주택 앞에 있던 싱크홀에서 물이 솟구쳐, 유일한 탈출구였던 반쪽짜리 창문으론 발달장애인 40대 여성 A씨와, 그의 여동생, 여동생의 딸은 나갈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이들은 발달장애 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 이기도 했다. 분명히 주거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 주거급여로 마련한 집에서 국가의 구조를 기다리다 사망했다.

 

폭우가 쏟아지면서 지난 서울 신림동 한 주택 반지하에 살고 있던 발달장애인 40대 여성 A씨와 그의 여동생 B씨, B씨의 1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현장 신림동 반지하 주택 모습. 2022.08.09 ⓒ민중의소리

 

한때, 반지하와 옥탑방은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사실상 이제 반지하나 옥탑방 같은 주거문제는 더 이상 ‘청년’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0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연령대별 지하 거주비율은 29세 이하가 2.1%로 가장 높다고 나타났지만 60대가 1.8%, 50대가 1.9%로 중장년층 역시 지하 또는 반지하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았다. 즉 이제 더 이상 반지하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은 아닌 셈이다. 2012년 건축법 개정을 통해 상습침수 구역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시 건축제한을 하는 규정도 생겼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코로나 이후 노숙인은 더욱 늘어가고 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매해 100~340명의 노숙인이 줄어들었다고 밝혀왔지만, 2020년 코로나 이후 반등하는 추세다. 증가한 노숙인의 절반은 ‘거리노숙인’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서울시의 주거권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로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잦아지는 재난

 

게다가 연이어 태풍 ‘힌남노’ 소식이 더해지며 한반도는 더 바짝 긴장했다. 이미 일본을 휩쓴 태풍 힌남노의 위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전국민이 밤잠을 설쳤다. 지난 폭우 피해에 대한 보상과 회복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모든 이들이 태풍의 진로를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포항에선 지하주차장에 갇혀 실종·사망하는 사고가 났고, 건물 한 동 전체가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일이 일어났다.

 

이렇듯 살인적인 폭우와 슈퍼 태풍이 한국을 할퀴는 빈도는 점점 잦아지고 있다. 재난의 크기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큰 재난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재난을 예방, 또는 적응하기 위한 정부와 지역정부의 대응은 선명하지 않아 답답하다.

 

여전히 공백인 주거정책과 길을 잃은 공공임대주택

 

녹색전환연구소가 발행한 <17개 광역자치단체 인수위원회 보고서 분석>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착잡하다(보고서 분석 링크). 모든 지역에서 여전히 ‘토건’공약은 공항과 신도시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그린리모델링’ 관련 정책들이 존재하는 지역들도 있으나 그 규모가 매우 작아 전체적인 주거품질을 향상시키고 주거안정을 확립하는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부산의 경우 기온 상승, 태풍, 해수면 상승 등 기후 리스크가 가장 높은 지역이고, 초고층 빌딩으로 만들어진 부산의 마린시티의 거센 빌딩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해양도시’ 건설을 ‘기후변화’ 대응의 목표로 삼는 역설적인 일도 나타나고 있다. 부산시장이라면 국제사회에 인정받는 ‘지속가능한 해양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 전에, 이미 잦은 재난으로 생명권의 위협을 받는 부산시민들의 삶을 한 번 더 살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주거시민단체로 이루어진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은 8월 22일 서울시의회 앞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하고 동등하고, 평등한 주거권을 위해 기자회견을 벌였다. 이들은 ‘주거취약계층의 재난 위험 근본적 해결을 위한 10대 정책과제 요구’를 발표하며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주거품질 연계하는 방향의 주거비 지원 확대 ▲주거안전 기준 강화 ▲주거급여 대상 기준중위소득의 60%로 확대 등을 정부와 국회에 제시했다. 주거권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재난불평등추모행동’ 요구의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는 8월 30일 2023년 예산안을 발표하며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을 전년도 예산에서 5조 7천억을 삭감한 15조 1천억 원으로 내놓았다. 이는 30%를 잘라낸 어마어마한 칼질이다. 국토교통부는 주거취약계층의 이사비와 보증금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하며 ‘주거복지’의 빈틈을 완화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주거권 보장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대책인 공공임대주택 예산 수 조 원을 깎으며 이사비 몇 푼 쥐어주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9월 1일 국회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또다시 완화시켰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9억에서 11억으로 완화하고 상속주택과 지방주택은 주택 수 계산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여야가 합의했다. 시민사회는 이 같은 조치가 ‘다주택자를 양산하고, 수도권 투기 수요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풍선효과’를 만들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여전히 정부와 국회는 십 수 명의 국민이 기후재난, 빗물 속에서 목숨을 잃어도 여전히 집부자들의 민원만 처리하는 정치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2022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단체들은 ‘불평등에 잠기는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주거권 대행진을 연다. ⓒ1001주거권행진

 

불평등에 잠긴 주거권을 구출하자

 

그렇기에 세입자 시민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부자감세를 반대하고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는 조직된 힘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층’수로 구별되는 권리가 아니라 모두에게 동등한 주거권을 요구해야 한다. 이에 기후재난으로 악화되는 주거권의 미래를 구출하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함께 걸어야 하지 않을까.

 

2022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단체들은 ‘불평등에 잠기는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주거권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조금 먼저 있는 924 기후정의행진의 물결을 이어받아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더 큰 파도로 이어지길 바래본다.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세입자들의 걸음을 모아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주거취약계층, 인권취약계층이 기후위기취약계층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