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Basic Income News에 실린 오피니언 기사 “UBI’s Impact on Work Culture: Not a Question for the Experimenters”(2018년 2월 4일)를 완역한 것이다. 기사 작성자는 케이트 맥팔랜드(Kate McFarland)이다. 이 기사는 Creative Commons license CC BY NC SA 라이선스에 따라 출판되었다.
Kate McFarland (2018). “UBI’s Impact on Work Culture: Not a Question for the Experimenters”. Basic Income News. (4 February)
작성자: Kate McFarland
번역: 이건민
기본소득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러한 정책이 노동 중심의 문화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으로의 진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추측에 기인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노동 관련 태도들과 행동들에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인지(또는 미치지 않을 것인지)를 둘러싼 열려 있는, 실증적인 질문들이 많이 있다.
누군가는 현재진행중이거나 앞으로 계획된 실험들이 이 주제를 해결하는 데 약간의 실마리를 던져 주리라고 희망할지 모른다. 이 글에서 나는 그러할 것 같지 않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이 노동 관련 태도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실험을 통해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 관점 정하기: 노동 문화에 대한 반대
내가 2015년에 무심코 기본소득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내가 그해 11월 Basic Income News를 위해 일하기로 자원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운시프팅1)과 같은 생활양식, 그리고 내가 반경력주의(anti-careerism)(한 사람의 생애가 경력의 경로에 따라 조직되고 정의되어야만 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한 거부)라고 부르는 것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수단으로서 그 정책에 잠정적으로 끌렸다.
그 당시에 나는 기본소득운동이 실험에 대해 관심을 싹틔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핀란드의 중도우파 연방정부가 기본소득 실험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향을 표명하려는 참이었다는 것, 혹은 온타리오(Ontario) 주 정부 역시 보장최저소득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고자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자원봉사를 시작하자마자 곧 발생한 실험들과 파일럿 조사들에 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의 급증을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어났으며, 따라서 Basic Income News의 필자로서, 나는 현재의 기본소득 실행 실험들을 다루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헌신했다. 뿐만 아니라, “사실만을 작성하는” 뉴스 기자로서, 나 스스로의 개인적 의혹(불안감)이 언뜻언뜻 드러나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그것들을 보도하는 것이 나의 의무였다(기명 논평에서 나의 회의적인 태도를 누설할 기회를 갖기는 했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내가 기본소득 실험들에 대한 진심 어리고도 우호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고 자주 오해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나의 주요 관심은 여전히 그 정책이 다운시프팅, 반경력주의, 그리고 무급노동을 위한 보조금으로서 작동할지 모르며, 그럼으로써 사회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파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추측이었다. 기본소득에 관한 그러한 “반노동”(anti-work) 접근법이 상당히 논쟁적이긴 하지만, 나는 이 글 전체에 걸쳐 이러한 관점을 가정할 것이다. (그것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글을 읽고 나서 내 주장에 동조하여 그것을 수용하거나, 아니면 글 읽기를 멈출지 모른다.)
