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暴炎)이었다. 매년 여름이 더워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되었지만 올해는 조금 정도가 지나쳤다. 이른 더위를 식혀줄만한 장마는 짧게 끝나버렸고 한낮의 기온이 섭씨 35-37도까지 올라가는 더위 때문에 한국이 아프리카보다 덥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07년 한국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뜨거운 여름이라고 한다1). 사실 한국을 포함한 북반구 전역이 폭염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고 독일의 남부도시, 내가 살고 있는 만하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한국 더위가 높은 습도 때문에 푹푹 찌는 더위라면 독일의 더위는 땀까지 말라버려 저녁이면 얼굴과 팔뚝 위에 붙은 소금결정이 만져지는 건조한 사막더위였다. 그리고 태양빛이 어찌나 강하던지 선글라스 없이 외출할 수가 없었다. 여름 내내 나는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팔과 다리에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뒤 최대한 그늘만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물을 마셨다.
독일에 처음 도착했던 작년 여름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국보다 낮은 습도 덕분에 독일의 더위가 견디기 쉽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서 아침부터 짜증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독일의 여름 역시도 그리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 여름나기가 힘든 첫 번째 이유는 아이스커피의 부재였다. ‘에이~ 뭘 그런 것을 가지고!’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커피 없이는 모든 두뇌활동이 굼뜰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커피 한잔의 위력을. 내가 진 빠지는 여름을 나는 방식 중 하나는 얼음을 잔뜩 넣어서 차가워진 아이스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는 것이다 (카페인에 민감하지 않다보니 하루에 서너 잔 정도는 거뜬하다). 그러나 독일은 집밖에서 얼음이 들어간 커피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 거의 모든 메뉴판의 ‘Kalte Getränke (찬 음료)’ 칸에는 맥주와 탄산음료만 가득하고 커피는 ‘Warme Getränke (따듯한 음료)’ 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가득 넣어달라고 맞춤형 주문을 넣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독일에서 얼음이 들어간 아이스커피는 귀한 메뉴다. 두 번째 이유는 에어컨의 부재에 있다. 한국에서 나는 푹푹 찌는 여름날이면 딱히 볼일이 없어도 은행이나 백화점 등에 가서 더위를 식혔었다. 대다수의 공공기관과 쇼핑몰에 가면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바람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 말이면 대학교 강의실에는 에어컨에서 나온 싸늘한 바람이 가득했고 실내외 기온차이를 못 견딘 학생들은 여름에도 두터운 카디건을 챙겼다. 특히나 근 몇 년 사이에는 더위가 극심해지면서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각 가정마다 크고 작은 에어컨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 같다.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도 집에 에어컨을 설치해서 무더운 여름에는 종종 틀어놓는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도대체 에어컨 바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에어컨이 설치된 가정집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도 여전히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난다. 햇빛이 안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건물 안이 아니라면 차라리 건물 밖 그늘이 시원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대부분의 독일 건물 내 냉방시설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그림 ] 어느 한 식당의 메뉴판: 차가운 커피는 없다 @신나희
한국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국과 독일 중 어디가 더 더워?” 혹은 “어디가 여름나기에 더 좋아?”라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선뜻 답을 못하겠다. 더위의 성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의 겨울 추위가 피부를 얼얼하게 하는 얼음바람이라면 독일은 뼈 속으로 스며드는 축축한 추위였듯, 한국의 찜통더위와 독일의 건조한 더위는 완벽하게 다르다. 그러다보니 환경에 맞추어 사람들은 각자에 맞는 방식으로 여름을 지내는 것 같다. 한국에서 여름 인턴십을 한 적이 있는 독일 친구들은 한국의 여름이라면 자기도 에어컨을 켜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온도일지라도 습도가 높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체감온도와 불쾌지수가 높아지기 때문에 더 견디기 어렵다. 전기세를 감수하고서라도 일단 살기 위해 냉방장치를 충분히 가동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독일과 같은 건조한 사막더위에서는 피부가 화상을 입을 듯이 뜨거워져도 그늘에 들어가서 조금만 쉬면 한결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런 경우 에어컨 바람이 정말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독일의 ‘전기 절약정신’이 한국의 상황보다 절대적으로 더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환경에 맞춰서 인간이 최적의 합리적 행동을 하듯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무더운 여름을 나는 것일 테니까.