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8일 만하임에서 (신나희)
들어가며
아주 어릴 적, 동네 금은방에서 귀를 뚫었다. 그리고 금침으로 된 작은 귀걸이를 구입해서 바로 착용했다. 며칠이었는지 몇 주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귀를 뚫은 후 상처가 예쁘게 아물기를 바라며 매일매일 소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입학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귀를 뚫고 그렇게 생긴 상처 구멍에 귀걸이를 거는 행위가 자유의 상징이자 투쟁의 결과였다. 왜냐면 당시 귀걸이는 부모님의 동의가 없이 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금지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머리가 커지면서 부모님의 동의하에, 혹은 동의 없이 자행하는 자율의 반경을 점점 넓혀나갔다. 고등학교 수련회에서 몰래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장난삼아 담배를 한 대 물어봤다. 사실상 강제였던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빼먹고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태극전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학교 담벼락을 넘었고, 혼자 미용실에 가서 탈색 후 빨강으로 머리를 물들여봤다. 이제 서른이 넘은 나에게 남은 또 다른 금단의 영역은 바로 문신(타투)이다. 한번 새기면 되돌릴 수 없다는 큰 단점도 있지만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특별한 상징이나 독특한 레터링으로 자신의 몸에 새긴다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모두가 비슷한 스타일로 옷을 입고 머리모양을 만질 때 내 몸 어느 곳엔가 새겨질 타투가 얼마나 나를 개성 있게 만들어줄까? 나는 한동안 예쁜 타투도안을 찾아다니고 어디에 무엇을 새겨야 가장 오랫동안 후회 없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비록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이 없는 상상이자 계획이었지만 말이다.
타투, 피부에 새겨지는 고유한 예술
내가 처음 독일에 와서 놀랐던 것 하나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두 개씩 타투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한국에 비해 유럽은 타투 자체에 대한 사회적 관용도가 높은 편이다. 독일에서 내가 본 타투는 마치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액세서리와 같았다. 모범생도 종아리에 형형색색의 꽃 타투를 했고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도 셔츠를 걷어 올리면 팔에 한두 개씩은 크고 작은 타투가 있으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현란한 타투가 목덜미에 하나씩 있을 정도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독일 통계에 따르면 성인 5명 중 1명꼴로 타투가 있고 젊은 세대 (18세-29세)는 그 비율이 조금 더 높다고 한다. 물론 독일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타투가 제한 없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직업군에서는 직장에서 타투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내규들이 있어서 타투를 가리는 방식으로 옷을 입거나 입사와 동시에 타투를 지우는 시술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일부 제한도 서서히 철폐되기 시작했으니, 바로 2018년 1월부터 베를린 주 소속 경찰들이 제복을 입은 상태에서도 타투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효된 것이다.
대중적인 만큼 독일에서는 타투에 대한 접근성도 매우 높은 편이다. 2018년 현재 베를린에서는 900개가 넘는 타투 스튜디오와 7,000명 이상의 타투이스트가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에 있는 타투학교 ESTP Berlin (Europäische Schule für Tattoo und Piercing)에서는 타투이스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년 약 40:1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와 창작활동에 열을 올린다. 타투이스트로 활동을 하려면 뛰어난 그림실력은 기본이기 때문에 입시과정에서 지원자들은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입학 이후 학교에서는 타투의 역사, 위생, 기계를 다루는 법, 스튜디오 관리와 운영법 등 이론과 실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학교를 졸업한 뒤 일반적으로 타투 스튜디오에서 1-2년간 인턴 생활을 거쳐 본격적인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타투이스트의 무늬는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저작권의 적용을 받는다. 베를린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신체라는 도화지에 예술이 꽃피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타투이스트는 예술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타투이스트는 시술 전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그 사람에게 맞는 패턴을 찾아주기 때문에 같은 도안이라도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다르게 입혀지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아무리 타투가 예술의 영역에 있다고 해도 침습적인 방법을 통한 것인데 전문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을까? 독일 친구들에게 물어본 결과 독일에서는 자격증(license/certificate) 체제로 타투이스트가 양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타투이스트가 될 수 있고, 다만 타투를 시술하는 스튜디오는 정기적으로 보건당국의 위생점검 대상이 된다고 한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는 개인이 일정 요건만 갖추면 타투 시술을 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거나 자격증 발급의 형태가 아닌 ‘행정적 허가’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최소 1년 이상의 도제식 교육을 통해 타투 기술과 위생, 안전에 대한 내용을 배운 뒤 시술을 할 수 있다. 물론 타투 업체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규정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도 타투이스트가 타투를 시술하기 전 지역 보건청에 신고해야 하고, 신고 시 최소 21시간의 위생·보건 교육 이수증을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앙 혹은 지방 정부가 타투 스튜디오에 대한 엄격한 위생관리를 하되 누구나 교육을 통하면 창조적 예술 활동을 하는 타투이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합법적 타투는 의사에게?
