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만하임에서
신나희
1986년 4월 26일.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이 날은 다름아닌 내가 태어난 날이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진 날’로 기억된다. 당시 한국은 유럽과 비교했을 때 방사능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 몰두하고 있어서 원자력 발전이 가지고 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내게 너무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점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이후, 그리고 2016-17년 원자력 발전소가 몰려있는 남부 지역에 강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조차도 한국 사회는 굉장히 둔감했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33년까지 완전 탈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기존의 에너지 전환정책 목표달성 기한을 무려 10년 앞당겨서 ‘2022년까지 완전 탈핵’으로 바꾸고 당해연도에 원자력 발전소 8기 가동을 중지시켰다.
이미 잘 알려져있듯 독일은 지속가능성 이슈에 민감한 나라다. ‘탈핵’ 이라는 주제 역시 더 넓은 그림 속에서 보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의 일부이다. 1990년대부터 구체화된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인 ‘Energiewende’ 는 기후변화 대응, 탈원전, 에너지 안보, 경쟁력과 성장이라는 네 가지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고 이런 독일의 발빠르고 섬세한 대응은 독일 국민들의 생활과 정치지형을 바꿔놓았다. 세계 각국의 녹색당 중에 가장 성장했다고 알려진 사례가 독일의 녹색당일 정도니 말이다.
동시에 나는 궁금해졌다. 정말로 독일의 탈핵은 계획대로 잘 진행 중인 것일까? 올해 무더운 폭염을 떠나보낸 뒤 환경이나 에너지 전환에 대한 개인적 관심이 증가한 것도 있었고, 분명 현지에서라면 조금 더 정확하고 생생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탈핵’에서 조금 더 시야를 넓혀서 ‘에너지 전환’은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급격한 물살을 탄 에너지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솔직한 생각이나 감정은 무엇일까?
[그림 1] 독일의 원자력 발전소별 폐쇄기한
(출처: www.energiewende-global.com)
Q1. 탈핵은 얼마나 진행되었을까?
독일 내에 있는 총 17기의 원전 중에 8기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로 가동 중단되었다. 그 이후로 조금씩 일부 원전가동이 지속적으로 중단되었고 2018년 현재 총 7기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위 그림의 빨간색 표시). 그림[1]에서 볼 수 있듯이 남아있는 7기 중1기는 2019년까지, 3기는 2021년까지, 그리고 3기는 2022년까지 차례로 폐쇄될 예정이다.
Q2. 탈핵으로 부족한 전기는 무엇으로 생산하나?

[그림2]1990-2014 에너지원별 발전량 추이(재생가능에너지/ 핵/ 갈탄/ 무연탄/ 천연가스/ 기타 순)
(출처: Understanding the Energiewende – FAQ on ongoing transition of German power system (2015), Agora Energiewende, URL: http://www.agora-energiewende.de)
2000년대 초반부터 에너지 전환정책을 강력하게 실천해서였을까? Agora Energiewende라는 비영리 연구기관의 2015년 보고서 ‘독일의 에너지정책 이해하기 (Understanding the Energiewende)’를 기반으로 독일의 전원별 발전비중을 살펴보면1990년 27.7% 였던 원자력 발전의 비중이 2004년 15.5%로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Agora Energiewende, p.15).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량(gross electricity generation) 역시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추세는 다른 자료도 비슷한 것으로 봐서 분명 독일은 전체 전력생산 대비 원자력 발전 비중과 절대량을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전력 부족분을 메꿨을까? 정말 독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비중을 높였을까? 사실 이 문제에 정확한 답은 없을지 모르겠다. 에너지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출처와 계산방법 등이 제각각인 통계 결과를 보면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공통적인 지점들은 재생에너지라 분류되는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등이 현재 전체 전력공급의 약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 [그림 2]에서도 바로 녹색 부분이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비중인데 그 수치가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률이 매우 작다는 것을 떠올리면 독일의 에너지 전환과정의 속도와 방향성은 정말 놀랍다.