기본소득에 대한 그러한 접근법은 검증되지 않은 실증적인 추측들에 의존한다. 하지만 사실상 많은 질문들이 여전히 열린 채로 남아있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사회에 사는 개인들은 일자리의 역할과 중요성에 관한 다른 견해들을 갖게 될 것인가? 그들은 직업 또는 경력을 자기정체성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데 실패할 것인가? 그들은 높은 봉급 또는 직업상의 입신(출세)이 개인의 성공에 본질적임을 부인할 것인가? 그들은 유급노동 밖에서 발생하는 자기계발과 사회적 기여들에 더 큰 가치를 돌릴 것인가? 그들은 전문가화(professionalization)와 취직능력(employability)에 기여하는 활동들을 넘어 그들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여기고 있는 활동들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을 것인가? 기본소득은 실제 어느 정도로 사람들이 전일제 또는 연속적인 일자리들 없이 삶을 이끌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들이 더 적은 시간 동안 일하도록 권한(자율권)을 주는 데 충분할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나가도록 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어떠한 옹호자들은 기본소득이 유급노동보다 열정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회로 안내할 것임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그러한 낙관적인 예측들은 노동 문화가 깊숙이, 단단히 자리 잡힌 현실에 의해 완화될 것이 틀림없다. 비판가들이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할 때, 그러한 레토릭 배후에 있는 규범적 가정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안전한 전일제 일자리들과 경력들은 여전히 그것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정체성과 자기가치에, 그리고 그것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목표와 열망에 핵심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나의 견해에서) 훨씬 더 불안하게도, 많은 지지자들은 기본소득이 더 낮은 고용률을 낳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실업 상태에 있는 개인들이 만약 그들의 급여가 무조건적인 것으로 된다면 일하는 것을 더 많이 받아들일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하여 주로 설계된, 핀란드 실험의 배후에 놓인 가설과 같이) 심지어 노동 노력을 증가시킬지 모른다고 열렬히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유급노동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풍(ethos)에 대해 문제 삼지 않고서, 그것이 사업을 위한 자극제로서 기능할 것이며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기본소득이 노동 관련 태도들과 행동들에 미치는 장기 효과들을 그야말로 모른다. 대답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실증적인 질문들을 고려해볼 때, 누군가는 내가 Basic Income News에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일어났던 실험들의 예기치 않은 맹습을 목격하는 데 고무되었으리라 추측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불행히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실험들은 “반노동” 시각에서 기본소득에 접근하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실증적인 관심사들에 관해 통찰을 주지 못할 것 같다.
2. 실험들이 가진 다섯 가지 한계들
나는 기본소득이 노동 관련 행동과 태도에 엄청난 전환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함을 믿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장기적인, 사회 전반적인 과정들을 통해서 발생할 것 같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실험들은 필연적으로 (1) 기간 상의 제한이 있으며, (2)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인구의 일부 하위집단에 국한된다.
그리고 실험들은 또 다른 결점들을 지닌다. 예를 들어, 그것들은 (3) 실험 대상자들이 참여 결과 재정적으로 더 열악해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설계되어야만 하는데, 반면에 “현실세계”에서의 보편적 기본소득은 거의 틀림없이 일부 개인들을 순부담자로 만드는 재원 조달 기제와 나란히 도입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실험들이 설계된 바와 같이, 목표 모집단들(target populations)은 (4) 저소득 개인들, 실업자들, 그리고/또는 복지 수급자들로 구성되며, 또한 (5) 현재 사회, 그리고 노동과 소비를 중시하는 기풍에 이미 성공적으로 동화된 성인들로 주로 구성된다.
2.1. 실험들은 기간 상으로 제한된다.
현재 기본소득 관련 실험들의 대부분은 2년 또는 3년간 진행된다. 미국에서는, 비영리단체 YC Research가 일부 참가자들은 5년간 현금이전소득을 지급받는 실험을 착수하기로 계획하고 있다. 이보다 기간이 더 긴 유일한 프로젝트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GiveDirectly는 케냐에서의 주요한 실험에서 40마을에 12년간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으며, 브라질의 비영리단체 ReCivitas는 Quatinga Velho 마을에서 “평생 기본소득”(lifetime basic income)을 도입했다(후자는 과학적 의미에서의 “실험”이 아님에 주목하라). 더 긴 기간의 실험들이 부담가능하다 하더라도, 결과들을 얻기 위한 압력은 일반적으로 그것들을 방해할 것이다.
실험들의 단기적 속성은 이 글에서의 관심사에 관하여 적어도 두 가지의 주요한 결점들을 제기한다.
첫째, 제한된 기간 동안의 지급은 재정적으로 위험한 행동(예를 들어, 일자리나 경력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에 대한 경제적 유인을 저해시킨다. 우리는 만약 사람들이 단지 2~3년 동안만 보장된, 무조건적인 현금급여를 받는다면 소수의 개인들만이 그들의 노동과 삶을 발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선택을 하리라고 예상할 것이다. 일자리에서 2~3년의 공백은 이전 일자리 또는 경력으로 복귀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일반적인 미래 전망들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
둘째, 일부 참가자들이 실험의 단기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노동시장 참가를 정말로 발본적으로 변화시킨다고 가정해보자(예를 들어, 그들은 실험의 기간이 그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시간제 또는 프리랜서 일자리로 정착하는 것을 허용하기에 충분히 길다는 확신을 갖고, 수익성이 좋은 전일제 일자리로부터의 다운시프팅 과정 동안 그 돈을 재정안전성을 제공하는 데 사용할지 모른다). 사회 전반적이고 영구적인 기본소득 하에서, 그러한 “선도자들”은 또한 다운시프팅과 그러한 대안적인 기타 생활양식들이 현실에서 많아지고 동의를 얻으면서, 그리고 일종의 파급효과를 착수시키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전일제의 영구적 일자리라는 규범에 대한 대안들을 추구하도록 고무할지 모른다. 하지만 2~3년의 실험은 노동에 대한 사회적 태도들에 관한, 더 천천히 누적되는 이러한 효과들을 관찰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일 것 같지 않다.