한국에서는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 의한 타투 시술을 불법이다. 1992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반영구 화장을 비롯한 각종 타투 시술은 의료행위로 분류돼 병원에서 의료인만 시술할 수 있다. 피부에 상처를 내고 염료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감염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의료법 제27조)에 의하면 타투 시술을 받은 사람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의사가 아닌 사람(예를 들어 타투이스트)이 시술을 하면 '무면허 의료행위'가 돼 형사처분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 같은 무면허 의료행위는 보건범죄단속법에 따라 2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고 여기에 1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벌금도 부과된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문신업 및 문신사 면허 신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중위생관리법 일부 개정안을 시작으로 18·19대 국회에서 '문신사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한국타투협회를 중심으로 몇 차례 헌법소원도 있었지만, 대법원은 1992년부터 위 판례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타투는 그간의 ‘반사회성의 상징’ 이미지를 벗기 시작한 지 오래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조폭의 상징’으로서 타투가 아니라 적극적인 개성의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과거에 사회 주류문화에 반항하는 가사로 노래하는 (주로 남성) 래퍼들에게서 타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공중파에서도 걸그룹 가수와 유명 배우들이 크고 작은 타투를 드러내고 있다. 가수 이효리를 보자. 팔에는 레터링, 어깨에는 만다라, 팔뚝에는 뱀, 손가락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미니타투 등이 수놓아져 있다.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도 요즘은 타투를 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별도의 화장을 안 해도 된다는 편리함 때문에 이미 한국에서도 보편화되고 있는 눈썹 문신과 아이라인 반영구 화장도 타투의 일종이다. 한국타투협회는 2017년 기준 반영구 화장 수요를 연간 600만 건, 관련 종사자 수를 20~3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보통 병원에서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입소문과 SNS 광고를 통해 알려진 피부관리실, 왁싱숍, 네일숍 등에서 시술이 이루어진다. 나 역시 친구들과 함께 피부관리숍에서 반영구 화장 시술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이것이 불법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타투의 경우 기본적인 위생 및 안전 관리 등은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에 굳이 병원을 가지 않고 내 얼굴에 잘 맞는 디자인을 찾아준다는 곳을 찾아갔을 뿐이었다. 사실 워낙 많은 지인이 성공적으로(?) 시술을 끝마치고 추천해준 곳이기 때문에 병원보다 오히려 믿음이 갔다. 몇몇 친구들은 일부러 유명 의원에 찾아갔지만 의사는 주의사항만 안내하고 시술은 다른 직원이 했다고 불평한 적도 있다. 정말로 타투를 전문적으로 시술하는 의사가 있는 걸까? 솔직히 내가 (생활인으로서) 의사라면 의료적 시술 이외 추가로 예술성을 요하는 타투에서 내 전문성을 찾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한국은 유럽과 같이 예술로서의 타투와 타투이스트의 양성, 그리고 이와 관련한 합법적 관리를 제도화하지 않는 것일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비의료인(전문 타투이스트)에 의한 타투시술 합법화에 찬성하고 있다. 온라인 설문조사 업체 두잇서베이가 2017년 7월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신 합법화에 '찬성'하는 사람의 비중은 65%로 '반대' 16%를 압도했다. 신체 일부에 새기는 문신이나 눈썹 문신 등 반영구 화장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힌 사람은 70%를 넘었고, 앞으로 문신을 해 볼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35%에 달했다1. 그런데도 25년 전에 마련된 법이 개정되지 않아서 타투이스트에 의한 타투 시술은 여전히 ‘불법 의료행위’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떤 한국 사람이 타투이스트로서의 꿈을 꿀 수 있을까?
