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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X녹색전환연구소]④ 누가 만드는 정의로운 전환인가?

친구네 아버지가 중장비 업체를 인수했다. 발전소, 다리, 도로, 터널 등 인프라를 지을 때 필요한 발파 작업을 하고, 현장에 필요한 중장비가 있으면 업체에 고용한 기사님을 보내 중장비를 운행하도록 한다. 중장비는 연비가 낮아 공사현장까지 이동하는데 화석연료를 많이 쓴다. 이 업체의 수익사업은 개발사업 물량과 직결되어 있어 지역의 건설경기는 지역 개발 사업 추진 여건에 따라 휘청한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유발하는 개발 사업으로 지역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발상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허황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에서 강력하게 온실가스 다배출 사업에 대한 규제를 한다면 친구네 아버지는 새로 인수한 업체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 하는 걸까? 혹은 고용된 기사님 수를 줄이고 업체의 규모를 줄이면서 버텨야 할까? 아님 개발 계획이 예정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지역을 새롭게 뚫어야 할까?

 

탄소배출업, 지역 경기와 개발사업, 일하는 사람이 처한 환경과 여건 등 여러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는 게 우리 사회가 처한 정의로운 전환의 배경이다. 에너지전환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인해 발전소 폐쇄와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문제에서 일자리와 공요의 문제로 논의가 확장되었다. 산업과 일자리는 지역에서 쇠퇴하니 지역의 경제 산업구조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역의 경기 부흥, 개발에 대한 기대와 낙수효과, 지역 지원금 등에 대한 기대가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역에서 에너지전환을 어떻게 하고, 탄소배출을 얼마나 어떻게 제한할지, 에너지정의와 기후불평등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고, 지속적이고 건강한 방식의 삶의 모습과 사회를 그리는 전환의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작업 중인 중장비 ⓒpixabay

 

법에 담긴 정의로운 전환

그렇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전환을할 준비가 얼마나 되었을까. 올해 3월 25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에는 정의로운 전환이 정의되었고, 관련 시책이 포함되었다. 법에 저의로운 전환이 담겼다는 것은 기후운동에 어떤 의미일까? 구체적인 조항들은 현실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녹색전환연구소는 법에 담긴 정의로운 전환의 함의를 파악하고, 실제로 법과 제도가 작동하기 위해서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8·9월 두 차례의 '정의로운 전환 법제화 쟁점과 과제' 포럼을 통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상 정의로운 전환은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하여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후위기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도록 하고,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를 지정하고, 사업전환을 지원하며, 자산손실 위험을 최소화하고,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를 설립하도록 한다.

 

특히 제49조(사업전환 지원)은 그 대상을 중소기업으로 하는데 동법 시행령에 녹색산업 분야에 해당하는 업종으로 사업전환을 하는 경우 전환에 필요한 자금융자를 지원할 수 있다. 제50조(자산손실 위험의 최소화 등)는 시행령에서 그 대상을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으로 하고 마찬가지로 전환에 필요한 금융과 자금 지원이 가능하도록 근거 조항을 두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으로 부담과 피해가 가중될 수 있는 주체들에 대한 보호 조항은 매우 빈약한 것에 비해 기업에 대해서는 기후보호 조건이 없는 금융지원은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오히려 탈탄소 과정에서 원청의 외주화로 인해 일감의 급격한 축소가 예상되거나 전환역량이 낮은 3·4차 벤터, 지역 내 소규모 기엽에 대한 현실적인 고려는 전혀 없다.

 

제48조(기후위기 사회안전망의 마련)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5년마다 고용상태 영향을조사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수시로조사할 수 있으며, 지원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구체적인 조사시점과 계획을 알 수 없지만 고용상태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사회안전만' 구축을 위해 모든 지자체 차원에서의 기후위기 대응에 따른 파그을 예측할 수 있도록 지역실태조사가 필요하고, 지역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지자체가 지역의 특성과 여건에 맞는 정의로운 전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낟.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현재의 상황과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한 지역사회를 위해 정의로운 전환 특구 지정, 정의로운 전환 센터 설립 근거를 마련하고 있으나 지자체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개성의 지점이 많다. 특구 지정의 기간은 최대 5년으로 두고 있는데,, 이는 지역사회의 전환에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지정 기간을 늘려야 한다. 또한 특구는 시·도지사가 신청하도록 되어 있으나 발전소 폐쇄 예정지역은 정부에서 선제적으로 특구로 지정해서 실태 파악과 대책 마련에 들어가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 센터의 경우 현재 지역에서 혼재되어 있는 환경부, 산업부 소관 센터 설립 지원 현황을 고려하여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중앙부처 간 조율이 필요하고, 센터를 통해 지역에 있는 사람에 투자하고 전환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필요한 경우 인적, 물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차례 포럼을 통해 정의로운 전환의 법제화에 관해 살펴보았지만, 탄소중립기본법에 나온 정의로운 전환에 관련 조항은 전환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노동자, 농어업인, 중소상공인, 노약자, 취약계층, 소수자, 지역 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않다. '정의'가 정의되었지만 선언적인 의미 그 이상이라 보기 어렵다. 이는 여야가 합의를 볼 수 있는 수준에서 법을 통과시키느데 급급했고, 사회가 합의하는 정의의 문제,기후위기 대응의 원칙을 심도 깊게 논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이 태생적을 가지는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렇다보니 법의 의도와 방향성, 맥락이 유실되었고, 후속적으로 작업한 시행령에서 오히려 구체적인 내용이 더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분절된 논의는 위험하다

