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만하임에서
신나희(독일유학생)
내가 살고 있는 따뜻한 도시 만하임은 10월 중순까지도 반팔을 입어야 하는 어색한 가을 더위가 지속되었다. 곳곳에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데 트렌치코트는 커녕 땀이 나는 날씨라니. 단풍도 아름답게 물들어가는데 여기에 걸맞는 시원한 가을바람을 느낄 수 없을까?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타기로 마음 먹었다. 분명 자전거를 타며 강가를 시원하게 달리다보면 제대로 가을 느낌을 낼 수 있으리라! 수소문한 끝에 함께 수업을 듣는 독일 친구에게 여분 자전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달 빌리기로 했다.
사실 나에게 독일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가을의 낭만’ 보다는 책임이 뒤따르는 또 하나의 ‘위험한 일’이었다. 자전거를 탄다는 사실 하나로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많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교통사고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만하임은 공업도시라 무거운 짐을 싫은 큰 차량도 많이 다니는 편이고 운전 스타일도 조금 난폭한 편이라 나는 평소보다 안전 문제에 대해 더 신경이 쓰였다. 낭만이고 뭐고 결국 무엇보다도 안전이 제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 어떤 것에 의해 전/후방 안전등과 벨은 꼭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아직 내 주변에서 보지 못했지만 경찰이 불심검문(?)을 할 때가 있고 일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자전거를 타는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한다.
기숙사에서부터 시내에 있는 학교까지는 자전거로 약 20-30분 정도가 소요되고 거의 대부분이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자전거 통학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는 친구들 몇몇은 내게 큰 도로가 아닌 숲길 자전거 도로를 추천해주었다. 알고보니 내가 평소에 조깅하던 코스였는데, 차도 덜 다니고 경치도 예쁘다보니 그 뒤로는 나도 매번 숲길 도로를 이용하게 되었다. 고작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독일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내가 느꼈던 혹은 새롭게 배우게 되었던 알쓸신잡 사실들을 이번에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학교까지 가는 길은 크게 세 가지 구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구간마다 한국에서 온 자전거 초보가 감탄했던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A 구간: 숲길까지 가는 큰 길
500m 남짓한 이 길은 트램도 다니는 큰 길이다. 대로변이지만 인도/자전거 전용도로의 폭이 넓은 편이고 꽤나 매끄러운 평지라 자전거 속도를 가장 높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길에서 주의해야 하는 점은 아파트나 상점으로 진입하는 자동차와 부딪치지 않도록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마다 미리미리 살피고 경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모든 건널목에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신호등이 없는데 자동차와 내가 동시에 건널목을 건너는 경우 당연히 내 쪽에서 먼저 속도를 줄여나가거나 건널목 앞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왜냐면 나는 만약의 경우 자동차 운전자보다 손해볼 확률이 높은 교통약자니까 내가 먼저 방어적으로 자전거를 운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매번 자동차가 건널목 앞에서 먼저 정차했고 내가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건널목 앞에서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먼저 가라고 손짓하는 자동차 운전자들도 있었다. 흠, 뭐지? 굉장히 낯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개인들의 운전 매너가 좋은 것이란 생각을 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건 개인적 운전 매너에 대한 것이 아닌 ‘무조건 자전거가 1순위’인 시스템 혹은 법 때문이었다.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서는 심폐소생술부터 배우는 나라에서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렇다, 독일에서 자동차는 강자가 아니다. 약자이기 때문에 먼저 방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한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림1] 자전거는 오른쪽 핑크색 길로 @신나희
B 구간: 숲길과 주차장
아스팔트 대로를 지나서 숲길에 들어서면서는 상당히 안전하고 마음도 편해진다. 그러나 차가 없는 만큼 강아지들과 산책하는 수많은 주민들과 같은 길을 가는 경우가 많고 일자로 뻗은 A 구간과 달리 커브도 많은 편이라 손신호에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 손신호! 독일에서 자전거를 탈 때는 항상 손신호에 주의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독일에서 자전거는 자동차의 일종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운전방향도 자동차와 동일한 방향으로 자동차 신호등에 기반해서 주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동차 운전자가 깜빡이를 통해 서로 방어운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듯 자전거 운전자도 무엇인가를 통해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뒤에 오는 자전거 혹은 자동차 운전자에게 미리 알려줘야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손신호다. 사실 손신호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고 방향 전환을 하기 전에 미리미리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손을 살짝 뻗어주면 된다.