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매년 더위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각자의 여름나기 방식이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하고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현재 개인이 처한 현실적 상황 속에서 가장 비용효과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지구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선택’을 의미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개개인이 다음 달 고지서에 찍힐 전기요금을 부담할 수 있을만큼 냉방장치의 도움을 받을 것인지를 넘어서 지구를 해치지 않기 위해 인류가 탄소가스를 내뿜는 냉방장치에 얼마만큼 의존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얼음을 만들거나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내는 각종 냉방장치들은 폭염으로부터 인류를 구해냈지만 동시에 에너지 수요를 급증시키면서 지구온난화를 악화시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AEA)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에어컨 보급대수는 2050년까지 16억대에서 56억대로 약 3.5배 가량 늘어날 전망이고, 덩달아 같은 기간 내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도 2016년 12억 2천만 톤에서 2050년 23억 8천만 톤으로 거의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2). 에어컨을 켠 실내는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할 지라도 건물 밖으로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추가적인 전기생산을 통해 급증한 탄소가스 배출을 떠올려보자. 나는 가끔 ‘차라리 사람들이 아예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온도가 조금 내려가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지구온난화가 에어컨을 부르고 에어컨이 다시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2] 국가별 지구용량 초과의 날 (출처: Global Footprint Network 홈페이지)
한국에서 111년 만에 폭염 기록이 깨진 2018년 8월 2일은 우연히도 ‘지구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이었다. 이 날은 국제환경단체인 글로벌생태발자국네트워크(GFN – Global Footprint Network)가 지속가능한 지구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만든 개념으로서 식량, 목재, 섬유, 화석연료, 건물 등에서 배출하는 탄소를 포함해 인류의 생태자원 수요를 모두 합친 생태발자국을 날짜로 환산한 것이다. 즉 인류가 사용하는 자연자원의 양이 지구가 1년 동안 회복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한 날로서 이날 이후부터는 미래세대가 사용해야 할 자원을 당겨쓰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고작 올해의 2/3가 지났을 뿐인데 한국인들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해서 자원을 써버렸고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킬 탄소가스를 무책임하게 계속 내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책임 있게 여름을 나고 있는 것일까?
책임있게 여름을 보낸다는 것, 다시 말해 지구온난화에 대응한다는 것은 현존 에너지 체제나 산업구조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전제하는 것을 넘어서서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위해 에너지 체제전환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염에 대응하는 한국 사회는 냉방장치 사용에 대한 대가를 개인이 얼마만큼 지불해야 하는지, 즉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담론이 여전히 주된 논의점이다. 기록적인 폭염을 넘기기 위해 이 같은 단기적 처방은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내가 에너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과 독일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에 비춰보았을 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에너지 수요급증과 그 결과로서 초래된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지구적 문제인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 관심은 매우 적다. 한국에서 평생을 살았던 나 역시도 에너지 체제 전환이라는 주제에 대한 지식이나 실천적 경험의 정도가 또래 독일 친구들에 비해서 매우 낮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에너지 체제 전환’이란 개인적 실천보다 국가위주의 거시적 담론과 정책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상 속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던 독일 친구 프란치스카는 지구용량 초과의 날 소식을 듣고 (2018년 독일의 지구용량 초과의 날은 5월 2일이었다) 그간 무의식적으로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며 자책했다. 나는 그제야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이 냉방장치 사용만큼이나 지구온난화에 주된 요인이며 나 역시 생활 속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생각보다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어쩌면 근 몇 년 동안 지속되는 위협적인 폭염/한파 앞에 한국사회도 서서히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이제 사계절이 아니라 여름과 겨울만 존재한다고들 걱정을 하는 동시에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단기적 처방만큼이나 에너지 체제전환에 대한 거대 담론과 장단기 정책 사안들이 서서히 국민들의 주목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치 몇 년간 심해지고 있는 미세먼지에 대해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정책 결정자들의 환경 감수성이 높아지고 경각심을 가졌듯 폭염과 에너지,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지구에 대한 인류의 책임 문제도 조금씩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를 기대해본다.
1) 기후를 바꿀 탄소문명... 의식주도 바꿀 때다, <한겨레>
2) 위 기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