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연구소 로고
알림 - 칼럼
[민중의소리X녹색전환연구소]③ 김상협 위원장이 두 번 실패하면 안 되는 이유

탄소중립 정책이 실종됐다. 지난해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년 40% 감축 목표수립 이후, 거의 1년간 공백 상태다. 정부는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국가 전체와 각 부문에 대한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은 <탄소중립 녹색성상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내년 3월까지가 수립 기한인데, 초안도 공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검토하고 심의해야 하는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위원장만 인수위에 참여했던 김상협 제주연구원장이 맡고 있다.

 

김상협 위원장은 MB정부에서 녹색성장기획관을 역임하여 저탄소·녹색성장을 주도한 데 이어 탄소중립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10년 전 저탄소·녹색성장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다.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에 명시했던 목표는 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이었다. 목표를 달성했다면, 2020년의 배출량은 5억 4,300만 톤으로 줄어야 했지만, 배출량은 6억 5,700만 톤을 기록했다. 목표보다 무려 1억 1,400만 톤이나 초과 배출했다.

 

지난 10여 년의 결과가 모두 MB정부의 책임일 수는 없지만, 문제의 시작이기는 했다. MB정부는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3-2027)에 10기의 석탄화력발전 설비 투자를 반영해 에너지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할 수 밖에 없었다. 녹색성장을 표방했지만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초과하는 에너지계획을 수립한 셈이다. 최소한의 정책적인 일관성도 없었던 셈이다. 2010년 MB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80기를 수출하고, 세계 원전건설 시장의 20%를 점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단 1기도 수출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10년 전 MB정책 데자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2030 NDC 대비 원전 늘리고 신재생 줄여

 

2030년 전원별발전량 비중 전망 (단위 : TWh)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87%는 에너지 부문에서 발생한다. 에너지전환 없이 탄소중립 목표달성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MB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지난 8월, 산업부가 공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실무안은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이하 NDC)상향안 대비 원전은 23.9%에서 32.8%로 8.9%포인트 증가했고, 신재생은 30.2%에서 21.5%로 8.7%포인트 감소했다. 원전을 늘린만큼 신재생 비중을 줄인 것이다. MB정부보다 목표는 줄었지만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원전을 NDC 달성의 핵심수단으로 삼아 2023년 고리2호기부터 2035년 한빛 4호기까지 폐쇄하기로 했던 원전 12기(10.5GW)를 수명연장하고 신규원전 6기(신한울 1·2, 신고리 5·6, 신한울 3·4)를 반영했다. 석탄발전은 2036년까지 26기를 폐지하고 모두 LNG 전환을 하며, 추가로 LNG발전 5기를 더 짓는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2022년 28.9GW에서 2030년 71.5GW, 2036년 107.4GW로 늘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에서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인(NDV)는 준수하되, 부문별로 현실적 감축 수단을 마련해 국가계획을수립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원전은 현실적 감축 수단일까? 원전건설과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기간까지 고려하면 신규 건설은 2030년 NDC 목표달성에 기여하기 어렵다. 남은 것은 수명연장인데,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태풍 '힌남노'로 침수되면서, 1973년 쇳물 생산을 시작한 이후 49년 만에 모든 고로가 가동을 멈춘 것을 보면 안전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기후재난이 발생하고 있다. 슈퍼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갈 때마다 원전상태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힌남노가 포항이 아니라 부산, 울산, 경주를 치고 지나가면서 발생했을 상황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2030년 전원별 발전량 비중 전망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 토대로 필자 작성

 

무엇보다 원전은 단기간에 급격히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목표달성에 적합하지 않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파하드 만주는 "기후 비상사태에 원자력 발전으로 대응하는 것은 나무늘보에게 불난 집의 불을 끄라고 하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한다. 원전은 너무 느리고, 훨씬 더 비싸고, 이미 재생에너지나 배터라 같은 더 싸고, 빠르고, 유연한 전력기술이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스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유럽은 에너지 절약, 수입국 다변화 등 에너지 안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정책을 다 하면서도 '리파워EU'를 통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45%로 올렸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소법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 약 4800조 원을 투입해 태양광과 풍력에 대한 세액공제와 지원을 한다. 기후위기 대응의 확실한 정책수단으로 떠오른 재생에너지를 미국, 중국, EU 할 것 없이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오히려 줄이겠다는 것이다. 연일 언론 지상에 태양광 비리가 대서특필되고, 대통령까지 관련자를 엄하게 다스리겠다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의욕을 갖고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사업에 나서겠는가. 탄소중립 목표달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산업을, 정부가 나서서 이렇게 짓밟아서 될 일인가 싶다.