그리고 숲길 끝 약 200m 구간에 주차장이 등장하면서 사람, 자동차, 자전거가 한데 얽히는 구간이 살짝 나오는데, 여기는 바짝 긴장을 좀 해야한다. 언제 어디서 자동차나 유모차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큼 다양한 안내사인도 보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누구에게 허용된 길인지 알려주지 않으면 그것만큼 혼란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나처럼 이렇게 수많은 안내사인이 낯선 사람에게는 안내사인의 존재 자체가 혼란스러울 것이다. 대부분의 안내사인들은 직관적으로 그 뜻을 알 수 있지만 몇몇은 별도로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의미가 모호한 경우가 있다. 초반에는 속도감에 취해서 자전거를 타다가 중요한 안내사인을 놓쳐서 초행길에 길을 잃은 적도 있었고 나도 모르게 역주행을 하고 있던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이제는 도시의 길 자체가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있어야 할 곳에 안내사인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내사인이 나에게 혼란을 가져다주는 시절은 지나갔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림2]자전거 도로 (Fahrradstrasse) 의 시작, 물론 주차장이다보니 자동차도 통행이 가능하다. @신나희
C 구간: 자전거 전용도로
숲길 끝에서 학생식당 혹은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코스는 자전거만 다니는 전용도로다. 길이 매끄럽지 않고 오르막도 있고 좁은 길을 자전거 양방향으로 운전해야 하다보니 약간의 주의를 요하는 마의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간만의 특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구간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독일 자전거 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꽤나 잘 되어있는 임대/공유 자전거 시스템(1) 이다.
독일은 연방제이다보니 주별로 시스템이 조금씩 달라서 독일 전역을 아우르는 대중교통 체제를 조망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내가 살고있는 만하임과 만하임이 속해있는 VRN (Verkehrsverbund Rhein-Neckar: 지리적으로 Baden-Wuerttemberg, Rheinland Pfalz, Hessen 주를 포괄하는 대중교통 네트워크)시스템 하에서 일단 바라보려고 한다.
내가 살고있는 지역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대중적인 임대/공유 자전거는 ‘NextBike’이다 (이 밖에도 독일 철도청(Deutsche Bahn)에서 제공하는 Call-A-Bike 와 Lime Bike 등 공공/민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업자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한번도 이용해본적은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학생기숙사 바로 옆은 물론이고 도시 곳곳에 NextBike 거치대가 있고 거치대마다 최소 1-2대씩 자전거 여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편리해보인다. 이용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여느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서비스에 등록을 하고 (홈페이지 가입, 스마트폰 어플설치, 거치대의 터미널, 혹은 고객센터 전화 문의) 지불방식 (신용카드 혹은 직불카드) 에 대한 본인인증이 끝나면 언제든 어디서든 자전거 이용이 가능하다.
다른 도시들은 어떨까 싶어서 정보를 찾아보니 베를린같은 큰 도시는 스케일이 다른 듯 했다. 베를린에 살고있는 친구들 말에 의하면 최근임대/공유 자전거에 대한 공급이 급증하면서 거리풍경이 급속도록 바뀌고 있다고 한다. ‘거치대없는 편리한 임대/공유 자전거’가 컨셉이다보니 거리 곳곳이 자전거 주차장으로 변해서 기존의 인도가 좁아질 정도라고. 이는 2017년 가을부터 중국계 회사들이 베를린 임대/공유 자전거 시장에 진출하면서 자전거수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반년 사이에 중국계Mobike 와 ofo 에 의한 임대/공유 자전거만 10,000대 가량 추가되었는데 이는 기존 대비100% 증가이다.(2)
그렇다, 반년 만에 도시의 임대/공유 자전거가 2배로 훌쩍 증가한 것이다. 모두가 자전거를 소유하지 않아도 소액으로 편리하게 자전거를 함께 이용할 수 있다는 발상은 아름답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미 대다수의 독일 사람들이 자전거를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 자전거가 급속도로, 조금은 무분별하게 시장상품이 되어가는 것은 어떻게 봐야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독일 내에서는 ‘베를린은 독일이 아니다’ 라고 종종 말을 하니 최근 변화는 내가 아직 잘 모르는 베를린이라는 특수한 공간만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고.
