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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리포트] 라르씨클르리 - 지역사회에 대안적인 삶을 실현하는 공간

우리는 지금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소비가 미덕인 신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 가운데 ‘이게 아니다 !’라고 소리없이 외치는 사람들이 프랑스에 있다. 이들은 기계화에 퇴색된 인간성에 가치를 두고, 개인주의로 희박해진 나눔을 주장하며, 친환경적인 방법을 통해 느린 속도로 살기를 선택한다. 대안적인 방식으로 살기로 결정한 이들, 대안적인 삶을 제시하고 그런  삶이 사회적으로 가능하도록 실천하는 장소를 하나 하나 찾아 소개해보고자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대안적인 삶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지도 모르므로.

 

 

La REcyclerie - 라르씨클르리

(사진 : 까페 )

 

파리에서 메트로 4호선을 타고 북쪽 끝에서 내리면  종점인 뽁드드 클리넝꾸르 역 출구 바로 앞에 La REcyclerie(라르씨클르리)라는 식당겸 테이크아웃 카페가 있다. 앤티크한 인테리어와 참신한 분위기가 풍기는 식당 입구에서 메뉴를 먼저 시키고, 지불을 하고, 플라스틱 번호표를 받고 자리를 찾아 앉아있으면, ‘몇 번 음식 나왔어요~’ 안내가 나온다고 한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자리를 찾아 앉으려고 건물 안을 기웃거려본다. 공구가 잘 정리된  열린 작업실이 오른편에 있고, 전체가 창으로 뒤덮인 밝은 창문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발밑으로 지나가는 기차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차 소리도 안들리고, 기차도 없고, 기차 레일 사이사이에는 무성하게 풀들만 자라있는데 어쩌다 이 기차역이 버려졌을까? 기차길을 따라 내려가고 싶어졌다. 날씨 좋은 날 밖에 나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된 테라스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노라면 계단 중간 왼쪽편에 닭 열 댓 마리와 닭장이 나오고, 옆으로 길게 뻗은 허브밭이 있다. 계단을 다 내려가 기차 승강장을 따라 걸어가면 야외 어항이 있고, 긴 텃밭이 있고, 빈 부스들이 즐비해있으며, 다시 돌아와 계단 뒤에 있는 벤치에 앉으면 호박 넝쿨 뒤로 살짝살짝 지렁이 퇴비통이 보인다. 기차역이었던게 틀림없었을 이곳이 어쩌다 버려지게 되고, 식당 뒤에 이 넓은 공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  

(사진 : 식당 테이블에서 아르나노 역 기차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진 : 나뭇가지로 만든 아치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기차길에 닿는다.)

 

식당 이름을 설명하면 바로 단순한 식당이나 카페가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La REcyclerie (라르씨클르리), 우리말로 ‘그 재활용 가게’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르씨클르리라고 하면 버려진 중고품을 고쳐서 다시 파는 곳을 말한다. 파리와 외곽 경계 지역에 몇 개의 르씨클르리가 있지만 18구 클리넝꾸르의 ‘라르씨클르리’는 기존의 재활용 가게의 개념을 넘어선다.

 

3R -  « 줄이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한다 »

(사진 : 르네의 아틀리에)

 

한 마디로 말해서 3R (Réduire – Réutiliser – Recycler), 즉  « 줄이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한다 »라는 목표 아래 나눔과 친환경을 실천하고 교육하는 열린 공간이다.  입구 오른편에 있던 작업실 이름은 ‘르네의 아틀리에’. 르네는 그저 돈을 받고 고쳐주는 수선공이 아니다.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조언을 주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되면 같이 앉아서 머리를 맞대고 고치면서 수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하며, 1년에 한 번 쓸까말까해서 살까말까 주저되는 공구를 선뜻 빌려주기도 하고, 정 바쁜 사람들은 수선을 맡겨놓고 나중에 찾아갈 수도 있다. 단, 한번에 한 가지씩만 의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순환가능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하우를 알려주기위해 다양한 테마 하에 여러 가지 아틀리에를 매일 매일 열어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고장이 나서 버려질 수도 있는 물건에게 이렇듯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곳, 이곳이 바로 르네의 아틀리에다. 르네는 프랑스 이름인데, RE-né(르네)라는 단어를 ‘르-네’로 분석해보면 불어로 ‘새로 태어난’ 이란 뜻이다. 이 장면에서 르네상스라는 유럽의 문화사조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가 ? 그렇다, 르네상스는 불어로 ‘재탄생’이란 뜻이다. 어쨌거나 René라는 불어 이름이 있기도 하니 ‘르네의 아틀리에’는 중첩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곳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2개의 신분증 복사본과 연회비 25유로를 내면 끝 !

