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유한자원인 석유가 드디어 바닥났다고 상상해보자. 보행자와 유모차가 도로로 다니고, 등하교와 출퇴근은 전철이나 자전거로 하겠지. 걸어 다니는 사람도 상당히 많아 질 거야. 시내 교통 체증은 완전히 사라질 테고 공기가 맑아지는 걸 실감하겠지.
어디 그 뿐 만이겠어?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갈 수 없으니 동네 슈퍼와 가까운 장에서 장을 보겠지. 그것도 며칠 후면 더 이상 새 물건이 유통되지 않아 진열장이 빌 테고, 아니지, 며칠도 아니지. 한 달 치 식량을 미리 사서 비축하느라 단 하루 만에 슈퍼에 식량이 동이 날 지도 몰라. 생선과 야채, 과일을 실어 나르던 트럭도 서버릴 테고, 농부는 수확물을 배송할 방법이 없어서 밭에서 썩는 야채를 보며 울상 일 거야. 트랙터를 몰고 밭으로 나갈 수도 없겠지. 석유 추출물로 만드는 농약은 드디어 끝장을 보는 걸까? 석유에서 뽑아내던 모든 섬유와 화학산업들은 또 어쩌고?
경제, 사회, 환경, 게다가 요즘은 정치까지, 다방면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석유가 바닥나기 전에 석유 없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영국인 롭 홉킨스가 시작한 전환도시 운동의 컨셉인데, 롭 홉킨스를 알기도 전에 이 컨셉을 실행하고 있던 프랑스의 도시가 있다. 태양에너지로 급식을 요리하고, 지역화폐를 쓰고, 초등학생들이 마차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아주 재미난 도시. 지난 8월, 프랑스 동쪽 알자스 지방에 위치한 인구 2천3백 명의 작은 도시 ‘웅게르샤임’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쟝-끌로드 멍슈 시장
저녁에 역에 도착하니 시장님 비서가 차로 마중을 나왔다. 차가 없으면 2km를 걸어가야 할 판이었다. 바로 시의원 회의실로 인도되었다. 시장님 책상 위에는 작년에 내가 도시전환에 대해서 쓴 오마이뉴스 기사가 우리말로 출력되어 놓여 있었다. 작년 11월 말, 파리 회의 바로 전날에 파리에서 롭 홉킨스의 강연이 있어서 간 자리에 웅게르샤임 시장님이 초대되어 그 도시의 실례를 소개했었는데, 그때 내가 찍은 롭 홉킨스와 시장님 사진이 시장님 책상 위에 올라있었다.
시의원 회의 내용을 듣자하니 용어가 정말 신선했다. 몬산토, 라운드업, 제초제, GMO, 아니 어떻게 이런 단어들이 시회의에서 자연스럽게 툭툭 터져 나올 수 있는 걸까?! 시에서 발간하는 다음 소식지 내용을 토론하는 중이라는데, 이건 우리 마을 시의원 회의에서는 전혀 들어볼 수 없는 단어들이고, 녹색당이나 환경주의자들과의 대화에서나 나오는 단어들이라서 나는 마치 물을 만난 고기 같은 느낌이었다. 내용들이 한결같이 다음과 같았다. 어떻게 하면 아직도 농약을 쓰는 지역생산자들을 설득해낼 수 있을까, 식초와 물을 1대2로 섞은 뒤 굵은 소금을 첨가하면 자연제초제가 돼,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이게 경제적으로 저렴하다는 걸 말해야 돼,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제초를 한 뒤로 연간 5천유로가 절약됐어, 농약 뿌려 제초하는 가격에 비하면 절반이지, 근데 아직도 민간에서는 농약을 쓰는 집이 있어, 몬산토를 상대로 있을 10월 헤이그 국제법정에 반다나 시바가 올 거야, 그 얘기를 다뤄볼까 등등. 콜리브리 운동이 뭔지, 피에르 라비가 누군지 모르는 우리 동네 환경담당 시의원에 비하면 이곳은 그야말로 새 세상 같은 곳이었다.
웅게르샤임 시의원 회의 중
시의원 회의가 끝나고 드디어 나에게 인터뷰를 시작해보라고 했다. 시장님만 남고 다들 갈 줄 알았는데, 다들 자리를 뜨지 않고 호기심이 잔뜩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더군다나 이 도시에는 동양인이 없다는 사실을 그 다음 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일제히 내게 쏠리는 시선을 몸 전체로 느끼고서야 알게 되었다.
쟝-끌로드 멍슈 시장이 직접 망치질을 하고, 끌로 나무껍질을 벗겨내는 등 공사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방문 기간을 통털어 가장 인상깊었다.
21세기를 맞아 21개나 되는 도시전환 운동을 일으키는 작은 도시에서 그 운동의 선두에 선 이는 다름 아닌 시장 쟝-끌로드 멍슈이다. 환경운동을 시장이 주동하는 건 참으로 드문 일인데. 시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가성칼륨 광산의 노동조합원이었다고 한다. 늘 사람들과 함께 일을 만들고 움직이는데 익숙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시장으로 27년이나 있고, 나이 칠십이 가까 오면 목에 힘주고 뒷짐 지고 물러나 손가락으로 지시만 할 법도 한데, 그는 아직도 웅게르샤임의 시 건물 공사현장에서 두 팔 걷어 부치고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 9시반. 숙소로 부시장이 차를 몰고 마중 나왔다. 13.5km²에 걸쳐 산재한 웅게르샤임의 도시전환 현장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시에서 짓고 있는 병조림 제조공장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시장님이 지푸라기 단열재를 직접 쌓고 계셨다. 웅게르샤임 방문 기간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공장 옆 부지에는 시 소유의 8헥타르의 유기농 밭이 있다. 이 밭의 농산물로 웅게르샤임 학생들 500명의 급식을 100% 유기농으로 공급한다. 급식이 100% 유기농으로 바뀌면서 급식비가 올랐을까? 천만의 말씀! 100% 유기농 급식이 시작된 초기에는 상승된 급식비를 시에서 지원했지만 지금은 지원금 없이도 이전과 동일한 급식비 4유로 20쌍 팀을 유지한다. 시에서 밭을 사고, 협회를 통해 운영하게끔 하기 때문이란다. 뿐만 아니다. 웅게르샤임 주변 도시 학교 급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공급하기까지 한다. 웅게르샤임의 경작지가 모두 유기농이냐 물었더니 전체 경작지는 800헥타르고, 그중 7%인 60헥타르만이 유기농이라고 한다. 갈 길이 멀다.
시에서 짓고 있는 병조림 공장. 건물들이 강강술래 돌 듯 원을 그리며 지어지고 있다.
공사 중인 병조림 공장은 볏짚, 찰흙, 나무 등 지역에서 얻어진 친환경 재료로 지어지고 있다. 아니, 지역이라고 하기도 뭣하게시리 바로 건물 앞에서 채취한 재료들이다. 급식을 제공하고 남는 야채와 지역 유기농 농산물을 사들여 병조림을 만든 뒤 지역시장이나 유기농 가게에 다시 판다.
새 병조림 건물이 들어서는 곳은 예전에 가성칼륨 광산이었다. 흩날리는 가성칼륨 가루로 식생이 망쳐졌었는데, 폐광 이후로 생태계가 점차 복원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