달리 말해보자. 기본소득은 일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더 적은 노동소득을 수용하거나,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심지어 일하기를 완전히 멈추는 것을 가능하게 할지 모른다(예를 들어, 의료서비스(healthcare)와 같은 급여들이 전일제 일자리에 의존하지 않는 미국 밖의 많은 국가들에서 특히나 그러하다). 예를 들어, 그것은 이미 그러한 생활양식(예컨대 다운시프팅)을 채택하기를 열망해왔던 사람들을 해방시킬지 모르지만, 이는 안정적인 재정안전망의 결여에 의해, 오직 그것에 의해서만 억제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운시프터(downshifter)가 되려고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머뭇거릴지 모른다. 후자의 집단은 예를 들어 재정적 불안(감)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주변화(social marginalization)의 공포에 의해서도 망설였던 사람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운시프팅의 유행과 가시성의 증가는 그러한 생활양식의 사회적 수용을 높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낙인찍기를 줄이고 다운시프팅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된다(그것은 더 나아가 다운시프팅의 가시성과 사회적 수용을 증가시킬 것이고, 이러한 선순환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순수하게 추측적이다. 기본소득이 다운시프터의 수와 가시성에서의 증가를 낳는다 할지라도(그것 자체도 불확실하다), 이는 사회적 수용을 초래하지 않을지 모르며 “기생”(parasitism)과 더 나아가 낙인찍기에 관한 성난 불평들을 야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의 요점은 바로 실험들이 어떠한 결과가 발생할지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기본소득이 노동을 향한 사회적 태도들에 미치는 영향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개될지 모른다. 아마도 아동들과 10대들은 만약 그들이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자라난다면 물질 주도의 열망들을 덜 발전시킬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일, 기타 프로젝트들, 추구하는 활동들을 선택할 때 화폐적 고려에는 가중치를 덜 부여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누군가가 유급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내면화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노동과 소득을 독립적인 것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그저 직관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아마도 결국 그들은 예를 들어 노동이 세계에 가져오는 좋은 점과 그것이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만족과 같은, 소득 이외의 면에서 노동의 가치를 이해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는 규범이 정반대인 견해들이 보편적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견해들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중 어떠한 것도 틀림없이 확신할 수는 없으며, 실험들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2.2. 실험들은 범위 상으로 “보편적이지” 않다.
내가 다른 곳에서 썼던 바와 같이, “만약 당신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보다 더 큰 질문은 “만약 모두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이다. 전일제 노동자들의 사회에서 재정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한 개인이 선택할 바는 모두가 일자리 없이도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사회에서 재정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동일한 개인이 택할 바와 반드시 같지는 않다.
실험들은 통제집단을 필요로 한다. 이는 진정으로 보편적인 기본소득의 실험 조사(experimental test)를 효과적으로 가로막는다. 이제 틀림없이 일부 실험들은 진정으로 설계상에서 보편성을 포함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를 들어, GiveDirectly의 실험에서 실험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마을 전체이다. 이러한 주요 조사에서, 처치집단들은 그 안에 사는 모든 개인들이 무조건적 현금이전(unconditional cash transfer; UCT)을 받는 각각의 공동체들이다. 마디아 프라데시(Madhya Pradesh)라는 인도의 한 주에서 실시된 이전의 실험 역시 몇몇 마을들에는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이와 유사한 다른 마을들은 통제집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심지어 선진국에서의 선례도 있다. 1970년대 매니토바(Manitoba) 주에서 수행된 NIT 실험으로서, 지금껏 활발히 논의된 실험인 “민컴”(Mincome) 실험은 도핀(Dauphin) 시를 포화장소(saturation sites)2)로 이용했는데, 도핀 시의 모든 거주민들은 1974년부터 실험 종료 시점인 1979년까지 최저소득을 무조건적으로 보장받았다.
