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오라니엔 광장(Oranienplatz)에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난민들의 임시거주지가 있었다. 지난 4월 9일 수요일에는 모든 베를린 신문과 매체 1면에는 오라니엔 광장의 난민 캠프 철거로 장식되었다. 추방도 아닌 불법적인 난민 캠프를 철거하는 것이 이토록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다양했다.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라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만점(?)의 동네이자, 녹색당 등의 진보적인 정당 활동이 활발한 지역구에 위치한 난민 캠프라는 점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철거가 주목을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경찰들이 혹은 청부업체가 각목과 방망이를 들고 와서 때려 부순 것이 아니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난민들 스스로 자체 철거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난민들이 스스로 임시 캠프를 철거하는 상황에서 시민들과 각종 단체가 철거를 반대하며 철거를 하지 말고, 계속 지내라고 방해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이목을 집중 시켰다. 물론 난민들이 스스로 철거를 했지만, 그 철거 과정에서 난민들끼리의 분쟁이 일어나는 등 실질적으로 난민과 정부 간의 협상이 그리 매끄럽게 결정된 사항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최종 철거에 앞서 1,200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철거를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오라니엔 광장에 있던 난민 캠프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베를린 오라니엔 광장 난민 캠프/ Refugee camp, Berlin Oranienplatz ⓒHeewan Shin
현재 난민 캠프가 있던 자리는 난민을 위한를 지키자는 메시지를 담은 시설물과 현수막 등이 남아있고, 난민들은 정부와의 약속을 통해 임시로 1달간 호스텔에서 지냈지만, 결국은 시간이 지나 스스로 살 장소를 찾아했고, 같은 지역에 위치한 빈 학교 건물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조용해졌던 이 문제가 다시금 각종 매체에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경찰들의 난민 강제 퇴거 작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퇴거 명령이 내려진 사실이 알려진 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과 각종 단체는 학교 주변에 진을 치고 더 이상의 강제퇴거를 저지하려 하였다. 하지만 다수의 난민들은 경찰력에 의해 강제로 퇴거 되었고, 도시 외곽의 난민 캠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난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을 막은 악의적인 조치였다.
난민 캠프가 철거된 광장의 모습 ⓒHeewan Shin
이에 시민들은 시스템을 구축하여 남아있는 난민을 지키기 위해 학교 근처 구역을 막아놓은 경찰 펜스 앞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24시간 경찰들을 감시하고 난민들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는 난민들을 위한 바자회를 열었고, 또한 주변의 거리와 광장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난민들의 강제퇴거 및 추방에 반대를 위한 시위를 했다.
이 글을 마무리 짓는 7월 1일에는 베를린의 학생과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약 2,000여명이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도 있었다. 하지만 동일한 날 그동안 더 이상의 철거작전은 없을 것이라는 시정부의 타협안 등으로 평화 분위기를 만들던 지역구에서는 다시금 강제퇴거 명령을 집행했다.
학생들이 주축이 된 거리 시위의 모습 ⓒHeewan Shin
난민들이 남아있는 학교 근처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 ⓒHeewan Shin
경찰의 강제퇴거작전을 피해 학교 지붕에 남아있는 난민들은 SNS 등을 통해 Humanität(인도주의, 박애)를 외치고 있다. 그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임시 캠프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 독일 기사는 난민들의 고향의 삶의 수준이 katastrophal 즉, 재앙 혹은 파국적인 상황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지난 몇 개월간 난민을 내쫓기 위한 시정부 그리고 지역구의 노력과 난민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의 노력은 끊임없는 마찰을 빚었다.
물론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그리고 독일 나라가 모든 난민들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베를린은 이미 평범한 시민들이 살기에도 점점 팍팍해지고 있기 때문이고, 저렴한 주택이 극심하게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이주의 자유와 국경 없는 세상 등도 사실 쉽게 이뤄낼 수 없다. 누구 한쪽의 편을 들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모르는 척 내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이 모든 사건이 한국 사회도 언젠가는 맞닿게 될 상황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선진 정치 사회에서나 보편적인 인권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오해일 것이다. 이 글을 읽어서 알겠지만, 난민들이 지내던 지역은 베를린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지역이고 동시에 녹색당의 심장과도 같은 지역구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난민들이 요구했던 작은 인권조차도 지켜주지 않았고, 이번 사건을 두고 언론은 녹색당의 정치적 자살이라고 평을 내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우리 집 앞에, 출근길에 그리고 직장 앞에 처음 들어본 나라에서도 온 난민들이 캠프를 차려 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자국민인 거지조차도 못마땅해 하고 자국민인 노숙자가 집 앞에 숙식하는 것도 상상 못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상상도 못해본 일일 것이다. 난민들이 지내던 베를린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