한국에서 반영구 화장, 그리고 개성의 말살
유럽과 다른 한국의 타투문화는 법에 의한 비의료인의 시술을 금지하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타투이스트 양성의 부재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보편적인 타투는 나의 몸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는 화장법 – 일종의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미의 표준 – 에 맞춰 나의 타고난 생김새를 바꾸는 성격이 강하다는 데서 또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가 타투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은 유명 연예인들이 하듯 팔이나 허리, 발목 등에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새기는 의미 있는 타투가 아니라 한국에서 유행하는 미용 목적의 반영구 화장이었을 뿐이었다. 처음 내가 해봤던 반영구 문신은 일자 눈썹 반영구 화장이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스물 두 세 살쯤 되었던 것 같다. 화장을 못 하던 나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친구와 함께 비슷한 디자인의 눈썹 문신을 받고 집에 왔다. 지금이야 시간이 많이 흘러서 무뎌졌지만, 생김새가 다른 두 사람의 눈썹 모양이 똑같은 것을 보는 것이 당시에는 얼마나 웃겼는지. 마치 같은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한 사람들이 제법 비슷한 인상을 풍기듯이 반영구 문신을 한 사람들은 모두 다 눈썹이 비슷했다.
얼굴에서 풍기는 개인의 고유한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뒤로도 반영구 문신으로 새겨지는 눈썹 모양은 시대의 유행을 따라 조금씩 흐름을 달리해나갔다. 5-6년 전에는 일자 눈썹, 최근에는 다시 눈썹 산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 반영구 화장을 했다는 사람들의 눈썹 모양을 보면 문신을 언제 받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눈썹 하나 가지고 개성의 종말을 논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눈썹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할 정도로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각자의 인상에 맞춰서 눈썹을 다듬고 새롭게 그리기도 하는 것이 아니던가. 아무리 애초의 반영구 화장의 목적이 당시 유행하는 디자인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편리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감추는 방식으로 눈썹 혹은 아이라인 문신의 디자인이 결정되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볼 수 있었고 직접 했던 문신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몸에 대한 자율권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미의 기준에 편리하게 부합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종종 지적되는 개성의 종말은 비록 타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는 자신의 몸을 통해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비슷한 생활터와 비슷한 연령대는 서로가 비슷한 스타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일종의 사회적 압력이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겨울용 점퍼로 똑같은 색과 디자인의 패딩이 유행한다. 내가 중학교에 다녔던 때는 소위 떡볶이 코트가 유행이었고 요즘엔 특정 브랜드의 롱패딩이 유행이란다. 겨울철 하굣길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 가지 않을 정도이다. 유명 연예인이 특정 헤어스타일을 연출하면 20-30대 젊은이들은 최소 한 번씩은 미용실에 가서 그 헤어스타일을 모방한다. 그런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가끔 부정적인 의미에서 ‘독특한 사람’으로 표현되기 일쑤다. 이러한 모습이 외국인의 눈에도 보였던 모양이다. 두 달간 주한독일대사관에서 인턴 생활을 했던 내 독일 친구도 한국 사람들은 일정한 패션이나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느낀 한국 사람들은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이 검은 색 혹은 짙은 갈색으로 비슷한데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까지 비슷해서 굉장히 놀라웠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타투라는 일종의 예술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단일한 미의 기준에 모두를 맞춰버리는 반영구 화장기술의 일종으로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타투이스트에 의한 타투가 합법이었다면 조금 더 달라졌을까? 나는 달라졌을 것이라 본다. 의료인에 의한 타투 시술만이 합법이라고 규정하는 현재의 법은 타투이스트의 양성, 그리고 그들에 의한 타투의 예술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술로서의 타투를 실천하는 의료인을 배출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나가면서
방학을 맞아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아직 내가 넘지 못한 금단의 벽, 타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사는 만하임이라는 도시에도 타투 스튜디오가 꽤 많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나름 독일 전역에서도 유명한 타투이스트 몇몇이 만하임에서도 활동하는 모양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에 학교를 오가는 길에 스튜디오 밖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워서 직접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상담을 받아본 적은 없다. 지금은 만족스러워도 나중에 후회할지 모른다는 앞선 걱정 등이 여전히 나를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일단 연습 삼아 오른쪽 허벅지에 한 달 정도 지속된다는 헤나 타투를 받아봤다. 독일에서, 아니 한국에서 내가 좋아하는 타투이스트에게 합법적으로 타투를 받는 날도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