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연구소 로고
연구 및 자료 - 해외소식
[한국인의 시선으로 본 독일] 문턱없는 채식

‘채식’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얼마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모델이나 배우와 같은 유명인들이 각자의 이유로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선언하며 TV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모델 이하늬는 태생적으로 단백질을 분해하지 못하는 친동생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기를 덜 먹게 되었고, 몇 년 뒤 어머니의 암 수술 이후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 완전히 채식주의자가 되었음을 밝혔고 가수 이효리는 동물보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했다.나 역시 최근까지도‘채식’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채식을 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생각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실천적으로 육식을 금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채식주의자를 만나게 된다거나 채식주의 식당을 접하게 되는 일이 드물어서 ‘채식’은 더욱 내 삶에서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내가 독일에서 간헐적인 채식 을 하게 되었다. 소세지의 나라 독일에서 채식이라니? 나는 자고로 음식에는 고기나 해물이 조금이라도 들어가야하고 그렇지 않았을 경우는 식사다운 식사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사람이다. 조금 우습지만 내가 간헐적1)으로나마 채식을 하게 된 것은 사실 순전히 ‘맛’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제는 조금 적응되었지만 거의 모든 독일 음식이 여전히 내게는 매우 짜게 느껴지는데 특히 고기가 들어간 경우는 그 짠맛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물론 채식메뉴에서 자주 등장하는 치즈도 한국에서 먹었던 치즈에 비하면 짠맛이 강했지만 치즈의 짠맛은 고기의 짠맛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나는 고기를 피하게 되었다.

물론 독일에 살면서 주변에 채식주의자 친구들이 많아진 것도 한몫했다. 한국에서는 채식주의자 친구가 없었다. 회, 순대국, 삼합 등과 같이 호불호가 갈리는 특정 음식을 못 먹는 친구들이 종종 있지만 채식을 하는 친구는 없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나와 수업을 같이 듣는 과 동기 24명 중 4명이 채식주의자다.2)  중요한 것은내가 채식주의자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전혀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학관 메뉴 4개 중 1개 이상이 채식주의 메뉴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의 식당에서 채식주의 메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채식주의자 친구들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가도 거의 언제나 ‘채식버거(Veggie Burger)’가 있어서 메뉴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심지어 채식주의자를 위한 소세지가 있을 정도니‘그 식당에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먹을 거리가 없어’와 같은 이유로 서로가 불편함을 겪을 필요가 전무하다. 종종 ‘외식’이 곧 ‘육식’을 의미하는 한국적 맥락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림1]채식주의 종류 (출처: http://blog.seoulfood.or.kr/666)