 

(사진 : 건물에 들어서서 오른편. 데코레이션 뒤로 르네의 아틀리에가 보인다.)

(사진 : 버려진 물건들을 줏어다 뚝딱거리고 만들어 제2의 생명을 얻게 된 안락의자)

 

100%  순환경제로 구성되고 운영되는 공간

까페와 식당은 이곳에서 운영하는 대안적인 프로그램의 주요 재정을 대는 수단인데, 이곳의 모든 인테리어와 악세서리는 하나도 돈 주고 산 것이 없다. 다 버려진 물건을 주워서 만들고 붙이고, 인테리어, 화장실 벽 타일도 모두 재사용품들이다.

 

 

버려지는 것 없이 순환적으로 돌아가는 사이클은 물건 뿐만이 아니다.까페와 식당에서 쓰는 재료는 유기농은 아니지만 근거리에서 생산된 지역 농산물이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 이곳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는 직접 키우는 열 댓 마리의 닭과 지렁이 퇴비통으로 들어가니 음식쓰레기가 거의 없다.닭똥, 지렁이똥, 지렁이가 분해한 음식쓰레기는 퇴비가 되어 텃밭에 뿌려지니 식물과 흙에 풍부한 영양분이 된다.  텃밭은 화학비료도, 농약도 치지 않고 유기농으로관리한다. 주변에 사는 주민들도 이곳 지렁이 퇴비통에 음식쓰레기를 가져와 버릴 수가 있고,몇 달 후,그 교환으로 퇴비를 받아갈 수 있다고 한다. 튀김과 요리에 사용된 식용유도 그대로 버려지지 않는다. 에콜로직 오일이란 회사에서 수거해가서 바이오 연료로 만들어진다.

 

(사진 : 튀김이나 요리로 쓰였던 식용유는 에콜로직 오일이란 회사에서 수거해가서 바이오 연료로 만들어진다. 프랑스에서 매년 3만6천톤의 사용한 식용유가 수거되는데 이는 전체 요식업계의 30%에 해당한다. (참고: 바이오 디젤은 경유와는 달리 미생물 분해되며, 독성이 없으며, 연료로서 연소될 때 독성이나 기타 배출물이 현저하게 적다. https://ko.wikipedia.org/))

 

(사진 : 계단 밑 못쓰는 자투리 공간을  지렁이 퇴비통으로 활용했다. 냄새도 없을 뿐더러 호박 넝쿨로 뒤덮혀 굳이 찾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사진 : 아쿠아에포닉스 – 물고기와 식물간의 공생을 이용한 어항)

(사진 : 기차가 닿지않는 승강기는 유기농 텃밭으로 쓰인다. 수확물을 식당에서 재료로 쓸 수 있다면 완전 순환이겠다 싶어 물어봤더니 프랑스 법상 불가능하댄다. 식당 재료는 구매를 해야하고, 텃밭에서 얻어진 유기농 농산물은 아쉽지만 직원들끼리 나눠갖는다고 한다.)

 

건물 자체도 버려진 기차역을 재활용했다. 이 주변을 지나는 오르나노 가(街)에 위치한 오르가노 기차역은 파리 둘레를 도는  주요한 기차 노선이었던  ‘라쁘띠뜨 쌍튀르’ 노선의 한 역으로,  1869년에 문을 열었다. 1930년 초, 메트로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라쁘띠뜨 쌍튀르 노선 이용자가 줄어들었고 오르나노역은 다른 역들과 마찬가지로 1934년에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 : 라르씨클르리 건물 입구에 옛날에 찍은 오르나노 역 사진이 걸려있다.)

80년이 지난 2014년 봄,  ‘라르씨클르리’ 프로젝트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사이트 :  http://www.kisskissbankbank.com/la-recyclerie) 키스키스뱅뱅 사이트에 올라있는 프로젝트 소개문 일부를 번역해보면 아래와 같다.

 

현재 공사 중인 이 곳은  ‘라 르씨클르리’란 이름으로 매일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올봄에 새로 문을 엽니다. 5월1일부터 준비될 당신이 필요합니다 !