하지만 현재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실험도 포화장소의 활용을 포함하지 않는다(온타리오 주 파일럿 조사의 고문인 휴 시걸(Hugh Segal)이 최초에 그것을 권고하긴 했지만 말이다). 핀란드에서 실험집단은 이전에 연방 실업급여를 받은 적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무작위 표본추출로 뽑힌 2,000명의 개인으로 구성된다. 이와 유사하게, 네덜란드 지방정부의 실험들에서 참가자들은 해당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현재의 복지 수급자들로부터 무작위로 선정되었으며, 바르셀로나의 실험은 그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근린지역들 중 하나에 거주하는 복지 수급자들의 층화표본(stratified sample)을 참여시켰다. 온타리오 주에서, 실험집단들은 자기선택(self-selected) 지원자들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될 것인데, 여기서 수급자격을 갖춘 지원자들은 그 주의 특정한 세 지역들로부터의 저소득 개인들로 제한된다. 또한 YC Research는 실험을 미국의 두 지역들에서 소득이 낮은 젊은 성인들을 목표 모집단으로 삼는 무작위 통제 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으로 설계했다. (이 실험들의 설계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알고자 한다면 다음의 요약을 보라.)
설계에 대한 이러한 결정들이 낳는 귀결은 위에서 언급한 모든 실험들이 사회적 승수효과3)를 포착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는 점이다. 최저소득실험들의 맥락에서 사회적 승수효과의 사례로, 도핀 시로부터 가장 눈에 띄는 결과들 중 하나인 고등학교 졸업률 증가를 고려해보자. 작년에 나는 그 실험의 분석을 책임진 학자인 에블린 포르제(Evelyn Forget)의 말을 들었는데, 거기서 그녀는 학교에 남아있기로 한 도핀 시 10대들의 결정들이 그들 가족들의 재정안전성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그들의 동료들이 학교에 머무를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음을 밝혔던 설문조사 데이터에 관해 말하였다.
우리는 노동 관련 행동은 또한 사회적 승수효과에 민감할 수 있다고 예상할 것이다. 학교에 머무르기로 한 10대들의 결정들처럼, 전일제 일자리로부터 물러나는 성인들의 결정들은 그들의 재정상황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료들의 행동들에 의존할지 모른다. 소극적 소득4)을 소득원천으로 가진 한 개인은 재정적으로 일자리를 그만둘 수 있을지 모르며,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을 욕망할지 모르는데, 하지만 그렇더라도, 만약 그 사람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일자리에 머무른다면(그리고 그 사람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일자리에 머무르기 때문에) 여전히 고용되어 있기를 선택할지 모른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은 만약 자신의 동료들이 전일제 일자리에 남아있는 동안 자신은 일자리에서 빠져나온다면 스스로 사회적으로 고립될 것이라고 믿을지 모른다. 그 사람은 평일 오후 5시 이전에 시간 여유가 있는 친구들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며, 또는 여전히 직장에서의 수입이 높은 친구들과 비싸게 음식을 먹거나, 오락을 즐기거나, 기타 활동들을 계속 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충분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지 모른다. 그 사람은 만약 자신이 동료집단 내에서 전통적인 일자리를 포기한 유일한 사람이 된다면, 동정이나 이해를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외면(배척)받는다고 두려워할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기본소득의 잠재적 영향은 이미 다운시프팅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해방에 국한되지 않는다. 또 다른 가능성은 사회적 승수효과를 통해서 기본소득이 이전에는 이러한 선택지를 고려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욕망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태도들과 열망들은 또한 사적인 상황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생활양식들을 선택하는지에 관한 우리의 관찰들, 그리고 무엇이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가에 대한 우리의 지각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현재 다운시프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생활양식이 정당화되거나 대중화되는 사회적 또는 문화적 변화들에 직면하여 그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킬지 모른다.