9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산업전환 시 고용안정 및 노동전환 지원 등을 위한 입법공청회를 개최했다. 지난 2021년 7월 22일 고용노동부는 '사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을 발표했고, 작년 하반기에 노동전환지원법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책 추진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는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았다. 공청회는 21년도 하반기부터 발의된 노동전환 관련 3건의 법안(이수진 의원안, 강은미 의원안, 임의자 의원안)을 심사하기 위한 자리였다. 세 법안은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내용상 일자리 전환과 고용 안정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심의·의결기구, 위원회 구성, 사회적 대화, 지원기관, 지원 원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사의 핵심 쟁점은 각 법안마다 5년마다 고용안정, 노동전환, 일자리 전환을 골자로 하는 기본계획을수립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를 심의하는 정책 거버넌스를 어디로 두느냐는 것이다. 이수진 의원안과 임이자 의원안은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른 고용정책심의회에서 심의하도록 하고, 강은미 의원안은 별도로 일자리전환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제출한 진술서를 보면 고용정책심의회의 경우 중앙정부 차원에서 고용정책을 총괄한다고 하지만 노사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고, 위원장이 고용노동부장관이 때문에 정의로운 전환 논의를 확장하고 정의로운 노동전환의 원칙을 합의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우려를 알 수 있다.

 

한편 그날 공청회는 이해당사자 참여 자체가 보장되지 않은 자리이기도 했다 세 명의 진술인 중 둘은 자동차 업계를 대표했고, 노동게를 대표하는 건 한국노총뿐이었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차명가 없는 상황에서 극히 제한적인 의견을 받은 것이다. 이에 금속노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잇따라 편파적인 공청회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정당에서는 정의당이 서면브리핑을 발표했다. 심사의 대상이었던 관련 법안 3건은 모두 정의로운 전환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자리 법안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무관심한 현 정부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이 국회에 대한 기대로 옮겨가는 찰나 공청회 논의에서 조차 절차상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음이 매우 아쉽다.

 

산업과 노동, 지역을 촘촘히 잇는 구상이 필요하다.

환경노동위원회의 공청회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현재 산업현장과 노동전환, 지역전환에 대한 논의가 분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라 발생하는 산업의 전환과 축소는 고용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노동전환과 연결되는 것이 타당하고, 그 전환은 결국 발전소, 기업, 산단, 공장이 있는 지역 경제구조의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에 지역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의 기본원칙을 세우고, 대응의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하고 논의하고, 함께 합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체계가 시급하다. 이해당사자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투명한 정보 공유와 논의과정 상 힘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국단위의 논의와 지역이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어야 한다.

 

지자체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선제적으로 준비하지 않아 직격탄을 맞는 것은 주민들, 시민들의 몫이다. 지역 차원에서는 에너지전환과 에너지정의,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산업과 일자리 문제가 더 선명하다. 조직되지 않은 개인의 목소리를 포착하고 먹고사는 것을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의 차원에서 잇고, 지역 안에서 다른 삶을 같이 상상해보는 것이 필욯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에 실질적인 권한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지역의 거버넌스를 작동시켜야 한다. 조례를 통해 거버넌스 활동의 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사회 안전망, 정의로운 전환 기금 조성과 운용,정이로운 전환 협약 체결과 같은 종항을 적극적으로 둘 수 있고 지역의 여건과 특성을반영해야 한다.

 

경기연구원은 최근 경기도의 정의로운 전환 여건을 분석했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 배출량 비중이 국가전체가 33%에 비해 경기도는 45% 수준으로 높은 편으로 탄소가격 상승으로 인해 중소기업 비용부담이 상승할 경우 경기도 전반의 지역경제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경기도가 선제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준비하기 위한 10대 과제와 정의로운 전환 플랫폼, 거버넌스를 제안했다. 경기도 정의로운 전환 특별위원회를 경기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안에 별도로 설치해 탄소중립위원회를 도지사 직속으로 격상하고, 사무국으로 경기도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를 설치해 경제실이 주관부서가 된다.

 

경기도의 제안이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정책 제안을 수용하고 실행시킬 의지가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녹색전환연구소가 발행한 '17개 광역자치단체 인수위원회 보고서'를 살펴보면 6월 지방선거 이후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녹색전환 정책 수립에 의지가 있는 지방정부를 찾기 어렵다. 이런 흐름일수록 기후정의를 위한 원칙을 세우고 정의로운 전환 대책을 수립하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절실하다.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 관계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광화문 거리로 모여달라! 924 기후정의행진 활동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08.24 ⓒ민중의소리

 

실종된기후정책에 정의로운 전환이 작동하려면

9월 20일 환경부가 공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초안에는 '녹색부문'에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이 포함되었고, '전환부문'에는 원전 신규 건설과 계속 운전이 포함되었다. 국내 체계에서 녹색부문은 '진정한 녹색경제 활동'으로 규정하고, 전환부문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활동'으로 규정한다. 도대체 '진정한'은 무엇을 수식하는가? 대책 없이 핵폐기물을 계속 만들어내고 지역주민의 삶을 위협하는 원전은 녹색도, 경제를 살리는 산업 활동도 아니다.

 

정부의 기후정책이 후퇴하는 상황에서 정의로운 전환 논의가 탄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고 분절되어 있는 산업전환과 노동전환 논의에서 딱히 해법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지역이라고 다를까. 전국적으로 신규공항 건설과 대기업 유치로 경제성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나서서 자발적으로 기후정책을 강화하고 선제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준비할리 만무하다. 정부가, 국회가, 자본과 힘이 있는 자들이 역할을 할 것이라며 희망을 걸고 낙관할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 가면 안된다. 역행하고 후퇴하는 기후정책 앞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그러니 누가 나서주길 기다리지 말자. 9.24기후정의행진에 함께 하자.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을 묻고 불평등에 저항하자. 누가 만드는 정의로운 전환인가? 우리의 목소리로 직접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과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