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평범한 한 환경주의자를 소개할까 한다.
필립은 2016년 3월에 있었던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삭투루빌의 녹색당 남성 부후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이의 녹색당 여성후보였던 나를 도와 캬리에르쉭센느과 몽테쏭을 자전거로 돌며 같이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다. (참고로, 우이와 삭투루빌 지역구는 각각 3개의 도시를 포괄한다. ) 몽테쏭 시청 앞 공식 게시판에 첫포스터를 붙이고 셀카를 찍으려고 할 때, 지나가는 사람이 오더니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 그 덕에 필립과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다. 사진 속의 우리를 보라. 붓과 포스터 말이를 들고 순진하게 신나하며 뿌듯해하는 우리를 !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때, 늘 그가 물풀을 만들어 놓았고, 난 포스터를 들고 붙일 도구를 찾으러 그의 집으로 갔다. 차 한 대가 들어갈 정도의 폭에 길이 20미터 정도인 막다른 길 끝에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형식적인 울타리도 정문도 없고, 나무 가지를 팔로 걷어내고 들어가면 그의 집 마당이 나온다. 왼편엔 작은 텃밭이 있고, 오른쪽 한 켠에 오래되서 막혀버린 우물이 있고, 그 옆 나무 밑에 물풀이 놓여 있었다. 혹여 그가 집에 있는 시간에 내가 들를라치면 그는 한번도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적이 없었다. 텃밭에서 캔 뚱딴지 감자, 이런 저런 이름을 잊어버린 식물, 한 양동이 가득한 퇴비 등 항상 정원에서 나온 무언가를 내게 주었다. 어느날은 해가 져 어둑어둑 해질 무렵이었는데, 경주를 하듯 벽을 타고 올라가는 수 십 마리의 달팽이를 보여준 적도 있었다. 그 많은 달팽이 중 한 마리도 죽이지 않았다.
필립은 내가 아끼는 친구다. 왜냐하면 종교인으로서나 환경주의자로서나 자신이 믿는 바를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매우 드문 사람들 가운데 하나기 때문이다. 그는 늘 웃고 다녔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나타났다. 교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아이들을 가르쳤고, 문맹률을 낮추고, 반대로 모든 이들의 교육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협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학교에는 문제있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있는 교사가 있을 뿐’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합창 활동도 하고, 종교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어 믿음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이 동네에 이사오기도 훨씬 전에 이 동네에 녹색당을 처음 세운 일원이었고, 약간 수다스럽긴 했지만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다. 절대 앞에 나서지 않고, 크든 작든 어떤 일이든 그가 필요하다 싶은 자리에서 아주 적절하게, 하지만 매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곤 했다. 환경을 위해서 고기를 아주 적게 먹고, 1회용 컵이나 포장, 비닐봉지를 쓰지 않으며,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동물의 권리나 환경문제에 대해 예민했다. 자신은 행동하되 남에게 ‘하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모임에 의견이 심하게 엇갈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한쪽 편을 들면서 공격적이 되거나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우리 모두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 모두가 목표하는 바를 상기시키고 평화를 구했다. 어느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갈등이 생긴 상황 자체를 무척 가슴아파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워할 수가 없었고,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의 말대로 쉽게 갈등을 불식시키지는 않았지만.

사진 : 2015년 우이 선거구와 삭투루빌 선거구의 녹색당 후보자 및 포스터 사진을 내가 찍었다. 그때 찍은 필립의 사진이 부고에 쓰이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신이 정말 사랑했는 지 성탄이 오기 정확히 이 주 전 금요일, 고요한 밤에 그가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늙어서 병들고 약해지면 주변에서 걱정도 하고 챙겨주기도 하는데, 이 친구는 그걸 다 마다하고 주변 사람 고생시키지 않고, 걱정시키지 않고, 많지 않은 예순 아홉의 생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조용히 마감했다. 온몸에 상처 하나 없이 자는 모습 그대로 하늘로 갔다. 그 다음 일요일 아침, 아마도 그는 구름 위에서 신과 낄낄거리고 캬리에르쉭센느에서 따온 싱싱한 양송이 버섯을 나눠 먹으면서 신의 곁에 앉아 예배를 보았을 지도 모른다. 이제 자전거가 더이상 필요없을 것이다. 순간이동을 하든가, 날아다니면 될 테니까.
화요일 저녁 퇴근길에 핸드폰을 보니 지역신문 기자가 내게 전화한 흔적이 있었다. 다음 날, « 환경주의자들은 상중 »이라는 제목으로 필립의 부고가 지역신문에 실렸다. 지역선거 포스터용으로 내가 찍었던 바로 그 사진이 실렸다. 기분이 묘했다. 그 사진을 찍을 때만해도 내 사진이 그의 부고 사진으로 쓰일 줄 전혀 몰랐는데.
장례식 날짜까지 계산하고 숨을 거둔 건지 크리스마스로 사람들이 정신없어지기 일주일 전에 장례식이 열렸다. 아내도 자식도 없고, 금요일 이른 오후에 치뤄지는 장례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프랑스에서 그렇게 많은 조문객이 모인 장례식은 처음 보았다. 수 백 명이 그 큰 성당을 빼곡하게 채웠다. 회교도 친구도, 교회/성당 다니지 않는 지인들도 모였으니 그 여느 일요일 미사 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왔을 것이다. 참고로, 프랑스는 한국같지 않아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많은 사람들을 부르지도 않고, 부조금을 내지도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내 옆에 앉은 회교도 친구가 말했다. ‘아직 활동할 게 많은데 젊은 나이로 가서 안타깝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다. « 그가 죽은 뒤에 그가 몸담았던 협회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잖아. 너도 그중 한 협회에 지원금을 내고 싶다면서 ? 그가 살아있다면 아마 우리는 그가 어떤 활동을 했는 지 관심을 안 가졌을 지도 모를껄 ? » 실제로 필립의 장례식을 준비했던 누나는 조문객들에게 ‘화환은 가져오지 마세요. 필립이 지원했던 협회활동에 지원금을 주시는 건 좋습니다’라는 안내를 했다.
필립이 수 백 명의 조문객들 마음 속에 살아있다면 그가 묵묵하게 혼자 했을 일을 수 백 명이 수 백 배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아주 평범한 환경주의자였고, 박애주의자였고, 평화주의자였던 조용한 삶이 가슴에 큰 울림을 준다. 나는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죽은 뒤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평가할까 ? 이 세상에 예수가 다시 온다면, 아니 우리 중에 예수가 있다면, 아마 필립과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았을까 ? 내일은 크리스마스다.

사진 : 필립이랑 몽테쏭까지 자전거로 4.5km를 달려 시청 앞 게시판에 지역선거 후보자 포스터를 붙이고 찍은 기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