포화장소들을 가진 실험들조차 이러한 잠재적인 효과들 전부에 관한, 즉 지역 규모를 엄청나게 넘어서는 노동 관련 태도들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힘들에 관한 평가를 허용하기에는 불충분할 것이다.
2.3. 실험들은 순기여자들을 배제한다.
“현실세계” 기본소득은 그 프로그램의 재원 조달에 도움이 되고자 거의 확실히 세금 인상과 함께 도입될 것인데, 그것은 상위 소득자들에 대한 더 높은 소득세를 포함할 것 같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일부 참가자들이 실험 결과 경제적으로 더 열악해지도록 하는 조치들을 윤리적으로 도입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세금 인상은 실험(experimental trials)의 일부가 될 수 없다. 이는 완전한 정책패키지가 노동 관련 행동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조사하는 능력을 제한한다.
첫째로, 지위재5) 수요 억제에 더 큰 잠재력을 가지는 것은 기본소득 그 자체라기보다는 불평등의 감소, 즉 재분배이다.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한 노동자는 만약 사회적 관계들의 유지가 비싼 음식, 음료, 오락, 또는 호화 휴가에 참여하는 것을 요구한다면 다운시프팅을 주저할지 모른다. 불평등도가 높은 사회에서, 단지 기본소득만으로는 지위재 수요를 줄이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르는데, 다운시프팅을 하거나 생계소득을 벌기 위한 유급노동에서 빠져나오는 유혹을 제한하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좋은 옷을 입고, 새 차를 타고, 사회에서 진지하게 여기는 부유한 근린지역에서 생활할 필요를 계속해서 느낄지 모르며, 따라서 기본소득의 도입에 의해 열린 가능성들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여가보다는 더 많은 노동소득을 계속해서 선호할지 모른다. 역으로, 누군가가 지출과 소비에 의존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인식하는 것이 덜할수록, 그 누군가는 더 많은 노동소득을 더 많은 여가시간으로 교환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예를 들어 자산과 소득에 대한 누진세와 같은, 재정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들은 다운시프팅을 위한 이러한 장벽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추잡한 부자”가 되는 가능성을 좌절시키는 정책들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재정적 이익을 위해 주로 자신의 전망들에 기초하여 일자리들과 경력들을 선택하고 싶어 했을 사람들을 낙담시킬지 모른다. 충분히 높은 소득세는 노동을 선택하는 데 화폐적 유인이 갖는 역할을 줄일 수 있다. 자산 취득에 대한 제약들은 폭리획득자를 지망하는 일부 사람들을 대신에 그들이 비화폐적으로 보람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노동을 찾게끔 밀어붙일지 모른다.
그러한 효과들은 노동 관련 태도들과 행동을 전환시킬 수 있는 “기본소득+세제개혁” 패키지의 가능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험들은 틀림없이 그것들을 놓칠 것이다.
2.4. 기존의 실험들은 저소득 인구집단들로 제한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기본소득 실험들에 해당되는 한계들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는 단지 실험들이 갖는 속성 때문이었다. 이제는 현재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험들을 제약하는 조건적인(contingent) 설계 결정에 초점을 맞춰보자.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각각의 실험에서 목표 모집단은 오직 저소득 개인들, 그리고/또는 사회부조나 실업급여나 기타 급여를 받는 개인들, 또는 소득이 특정 수준 아래인 개인들만을 포함한다.
공정하게 말하면, 기존의 실험들 중 어떤 것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다. “기본소득은 다운시프팅을 위한 보조금을 제공할 수 있는가?” 또는 “기본소득은 전일제 일자리 밖에 있는 생활양식들의 수용과 바람직성을 촉진할 것인가?”. 그와는 반대로, 대부분은 무조건적 현금이전이 빈곤 또는 실업에 대처하는 데 기존의 프로그램들보다 더 효과적일 것인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열망에 의해 동기부여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목표 모집단들에 대한 이러한 선택들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들은 그 실험들을 유급노동의 감소를 용이하게 하는 기본소득의 능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질문들에는 덜 알맞게끔 만든다.
