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와 루퍼트 리드(Rupert Read)
2016년 11월 22일
번역 : 조안나(편집위원)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결정은 주류 정치 엘리트의 실패이자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 고통을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것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와 루퍼트 리드의 설명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노동 계급 유권자들은 이번 투표를 통해 가난과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기업의 세계주의를 분명하게 반대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방법은 혐오가 아닌 지역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아직까지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충격은 영국의 진보주의자, 녹색당, 좌파들이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느꼈던 것과 유사합니다. 두 경우 모두 이 캠페인의 가면 뒤에 숨은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의 메시지로 인해 반감이 고조되었습니다.
이러한 감정이 극단적으로 치닫기 전에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공포와 분노에 단순히 반응하고 항의와 비난만 한다면 선거의 결과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클린턴과 영국의 EU 잔류가 좌절된 것은 그것이 세계화 시대의 시민들이 겪어야 고통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모리배들을 위한 정책을 좌절시키면서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경제적 고충을 호소한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트럼프와 브렉시트에 찬성한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두 나라의 유권자들이 친기업적인 세계화로 사회적, 경제적 불안을 야기해 온 시스템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검은 먹구름 가장자리에 있는 밝은 빛입니다.
사전 경고에 대한 뒤늦은 반응
브렉시트 선거가 있기 전에 우리는 브렉시트 잔류를 주장하는 측의 성장을 지지하는 문구가 보수주의자 그리고 자본, 재화, 서비스, 노동자의 무질서한 움직임으로 피해를 봤던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쪽도 EU 내 무역 협정을 비롯해 시민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일련의 통상 조약이 갖고 있는 잔혹한 현실에 대응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시스템에 대한 반대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배만 불리고 있는 엘리트 집단에 대한 반대로, 수백만 명의 영국인들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분노를 담아 EU 탈퇴에 투표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도 비슷합니다. 많은 유권자들이 힐러리 클린턴이 유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재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버니 샌더스가 후보로 나왔다면 자유 무역과 친기업적인 내용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기에 트럼프를 이겼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세계화의 폐해에 대해 인기에 편승한 답을 내놓은 브렉시트와 트럼프 선거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유권자는 근본적인 변화를 원합니다. 주류 진보세력, 녹색당과 좌파가 추구하는 실직자들을 위한 직업 교육 프로그램, 제3세계 공장에 대한 자발적인 안전 기준과 같은 ‘개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세계화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세계화가 어떻게 인종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가
세계화와 시장 주도의 집중화는 소수만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경제 현실 아래서 서로 경쟁하도록 함으로써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를 팽배하게 만들었습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작은 티벳’으로 알려진 히말라야 서쪽의 인도 라다크(Ladakh)에서 이 모습을 처음 목격했습니다.
라다크에서는 600년 동안 불교 신자와 이슬람 신자들이 큰 다툼 없이 살아왔습니다. 농번기에서는 서로 돕고, 상대 종교의 축제에 참가하고, 다른 종교를 가진 커플이 결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에 문을 연 1975년부터 15년 동안 불교 신자와 무슬림 신자 간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며 1989년에는 서로의 주거지에 폭탄을 던지는 사건까지 발생 했습니다. 십여 년 전에는 무슬림 이웃과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한 불교 신자 할머니는 ‘무슬림을 모두 죽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다 죽일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두 신자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그리고 완전히 바뀔 수 있었을까요? 세계화가 개인과 공동체에 미친 다음의 복잡한 영향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 변화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싸면서도’ 보조금을 받는 제품의 수입으로 인한 라다크 지역 경제의 잠식
• 일자리와 정치 권력의 도시 집중화
• 마을 단위 문화와 자치 구조의 붕괴
• 실업과 빈곤 발생(현재 라다크의 중요한 문제)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타자’에 대한 적대심이 나타나게 됩니다(노르베리 호지는 자신의 저서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와 다큐멘터리 행복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Happiness)에서 이 연결고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단 라다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반구 국가들의 문화가 제국주의, 식민주의 시대의 초기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이 때문에 영국과 유럽이 담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십여 년 사이에 세계화가 현대화되면서 이 과정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일자리 파괴, 임금 삭감, 업무 조건 악화
기업이 아무 규제 없이 전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자유 무역’ 협정으로 인해 산업화 세계의 노동자들은 시간 당 1달러에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일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미국에서 68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고 중국과 항구적정상무역관계(PNTR)를 맺고 나서는 270만 개가 더 사라졌습니다. 일자리가 없어져 빈곤화를 양산하는 것 말고도 노동자가 낮은 임금이나 열악한 환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른 곳으로 일자리가 넘어갈 수 있다는 불안도 큰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이와 함께 남반구의 국가들의 경우중앙 정부와 국제 경제기구의 지원을 등에 업은 거대 산업이 진입해 이들 국가의 지역 경제를 이끄는 생계 수단을 파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대한 글로벌 기업을 위한 경제 정책으로 인해 지역민들이 적응해온 생존의 방법이 조직적으로 훼손되면서 남반구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받아들이던가 이민을 가야 하는 두 가지 선택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NAFTA에 따라 멕시코 시장에 보조금을 받고 쏟아지는 미국산 옥수수로 인해 240만 명의 농민들이 생활수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도시로 몰려들거나 미국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리므로 북반구 나라들의 실직과 남반구 나라들의 이민 사태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두 문제의 뒤에 있는 세계 경제의 결함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규제를 반대하는 우파들은 이제 거대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로 발생한 인구 유입의 문화, 경제, 심리적 불안정을 이용합니다. 우파가 이 교묘한 속임수를 쓰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좌파와 녹색당이 세계화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과 일관성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서민 계급을 상품화하고, 모든 정책 결정을 독점적인 시장에 맡기고, 시민들을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공급망을 길게 만드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세계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며 피할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했습니다.
