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연구소 로고
연구 및 자료 - 해외소식
[독일]한국인의 시선으로 본 독일의 창문

2018월 2월 14일, 독일 만하임에서

신나희

 

 

들어가며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던 내가 바다 건너 낯선 땅에 정착한 지 6개월이 넘어간다. 이제 어디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낯설고 신기한 것 투성이다. 그중 몇 개를 골라 차례대로 소개해보려 한다. 다른 기후와 문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낯섦을 ‘독일의 창문’에서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신나희

 

모기장 없는 자연 친화적인 창문?

 

때는 기숙사에 입주했던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나는 관리인으로부터 열쇠를 받아 배정받은 방으로 향했다. 내게 주어진 작은 방은 완벽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학생으로서 필요했던 최소한의 가구들이 가지런히 제자리에 놓여있었고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더할 나위 없이 따스했다. 무거운 짐을 얼른 방에 들여놓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이제 창문쯤은 쉽게 열 수 있지. 그런데 아뿔싸, 여기도 모기장이 없었다. 사실 모기장이 없었던 것은 내 방이 처음이 아니었다. 독일에 도착해서 기숙사 입주 전까지 일주일 동안 묵었던 유스호스텔에도 창문에는 모기장이 없었다. 그래서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어 놓으면 그새 엄지손가락만 한 벌이 들어오는 바람에 함께 방에서 묵었던 친구와 벌을 쫓아낸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여간이 아니었다. 일주일 중 사흘 정도는 벌이 도통 창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두려움에 잠을 자기도 했다. 독일에 모기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모기장이 없을까? 최근에 지나가면서 몇몇 집에서 모기장을 설치한 것을 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게는 미스터리다.

 

세상을 차단하는 창문 가림막?

 

낯선 창문에 대한 궁금증은 모기장 없는 창문에서 끝나지 않았다. 기숙사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곧 어둑한 저녁이 되면 대부분의 창문이 바깥에서 내려오는 철제 블라인드로 완전히 가려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영업이 끝난 상점이 문을 잠그고 셔터를 내린 것처럼 말이다. 밖에서 보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한 집마다 차례로 셔터가 내려져서 깊은 밤중이 되면 건물 대부분이 애초에 창문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솔직히 그 모습이 나는 무서웠다. 삐거덕거리며 무겁게 내려오는 철제 블라인드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세상과 실내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단절시키는 것 같았다. (물론 독일은 유럽 내에서도 치안이 좋은 편이며 총기 소지가 불법이지만) 만약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누군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거나 총소리가 퍼지면 과연 철제 블라인드 안에 숨은 동네 사람들이 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철제 블라인드로 가려진 창문을 볼 때마다 공사가 분명하고 속마음을 잘 안 내비치는 독일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창문 안쪽으로 커튼이나 가벼운 블라인드를 설치하는 것이 대부분인 한국의 창문과 너무나도 대조되는 독일의 창문. 바깥에서 창문을 막아버리는 무거운 철제 블라인드. 나는 이 낯선 것이 가져다주는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혼자 끙끙거리면서 한두 달을 보내다가 용기를 내서 독일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생각과 느낌을 듣던 친구는 한참을 웃었다. 외국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면서 말이다. 우선 철제 블라인드는 ‘창문 가림막(Fenster Rolladen)’ 이라는 것으로 대부분의 독일 창문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창문가림막이 한국의 커튼이나 블라인드처럼 창문 안쪽에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창문 바깥쪽에 설치되어서 창문을 아예 안 보이게 막아버리는 이유는 빛과 열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빛과 열은 유리를 쉽게 통과하기 때문에 건축 단열의 측면에서 보면 창문 안쪽으로 설치하는 커튼과 블라인드는 큰 효과성이 없다. 이미 더운 열기 혹은 겨울철 찬 공기가 건물 안으로 들어온 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독일 사람들은 여름철이 되면 오히려 창문을 닫고 창문 가림막을 내린 뒤 실내에 머무르는 시원한 공기를 즐긴다. 이렇게 하면 선풍기가 없어도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겨울에도 비싼 난방열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면 창문 가림막은 필수다.

 

@신나희.  밖에서 본 창문 가림막이 내려진 모습  

 

당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드립니다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은 물론이고 인위적인 선풍기 바람도 싫어했던 나에게 독일친구의 조언은 그야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얼른 집으로 가서 창문 가림막을 내려 보았다. 벽에 붙어 있는 줄을 잡아당기니 덜커덕하며 창문 가림막이 내려왔다. 창문을 전체적으로 가린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을 더 잡아당겨 보니 가림막 사이사이에 난 작은 구멍들까지도 가려지며 빛이 완전하게 차단되었다. 형광등을 끄지 않았는데도 순간 방이 깜깜해졌다.

그 뒤로 나는 매일 밤이면 창문 가림막으로 창문을 덮어버렸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단열을 좀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리고 실제로 단열 차이를 느꼈다) 빛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잠을 더 깊이 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은 얼마나 많은 빛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가. 거의 평생을 서울 중심부에서 살았던 나는 어둠보다는 밝음, 즉 조명으로 인한 인위적인 빛에 익숙했고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대도시에서 빛은 끝없는 성장을 향해 전진하는 발전의 상징이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한국에 비하면 독일의 어두운 실내조명이 불만족스럽다. 그러나 점차 모든 공간이 불필요하게 밝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고 공감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어두운, 때로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방을 깜깜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습관적으로 손에서 놓지 못하던 노트북 모니터와 스마트폰의 조명에서 나를 최대한 분리하기 시작했다. 빛을 통해 세상과 타자를 인식했다면 어둠을 통해 자아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또한 창문 가림막을 내리고 방에 불을 켜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공사구분이 중요한 만큼 사생활 보호가 중요한 독일에서는 창문가림막이 필수다. 커튼이나 블라인드의 경우 경우에 따라 창문 너머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지만 창문 가림막의 경우는 거의 완전하게 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절대로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남의 시선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로서는 때때로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에도 신경을 쓰게 되는데, 창문 가림막은 이런 시선으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자유롭게 해주었다.

 

나가면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낯설고 이상해 보이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쉽게 새로운 것에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내게는 모기장도 없이 빛과 열을 완전히 차단하는 독일 창문이 그러했다. 독일 생활 첫 달 마음속으로 독일 창문을 얼마나 욕했는지! 그러나 점차 이것이 얼마나 내가 적응해나가야 하는 새로운 세상에 적합하게 고안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급되고 관리되는 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낯선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즐거움과 일종의 깨달음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그리고 점차 무뎌진다고 하지만 여전히 타지인의 시선에서는 많은 것이 아직 신기하다. 이제 독일도 낮이 길어지고 공기가 따스해지기 시작했다. 창문 가림막을 걷고 타지인의 시선에서 더 많은 낯선 것들을 맞이해야겠다.

@신나희.  딱딱한 철제가 아니라 목재로 창문 모양대로 가림막을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