 

우리가 원전 vs. 태양광 논쟁으로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계의 에너지시스템은 급변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을 하려면 에너지의 탈탄소화와 전력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산업, 수송, 건물, 농업 등 모든 분야에서 화석에너지가 했던 일을 전기가 대체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 마치 내연기관차량이 전기차로 대체되는 것처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전 세계 전력의 90%를 재생에너지가 생산할 것으로 전망한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해결할 수 있는 스마트 전력망과 수요자원관리, 섹터커플링 기술이 중요해졌다. 앞으로 우리가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시스템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시장설계, 시장제도, 전력망 재설계를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빠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나?

 

탄소중립 목표달성을 위한 에너지시스템 전환 방향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A안 토대로 저자 작성, 그래픽 SDF

 

윤석열정부의 기후대응 실패에 부스러질 사람들이 너무 많다

김상협 위원장이 10년 전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도하던 때와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지금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기후재난이 논과 밭, 산업 현장을 쓸고 있다. 반지하와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 노인과 어린이 뿐만 아니라 원전, 노후 산단, 노후 인프라를 위협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만든 기후재난이 혹독해지고 있다. 기후위기에 사람이 죽고 있다. 불평등이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사회안전망 확대를 같이 하지 않으면 급격한 감축과 산업구조 변화를 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기후재난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국제사회 기후규제도 강화된다. 탄소국경조정제도, 배출권거래제, 탄소세,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기업도 제품생산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직간접배출량(Scope 1,2)과 직간접을 제ㅎ외한 모든 배출량(Scope 3)까지 줄여야 하고, 기후위기재무정보(TEFD)를 공개하며, 제품생산 전 과정에서 배출량을 줄이지 못했을 때 공급망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최근 RE100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기업이 재생에너지 확대를요구하는 것을 보면 기업이 현장에서 그런 요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1년 20개의 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의 33.8%를 배출했다. 포스코가 단독으로 11.6%를 배출했다.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없이는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은 요원하다. 그동안 정부는 산업부문에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지우는 일을 극도로 꺼려왔다. 배출권거래제만 해도 과잉할당과 높은 무상할당 비중으로 포스코 같은 기업이 배출권을 팔아서 245억 원의 수익(2020년 기준)을 낼 정도였다. 윤석열 정부는 상향된 NDC에 따라 3기배출권거래제 재할당부터 시작해 배출권거래제 전면 개혁에 나서야 한다. 한국의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달성에 전혀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이 탈탄소화를 준비 못 했을 경우 단기간에 기업이 무너져내리거나 대규모 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 그나마 석탄발전이나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은 논의라도 되고 있지만, 중소규모 사업장과 도급사업장에서는 대비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안전망을 갖춰가면서 전환하는 것과 외부에 의해 안 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리는 것은 처지 차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구체적인 법, 제도화와 기금마련이 시급하다.

 

2030년 NDC 목표달성과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 압박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정부는 벌써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NDC 목표를 달성 못 한다'라거나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해도 국제 제재가 없다'라는 견해를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이미 교토의정서에 의해 1990년대 수준으로 줄여온 선진국과 2018년 최고점을 찍고 여전히 본격적인 감축 경로에 들어가지 못한 우리를 비교하면 안된다. 게다가 '달성했다', '달성 못 했다'가 있는 것만 아니라 얼마나 감축 목표달성에 근접했는가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벌'이나 '제제'가 있어야 움직인다는 것은 정부가 기후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둘러싼 세계의 역동성 ⓒ필자 작성

 

기후변화협약 당사국들은 2024년부터 격년 투명성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에서는 2024년, 2026년 두 번 제출해야 한다. 2018년 7억 2700만 톤에서 2030년 4억 3600만 톤으로 줄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2027년 5월까지니 목표치의 70~80%를 적어도 달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 목표치조차도 1.5℃ 이하 안정화나 감축량에 근접하지도 못한다.

 

2022년 세계는 혼돈 속에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석탄·LNG 가격이 동시에 불안정한 데다 에너지 가격상승, 인플레이션 압박, 덩달아 뛰는 식량 가격까지. 이런 상황이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다. 이같은 위기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태평하다." 우리의 전기와 가스요금 체계는 국제연료 가격상승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외부 충격을 감지하지 못하는 구조다. EU가 8월부터 내년 3월까지 가스 사용량 15% 감축을 목표로 에너지 절약과 할당정책, 보조금 정책까지 동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겨울을 앞둔 우리는 에너지 '절약', '수요관리',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직접지원' 등에 관한 내용이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기후정의와 체제전환을 외치는 시민들이 9월 24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다. 전국에서 기차를 타고, 손팻말을 만들고, 분노와 절망, 그리고 희망의 마음을 담아 모인다. 9월 24일 기후정의행동에 수많은 시민이 함께 할 것이다. 남은 것은 정부의 몫이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른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중장기감축 목표 및 부문별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연도별 감축 목표의 이행현황을 매년 점검하고, 그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여 공개해야 한다. 정부의 장관과 모든 지자체장에 탄소중립 정책 개선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온실가스 감축을 정부의 부처평가에 반영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김상협 위원장은 10년 전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두 번 실패하면 안된다. 기후정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겐 낭비할 시간도 실패할 낯짝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