다운시프팅을 조성하기 위한 어떠한 정책의 잠재력에 대한 조사는 오직 실험 참가자들이 다운시프팅을 하기 위한 잠재력을 가진 모집단의 사람들로부터 추출되는 경우에만 타당하며, “다운시프팅”은 전형적으로 상당히 보수가 높은 지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온다는 것을 함의한다. 따라서 우리의 주요 관심사들을 다루는 실험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목표 모집단은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일자리들에서 현재 고용된 개인들을 포괄해야만 한다. 실업자로 제한된 실험은 노동시간의 자발적 감소를 촉진하기 위한 기본소득 정책의 능력에 대해서 말해주는 바가 거의 없을 것이다. 빈곤층에게로 제한된 실험은 노동소득과 소비의 자발적 감소를 촉진하는 기본소득 정책의 능력에 대해서 말해주는 바가 거의 없을 것이다.
실험 참가자 중에서 “성공한” 노동자들의 포함은 또한 기본소득이 공적 급여의 수급, 더 정확히는, 자발적인 “급여 타내기”(benefit scrounging)(본질적으로 그것은 내가 “다운시프팅에 보조금을 주기 위하여 기본소득을 이용하기”로 고상하게 묘사한 바에 대한, 그저 경멸적인 용어이다)와 연관된 낙인을 줄일 것인지 여부에 대한 질문과 관련하여 중요하다. 꽤 그럴듯하게도, “급여 타내기”는 어쨌든 너무도 강력해서 단기 실험 과정 동안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기본소득이 낙인을 줄이는 역할을 할 운명이라 하더라도, 가난하거나 실업 상태에 있는 개인들이 그들이 자발적으로 전일제 일자리들을 찾는 데에서 벗어나는 반면 정부 보조금들로 생활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는 거의 확실히 아닐 것이다. 불행히도, 그러한 결과는(그것이 아무리 바람직하다 하더라도) 현존하는 낙인들과 고정관념들에 맞서 싸운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더 강화할 것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서, 기본소득은 만약 그것이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일자리들과 유망한 경력 경로들에 있는 개인들, 즉 성공에 대한 종래의 이미지들을 체현한 사람들 사이에서 다운시프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더 크고 더 우호적인 문화적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사회는 수익성이 좋은 경력들을 갖춘 사람들에게 존중과 존경을 부여하는데, 만약 그들이 전통적인 일자리의 삶을 일축하고 그들의 기본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 돈에 의존하기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그러한 개인들을 호기심을 끌거나 심지어 동정심마저 유발하는 독특하게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 만든다(이는 그들 역시 경멸이나 또 다른 것들을 이끌어내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정컨대, 기본소득이 “급여 타내기”의 낙인을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의 요점은 단순히 기존 실험들은 이것이 얼마나 믿기지 않는지를 적절하게 밝힐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5. 실험 참가자들은 이미 노동 문화에 익숙한 “성년이 되었다.”
각각의 기존 실험들은 이미 지배적인 노동윤리에 동화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효과들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적, 문화적 효과들 중 일부는 더 젊은 세대들에 미치는 영향으로부터 생기리라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도 10대들은 만약 그들이 재정안전성에 대한 무조건적 보장 하에서 성년이 된다면 노동에 대한 다른 태도들을 내면화할 것이다. “어른들이 하는 일을 하며, 책임감 있는 어른의 특성에 맞게 행동하는 것”(adulting)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특징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일제 일자리를 찾는 것이 반드시 당연한 건 아니게 만들면서 말이다. 아마도 젊은 성인들은 만약 그들이 일자리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한 당면한 필요에 직면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개인적 목표들과 성공에 대한 이상들을 형성할 것이다.