 

라르씨클르리, 중고품 창조 공간

라르씨클르리는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친환경적이고 대안적인 사고에 기반합니다. 이 공간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회관계가 재활성화되는 즐거운 터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 펼쳐질 이 공간은 해당 지역에 뿌리를 두고, 파리와 그 외곽지역에 열려있습니다. 이곳은 일상 속에서 중고품을 창조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만남의 장소가 될 것이고, 웰빙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발견하고 배우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공사 중인 이 장소와 프로그램, 식당 메뉴 등은 아래 세 가지 원칙에 기반합니다.

3R : 줄이기, 재사용하기, 재활용하기.

줄이기 = 쓰레기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산단계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재사용하기 = 헌 물건에 제2의 생명을 부여한다.

재활용하기 = 쓰레기를 모으고 가공해서 제조공정에 재투입할 수 있도록  한다.

 

협력적인 시도에 가치를 부여한다

과도소비의 실락원은 끝 ! 대여, 교환, 중고품 구입, 공동 사용 등을 통해서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 안에서 교류하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도록 한다. 라르씨클르리는 지속성, 근거리성, 친환경성, 책임성 등 순환경제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단순한 소비자를 책임감있는 소비자로 만든다.  

 

Do It Yourself : 다른 방식으로 자율적이 된다.

DIY는  스스로 알아서 고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안적이고, 분명하고, 협력적인 공통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각자 공구를 만들 줄 알고, 주어진 것에 맞춰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15 000 유로를 목표로 했던 이 프로젝트는 목표액을 훌쩍 넘어서 마지막 날인 5월6일에 16 252유로를 끝으로 성황리에 마감됐다.

 

 

조용하고 좋아서 그냥 산책하러 가끔 와요

지렁이 퇴비통 앞에 놓인 벤치에 중년의 여인이 앉아 손에 악보를 들고 허밍을 하고 있는데, 악보를 흠찟 엿보니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오래된 바로크 음악같아 보였다. 나는 취미로 성악을 하는데, 최근에 굴룩, 헨델 등 바로크 곡을 연습했어서 이 특이한 악보가 어느 시대 음악인지 정말 궁금했다.

 

필자 : « 실례합니다. 보고 있는 악보가 바로크 음악인가요 ? »

여인 : « 아니요. 르네상스 음악이에요. »

 

‘오, 르네 (RE-né)!’ 한참 바로크 음악과 르네상스 음악을 둘러싼 문화적인 대화가 오고간 뒤, 카메라를 든 나를 보고 여인은 내게 이곳 취재를 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답을 한 뒤 나는 그에게 점심을 먹으러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채식 음식을 주문해놓고는 계단 밑 지렁이 퇴비통을 찍으러 잠깐 내려왔던 터였다.

여인 : « 아뇨. 이곳이 조용하고 좋아서 그냥 산책하러 가끔 와요. 게다가 집에서 별로 멀지 않구요.  오늘은 여기서 친구랑 만나기로 했어요. »

초면인 사람과 이름도 모르고 음악 얘기, 지렁이 퇴비통에 대한 얘기 등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친구가 도착했고, 나는 다 식어버린 내 음식을 찾으러 올라갔다.

 

(사진 : 라르씨클르리 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시켜보았다. 접시에서 동물성 단백질만 빼고는 먹을꺼라고는 야채밖에 없는 무늬만 채식인 채식음식인지 채식인을 위해 진짜 채식음식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대만족! 식물성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한 재료를 썼고, 시각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어떤 제품이 고장나거나 옷수선이 필요할 때, 고치는 방법을 몰라서, 혹은 그거 하나 고치자고 공구를 사자니 비싸서, 혹은 수선을 맡기자니 새 것을 사는 것보다 더 비싸서 폐기처분시키는 경우가 사실 많다. 음식쓰레기만 봐도 전세계 식량 생산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3억 « 톤 »의 음식쓰레기가 매년 버려진다. 독성물질을 배출하는 전자 및 전기 제품 쓰레기는2013년에 3천9백 8만 톤, 2014년에는 4천1백8만 톤으로 매년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이중에는 수은, 카드뮴, 크롬 등 독성물질 2천2백만톤이 들어있다. 인간이 버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무한정 먹고 자연분해시키는 블랙홀같은 쓰레기통은 이 지구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서 식당과 카페로, 지역농산물 지지자로, 재사용하고 재활용을 실천하고 배우는 장소로,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하는 장소로, ‘소비의 목적없이 그냥 좋아서’ 오는 산책의 장소로, 주민의 음식쓰레기를 퇴비로 교환해주는 르네상스의  핵으로 자리매김을 시작한 라르씨클르리가 지속가능한 순환의 모터가 되어 지역 사회에 좀더 많아지고 번성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