안전, 또 안전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안전’이다. 내 기억으로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보조바퀴가 달린 네 발 자전거부터 시작해서 아빠와 함께 두 발 자전거 타기를 연습했던 것 같다. 당시 헬멧은 안 썼던 것 같고 무릎보호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균형을 잘 못 잡아서 넘어질 때마다 무릎이 다 까져서 피를 줄줄 흘렸기 때문이다. 아빠와의 호된 훈련을 통해서 곧 나는 ‘자전거 잘 타는 예쁜 우리딸’이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법’을 배웠다기 보다는 ‘잘 타는 법’을 배우는데 골몰했던 것 같다.
사실 자전거를 타다보면 나처럼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는 어른들이 대부분이지만 온갖 보호장비를 갖추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도 가끔 보인다. 작은 아이들이 헬멧을 쓰고 팔꿈치, 무릎 보호대를 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자전거타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독일 아이들은 언제 어떻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까? 나처럼 집에서 엄마아빠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러 번 넘어지고 울면서 배울까? 내가 자전거를 탄다고 했을 때 옆에서 이것저것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 David 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야, 너는 언제부터 자전거 탔어?
David: 나? 걷기 시작하자마자 탔을껄? 하하, 농담이고 아마 초등학교(Grundschule)에서 자전거 배우고 그 뒤로 자전거 타고 다녔던 것 같아.
나: 학교에서 배웠다고?
David: 응, 독일에서는 자전거도 자동차같은 개념이다보니까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려면 면허증을 따야해.
나: 응? 면허증? 자동차 운전면허증같은 면허증을 말하는 거야?
David: 그정도로 거창하거나 공적인 건 아니야. 음, 일단 보호자 동반이면 상관없는데 보호자 없이 아이가 혼자 자전거타고 학교를 간다거나 뭐 그런 경우는 위험할 수 있잖아.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자전거와 관련한 이론이나 연습을 시작해서 4학년 때 시험을 보게 되어 있어. 응, 맞아, 초등학교 4학년 때 면허땄었어!
나: 와, 진짜? 그럼 그게 체육수업 안에 있는 거야? 진짜 무슨 과목인거야?
David: 사실 워낙 오래되어서 정확한 기억은 안 나는데 다같이 수업듣고 시험봤던 기억이 있어. 아, 근데 이 교육과정이 경찰의 관리감독 하에 실시돼. 언뜻 들으면 귀엽다는 느낌만 들 수는 있는데 나름 진지한 수업이야.
[그림3]경찰 감독 하에 이루어지는 자전거타기 교육
그렇다. 한국에서는 단순히 취미일 수 있는 자전거에서조차 독일은 이렇게 철저했다. 모든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단순히 ‘교육’이 아닌 ‘안전’의 문제로 경찰의 감독 하에 진행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참 생경하고 감동으로 밀려왔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느끼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던 나는 이를 통해서 조금 더 독일 사회를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스포츠나 취미의 일종인 자전거에 대해 독일은 수많은 제약과 규칙, 공적 교육과정을 두고 있었고 그 모든 것이 ‘안전’이라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원칙 하에 기획되고 운영된다는 것이 참 독일스러웠다.
각주
(1) 물론 한국에도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www.bikeseoul.com) ’와 같이 지자체에서 건강하고 깨끗한 도시를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프로젝트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