Basic Income News의 지난 특집기사에서, 나는 노동에 독립적인 대학 장학금을 받고 성인기에 들어서는 것(그것은 5년간의 “기본소득”과 일부 공통점들을 공유한다)은 (유급)노동윤리에 대한 나 스스로의 거부를 굳히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예를 들어, 내가 유급노동에 대한 걱정 없이 학업에 계속해서 전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무급의 활동이 그 활동이 가치 없거나, 보람 없거나, 힘들지 않다는 것을, 또는 그것이 누군가의 시간을 최선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함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배우게 하는 데”(prevent me from unlearning) 도움을 줄지 모른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것은 실험들이 정책의 다세대 효과들을 포착하기 위한 기간 면에서 너무 제한적이라는 점을 그저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리상으로 누군가는 예를 들어 대학교 진학을 위해 집에서 떠나거나 대학교에서 “현실세계”(즉, 대개는 직업이나 어떤 것에 대한 탐색)로 떠나는 것과 같은, 대단히 중요한 이행 단계들에 속한 젊은 성인들의 코호트를 대상으로 보장소득의 효과들을 검토하기 위한 단기 조사를 설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실험들은 이렇지 않다.
3. 맺음말
이제 끝으로 나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실험들은 기본소득이 유급노동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의 문화 변화를 촉진할 것인지의 여부, 또는 어느 정도로 그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거의 던져주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본소득이 그러한 효과를 갖지 않을 것이라는 어떠한 분명한 증거(예를 들어, 노동시장 참가 또는 노동을 향한 자가보고(self-reported) 태도들에서의 관측된 변화의 결여)도 실험설계상의 한계들로 인한 인공물로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틀림없이, 실험들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노동시장 참가 면에서의 상당한 감소를 거의 보여주지 않을 것 같다는 데 (그리고 아직까지 여러 이유들로 인해 그것이 결정적이지 않다는 데) 있지 않으며, 그 대신에 그 정책의 지지자들 중 다수가 그것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요즘 자주 발생하는 바와 같이 기본소득의 헌신적인 지지자들이 더 많은 실험들을 요구할 때, 그들은 그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지 여부에 대해 그들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미 그 정책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희망하는 바는 실험들이 의심 많은 정책결정자들의 공포들(예를 들어 기본소득이 노동시장 참여의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아주 흔한 “공포”와 같은)을 가라앉히는 결과들을 산출하는 것일 테다. 많은 지지자들이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바처럼, 이전의 실험들은 노동시장 참가에서의 뚜렷한 감소를 보이지 않았으며, 단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일부 인구집단들(예를 들어, 학령층의 10대들 또는 어린 아동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에서만 감소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기본소득 실험들을 향한 이러한 태도는 유급노동에 대한 사회의 과대평가를 단지 되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실험들을 “실패” 또는 “성공”으로 평가하는 정책결정자들은 현재 상태의 규범들과 가치들에 비교하여 그렇게 할 것이다. 정치적 발언들과 매체의 보도들은 노동시장 참가 면에서 관측된 어떠한 감소도 그 정책이 실패했다는 증거로 묘사할 것인데, 이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미국의 몇몇 도시들에서 NIT 실험이 이루어졌을 때 일어났던 바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운동에 대한 2년간의 치열한 저술에 기반을 둔 나의 인상은 많은 지지자들이 이를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태의 규범들과 가치들에 비교할 때 “성공적인” 결과들을 사실상 산출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실험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흥미롭거나 유용한 결과들을 낳을 것 같지 않다는 것에 더하여, 기본소득 실험들은 또한 옹호자들과 기타 독자들의 마음에 이러한 규범들과 가치들을 강화할 위협이 있을지 모른다. 또한 노동 문화에 대한 비판자로서의 입장에서, 이것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이 기명 논평(Op-Ed)에서 표명된 견해들은 오로지 저자 자신의 의견이며, Basic Income News 또는 BIEN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BIEN과 Basic Income News는 어떠한 특정한 정책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지만, Basic Income News는 기명 논평(Op-Ed) 섹션에서의 모든 관점들에 대한 토론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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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주 : 돈은 적게 벌고 스트레스는 덜 받는 생활방식. 네이버 영어사전(http://endic.naver.com 참조
2) 역주: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의미
3) 역주: 특정한 사회적 외부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로, 어떠한 속성 면에서 높은 수준을 보이는 동료들이 다른 개인에게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음을 나타냄. https://en.wikipedia.org/wiki/Social_multiplier_effect 참조
4) 역주: 불로소득을 의미
5) 역주: 재화의 총 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에 의해서만 가치를 갖는 재화. 절대량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한 상대적인 지위나 위치가 중요한 재화. https://en.wikipedia.org/wiki/Positional_good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