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8일,
독일 만하임에서 (신나희)
들어가며
한 도시에서 반년을 살다보니 동네 맛집을 제법 알게 되었다. 그 중 제일은 단돈 1 유로에 이탈리아 현지 젤라또 보다 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는 ‘시대정신(Zeitgeist)’라는 곳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우리의 ‘시대정신’이 1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총 3개월간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지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이스크림 가게만이 아니었다. 친구들로부터 동네 구석구석에 위치했던 음식점들 몇 개가 겨울 내내 영업을 정지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평생 서울에서 살았던 나로서는 너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사람들 돈 벌려고 장사하는 것 아니었나?
[그림 1] 동네 몇 군데 음식점의 표지판 (번역: “사랑하는 고객님들께 감사드리며 2018년 봄까지 ‘안녕히 계세요’ 인사
를 드립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계시고 새로운 해에 다시 만나요!”
@신나희
문제는 월세가 아니라 인건비야, 바보야!
아무리 사람들이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덜 사먹는다고 해도 3개월간 아예 문을 닫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닐까? 겨울철만 업종을 변경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현지 친구들이 말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겨울철 장사가 안 되는 경우에도 인건비가 계속 나가면 손해가 커지기 때문에 아예 가게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일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지불해야 하는 총 비용 중 직원에 대한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월세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겨울과 같은 계절적 불경기에는 월세만 매몰비용으로 지불해버리고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월세를 계속 내면서 장사를 안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모든 판단의 기준이 여전히 한국사회에 머물러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설명이었다. 한국에서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장님들이 높은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서라도 영업시간을 늘린다. 그 비싼 월세를 주는데 겨울 내내 장사를 안 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화장품 로드샵, 카페, 음식점, PC방과 같이 동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영세사업장에서는 법정 최저시급으로만 직원 인건비를 유지하고 (때로는 그마저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영업시간을 늘려서 수입을 최대화하는데, 사실 이마저도 월세를 충당하기에도 바쁜 것이 현실이다.
반면 독일에서는 사람이 행하는 노동에 대한 비용이 꽤 세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노동은 특별히 고급지식이나 기술을 요하는 노동이 아니다. 요리와 서빙, 배송, 세탁, 수선 등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기술을 요하는 노동에 대한 비용이 한국에 비해 확연히 높다. 비록 정확한 통계수치는 아니지만 나 역시도 독일의 인건비가 비싸다는 것은 생활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독일은 ‘무료배송’을 찾아보기 힘들다. 배달되는 물건의 중량을 떠나 일단 사람이 배송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에 상응하는 인건비가 덧붙여진다. 미용실에서 커트를 하는 경우에도 직원이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나 말려주는 것은 모두 별도의 서비스로서 추가비용이 든다. 옷을 수선하거나 세탁을 하는 경우에도 서비스 하나하나가 모두 추가비용을 내야만 받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열쇠를 복사하는 것도 한국과 비교해서 최소 5배 이상 비싸다. 공식적이지는 않아도 식당에서는 서빙에 대한 팁을 별도로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 역시 배송비가 두려워 대중교통을 타고 무거운 짐을 혼자 나른 적이 많았고 미용실에서도 스스로 머리를 말렸다. 겨울 패딩의 지퍼가 고장났을 때는 독일에서 수선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차라리 이 옷을 한국에 가져가서 고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정도니까.
그럼 우리는 노동에 얼만큼의 가치를 두고 있는 걸까?
그러나 여기서 잠깐! 이를 고용주나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인건비가 아니라 노동자가 받는 인건비의 개념으로 생각해본다면 독일 사회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인건비 책정은 관련 시장의 구조적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국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철학, 즉 노동의 대가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 맥락 속에서 보았을 때 한국 사회는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노동의 가치가 크게 존중받는 곳은 아니다.
의학이나 법학과 같은 고급 기술을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단순할지라도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일상 속 ‘사람의 노동’에 대해서는 부수적이거나 혹은 당연한 것으로 가치를 절하시킨다. 일상적 노동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두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로서 최저임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국가별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한다는 조건 하에 몇 시간을 일해야 빅맥 하나를 구매할 수 있는지 비교해서 나타내고 있다 (2013년 자료임을 고려했을 때 현재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42분 일해야 빅맥을 살 수 있는데, 이는 같은 아시아권이면서 경제규모나 복지수준 등에서 비슷한 국가군으로 묶이는 일본(31분)이나 홍콩(30분)보다도 긴 시간을 일해야 함을 나타낸다. 서유럽(프랑스 22분, 영국 23분)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일해야 하는 셈이다.
[그림 2] 최저임금을 받고 얼마나 일해야 햄버거 하나를 먹을 수 있을까?

@신나희
한국인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분명 독일에서는 기술의 희소성 여부를 떠나 사람이 하는 크고 작은 일, 즉 일상 속 노동에 대한 부가가치 창출에 비교적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한국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혹은 공짜로 구매할 수 있었던 다양하고 질 높은 서비스가 여기에서는 추가비용을 내야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혹여나 내가 한국에서 타인에 대해 노동착취를 했던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보고 있다.
나가면서
지난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임시적으로 문을 닫았던 우리의 아이스크림 가게, ‘시대정신’이 다시 문을 열었다. 검정색 유니폼을 입은 알바생 세 명이 분주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며 나는 독일의 한식당에서 일하는 한국인 친구가 내게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녀는 독일에서 일하는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같은 서빙을 해도 독일에서 일하는 것이 시급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단순한 ‘알바’가 아닌 ‘직업’으로서 일하는 느낌을 가지게 해준다고 말이다. 사람이 하는 노동에 대한 높은 가치 부여는 단순히 임금노동자의 ‘명목임금’에만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가보다.
그리고 이제 독일은 유럽 내에서도 선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연구와 각종 실험으로 또다른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사람에 대한, 그리고 사람이 하는 노동에 대한 한국의 시대정신은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림 ] “03.03일부터 다시 찾아갑니다” 라고 써놓은 아이스크림 가게

@신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