사실 유권자들은 데이비드 카메론, 힐러리 클린턴, 프랑수아 올랑드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패라지, 트럼프, 르페가 성공하거나 우리가 세계화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을 내놓는 것이 남았습니다. 후자라면 우리의 답은 지역주의입니다.
해결책: 지역주의
근본적으로 지역주의는 경제활동의 규모를 줄이고 자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외부 세계를 차단하고 고립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며 국제 무역의 중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수출을 위한 단일 경작에서 벗어나 지역의 필요에 맞는 다양성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문제와 에너지 공급 감소의 문제가 대두된 시대에서 우리는 전세계 국가들이 거의 유사한 양의 동일한 제품을 일괄적으로 수입, 수출하는 세계 시장의 모순을 거부해야 합니다. ‘효율’과 ‘이윤’을 위한 보조금 및 지원은 뒤집어져야 합니다.
경제 규모를 줄이면 경제 활동으로 인한 환경 영향은 당연히 줄어듭니다. 하지만 지역주의에 대한 논쟁은 환경 문제 이상을 목표로 합니다. 그 밖에도 지역주의는 시민과 소비자로서 우리가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세계 경제의 관점에서는 마치 우리의 팔이 너무 길게 자라서 우리가 하는 것을 스스로 볼 수 없는 형국입니다.. 반대로 경제가 좀 더 작은 규모로 운영되면 모든 것이 좀 더 투명해집니다. 이웃 농장에서 구입하는 사과에 살충제를 뿌리는지 노동자의 권리가 유린당하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역주의가 실행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근본 원칙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것과 분리하는 방식의 프로젝트가 무수히 많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특히 먹거리와 관련된 것입니다. 먹거리는 매일 필요로 하면서 인간이 생산해내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농산물 시장부터 공동체가 지원하는 농업까지 학교 텃밭부터 영속적인 농업까지 지역 먹거리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사업, 에너지원, 은행, 금융 등 필요한 여러 부분을 지역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큰 그림을 보자
EU를 탈퇴하자는 영국의 결정에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은 힘들게 얻어낸 환경 보호 정책을 버리고 바닥으로 빠르게 곤두박질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제 영국은 지역과 지구로 회귀하여 위험하고 자원 집중적이며 파괴적인 세계 경제와 영국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손에는 보호주의, 다른 한손에는 규제 완화와 친기업 정책을 놓은 채 모순된 행보를 이어갈 것입니다. 이와 달리 지역주의는 일관성 있고 포괄적으로 방향을 수정해 자국과 자국의 일자리 그리고 지구와 미래 세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합니다.
지역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면, 지역 공동체가 발전하지 못한 채 사람들을 무자비한 경쟁 속에 내몰아 반이민 정서를 키우게 될 것이며 결국 더 나쁜 상황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주의를 채택한다면 협력과 국제적인 이해관계에 대한 새로운 씨앗을 뿌릴 수 있습니다.
지역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세계화를 장려하는 세력이 사람들이 접근하는 정보의 대부분을 제어하고 그들의 선동이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노동 및 환경 단체, 중소 기업과 가족 농민, 교육자와 학생, 종교 그룹과 평화 운동가들이 전세계적으로 손을 잡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파괴하는 정책을 용인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 리더를 선출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역을 보호하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의 먹거리와 에너지 체계를 복원하고 현지 지식과 지방 자치를 다시 수립하기 위해 지역 차원의 결연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이미 여러분은 이러한 결연한 노력의 일부에 참여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직 그렇지 않다면 참여를 기대하겠습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자 바른 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 수상자입니다.
루퍼트 리드는 '성장 후 프로젝트(The post-growth project)'의 공동 저자입니다..
이 칼럼은 The Ecologist에 2016년11월22일 실린 글입니다.
The Ecologist는 1970년부터 발간 중인 환경 잡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