[그림3] 2000-2035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전원별 발전량 추이(수력/바이오매스/육상풍력/해상풍력/ 태양광 순)
(출처: Understanding the Energiewende – FAQ on ongoing transition of German power system (2015), Agora Energiewende, URL: http://www.agora-energiewende.de) 2000-2014는 실제 기록 데이터, 2015-2035년은 BNetzA(2014),BNetzA(2015)를 토대로 자체추산.
위 [그림 3] 은 다양한 데이터를 통한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에너지 전환정책 Energiewende 가 도입된 이후 2018년 현재까지 바이오매스와 풍력발전이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볼 수 있다. 2018년 이후 예상치를 살펴보면 독일 북부를 중심으로 하는 육상풍력(wind onshore)과 독일 내륙부의 해상풍력(offshore), 그리고 태양력 발전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Q3. 화석연료 사용도 줄어들었을까? 우리의 최종 목표인CO2배출량은?
앗, 잠깐, 그런데 생각보다 화석연료 사용은 원전만큼 급격히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아래 [그림 4] 에서 볼 수 있는 화석연료 – 짙은 갈색과 검은 색 부분 - 라 할 수 있는데 여전히 전체 전력 발전량의 약 43%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화석연료로부터 인류가 순식간에 멀어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인류 문명 자체가 화석연료에 기반해서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이미 인간들, 특히 현대인들의 삶은 화석연료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위 보고서 역시 에너지로서 화석연료가 갖는 가격경쟁력이 워낙 높음을 이야기하면서, 2030년까지 독일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CO2감축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가 전체 에너지 발전량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현재 대비 25% 이상 줄어들어야 함(43% -> 28%)을 지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0년대 대비 2014년의 CO2 배출량이 이미 26% 가량 감소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성과다. 물론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40%, 2050년 까지는 85-90% 가량 감축하겠다는 독일정부의 애초 목표치를 떠올려본다면 앞으로도 갈 길이 너무 멀지만.

[그림 4] 1990-2014년 독일 에너지원별 발전량 추이 및 2030년 정부 목표 시나리오(재생가능에너지, 핵, 갈탄, 무연탄, 천연가스, 기타 순)
(출처: Understanding the Energiewende – FAQ on ongoing transition of German power system (2015), Agora Energiewende, URL: http://www.agora-energiewende.de)
Q4. 전기세가 급격히 올랐을텐데…
이 같은 독일의 에너지 전환정책 Energiewende는 에너지 전문가들로부터 정책의 효과성과 비용에 대한 상당한 논쟁을 일으켰던 것 같다. 그 논쟁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 벌어진 누진세 논쟁만 봐도 시끌벅적한데 지금까지 독일 사회가 감당해야 했을 논쟁과 사회적 합의 과정은 상상조차 어렵다. 그러나 어쨌든 독일 사회는 에너지 전환과 그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고 함께 분담하기로 결정했다. 대표적인 정책이 2000년에 입안된 재생에너지법(EEG: Erneuerbare-Energien-Gesetz)으로서, 이 법을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게 투자수익률을 보장해주고 소비자들이 더 쉽게 재생에너지를 접할 수 있도록 전력망 접속에 대한 우선권도 주게 되었다.
세계 경제4위 대국인 독일이라고 해도 이런 정책을 추가적인 세금 없이는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가정이나 기업과 같은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전기세가 올라간 것이다. 정확히 말해 기존의 전기요금에 EEG-Umlage 라는 추가요금을 부과한 것인데, 이 요금은 1990년 0.41 euro cent/Kwh 였던 것이 2017년 6.68 euro cent/Kwh로 증가했다 ([그림 5] 두 번째 그래프 참조). 그러다보니 일반 가정에서 지불해야 하는 전기세는 Kwh 당 2000년 약 13유로에서 2014년 약 30유로로 2배 이상 증가하게 되었다 ([그림 5]의 세 번째 그래프 참조). 현재 독일은 덴마크 다음으로 유럽에서 전기세가 비싼 나라다.
[그림 5] 독일의 전기세 관련 가격변화 – 첫 번째는 2013년 유럽의 ct/kWh 당 전기세 국가별 비교, 두 번째는 새롭게 도입된 EEG-Umlage 추이, 세 번째는 3명으로 구성된 일반 가정에서 지불해야 하는 ct/kWh 당 전기세 추이
사실 이렇게 꾸준히 전기세가 증가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불만을 갖기 마련일텐데 생각외로 독일인들은 무덤덤하다. 몸에 베어있는 절약정신 때문일까? 나는 수업을 함께 들으면서 친해진 독일 친구들 몇몇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이십대 중반이기 때문에 지난 2-30년동안 이루어진 전기세 인상에 관심이나 체감도가 덜했지만, 놀랍게도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전기세 인상 자체보다도1986년 체르노빌에서부터 시작된 일련의 원전 폭발사고를 지켜보면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독일인들의 불신과 거부감이 상당히 깊어졌다는 점이다. 에너지 빈곤국으로서 종종 독일이 맞닥뜨려야 하는 에너지안보 이슈와 그에 따른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절박함이 꽤나 크다는 것도 공통적이었다.
물론 현재 독일정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에너지 전환정책을 살펴보자면 – 개인적으로는 - ‘정말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지나치게 정책 목표를 높게 잡고 있는 것은 어느 정부나 비슷하군! 사실 독일도 별반 다를 것 없어.’ 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탈원전 및 에너지 전환에 대해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 대부분이 깊이 공감하고 관심을 갖고 의지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 에너지 전환 정책들이 어느 정도 현실 가능한 것이구나 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