비싸게 외식을 해야만 채식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거의 모든 음식에 채식버젼의 레시피가 따로 존재하고 있고 해당 재료를 일반 슈퍼마켓에서 비교적 싸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도 얼마든지 요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독일식 돈가스인 슈니첼(Schnitzel)을 콩이나 치즈로 대체하면서도 비슷한 식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패티도 있고 비거니즘3)을 바탕으로 식재료를 가공한 소위 비건식품들이 넘처난다. 한국에서는 생전 보지못했던 새로운 채식 재료나 비건식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지금까지도 쏠쏠할 정도다. 게다가 가격도 다른 제품들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채식주의를 실천하는데 재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 가을 2-3달 동안 나는 장을 볼 때마다 의식적으로 채식주의 혹은 비거니즘을 떠올리며 재료를 골라봤다. 동물성 우유가 아니라 견과류나 곡류로 만든 식물성 우유를 장바구니에 담았고 고기 대신 해물이나 다양한 두부 제품으로 레시피를 대체했다. 결과는 대만족! 슈퍼마켓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여기에서라면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이 너무 쉬워서 독일에 사는 동안만이라도 본격적으로 채식을 해볼가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독일에서 이렇게 채식주의자들에게 넓은 선택의 폭이 존재하는 것은 배후에서 식품산업이 수요에 발맞추어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육류 가공이 발달한 독일에서 채식주의자 혹은 나처럼 채식을 간헐적으로 시도해보는 사람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하고 있다. 시장조사 연구소인 Skopos 에 따르면전체 독일인구 중 9% 가량 (약 800만명)이 채식을 하고 있고 그 중130만명은 비건이라고 한다.(4) 그에 맞춰 독일의 채식시장은 연평균 약 15%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며 가파르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2012년 육류대체식품 시장의 매출은 약 1억 5600만 유로였는데 반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5년에는 동일 시장의 매출이 3억 110만 유로로 급증했다.(5) 심지어 독일의 대표적인 육류가공업체인 Ruegenwalder Muehle사의 소유주이자 사장인 Christian Rauffus 는 자신의 회사에서 조만간 육류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대체식품을 출시할 것을 기획하고 있다고 하면서 향후 모든 제품을 육류를 배제한 제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발언까지 한 바 있다.(6) 세상에나, 자본주의에서 소비자가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그림 2] 왼쪽 그래프는 최근 독일에서 급증하는 육류 대체식품의 판매량 (단위: 백만유로) 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그래프는 육류 대체식품을 선택하는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의 답변으로서 각각 „나의 육류소비를 줄이기 위해“ (33%), „윤리적 이유때문에“ (30%), „나의 식단을 다양화하기 위해“ (29%), „고기섭취가 환경에 끼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기 때문에“ (22%),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 (16%)(출처: www.statista.com)

독일에서는 ‘채식’이라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닌만큼 ‘채식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미적지근하다. 한국에서 채식주의라면 – 그것이 건강상의 이유이든 혹은 정치적 소비(political consumerism)를 지향하는 의식적 표출이든 - 이유를 불문하고  ‘좀 특별한 식성’ 혹은 ‘대단히 유별난’ 사람이 되기 일쑤인데 여기서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한 사람의 취향이 되어 버린다. 마치 사람마다 좋아하는 패션스타일이 다르듯 그냥 입맛이 다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 한국에서라면 이미 자라면서 가족들로부터는 물론이고 다양한 사회적 삶 속에서 무언의 압박이 채식주의자를 짓눌렀을 것이다. 눈앞에 생생하다. 만약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나 채식주의자야’ 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들이 돌아올까? ‘왜?’ 라고 나의 변화에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대다수는  ‘진짜로 고기 안 먹어? 아무것도? 쉽지 않을텐데…’ 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독일에서 몇년 살았다고 유별나게 굴긴…’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부터 ‘왜 고기를 안 먹어! 단백질이 얼마나 중요한데! 안되겠다, 오늘은 삼겹살 외식하러 가자’ 라고 말하며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한국의 식품 혹은 외식 시장에서 고기를 배제하고 채식을 유지한다는 것이 (최소한 아직은) 결코 쉽지 않을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많은 독일 사람들 중에는 온가족 전체가 채식주의자인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가족 중에 채식주의자와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섞여있는 경우도, 혹은 채식주의자와 비채식주의자가 함께 동거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서로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채식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든 –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든 혹은 조금 거창하게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는데 기여하는 것이든 - 독일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맘 편하게 채식을 선택하는 것도 같다. 매번 그 다양한 선택지와 마음 편함에 부러울 뿐이다.


각주

1) ‘간헐적’이라는 표현은 쓴 것은 스스로 채식주의자라 말하기엔 거리가 멀지만 최근 채식을 의식적으로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일상식은 여전히 비채식 식단을 중심으로 머물러 있어서 스스로를 플렉시테리언이라고 칭하기엔 맞지 않는다.

2) 심지어 그 중 하나는 비건채식을 한다. (다양한 채식의 종류는 아래 그림1에서 참고)

3) 비거니즘은 단순히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희생하는 상품 혹은 서비스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윤리적 소비를 강조한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삶의 방식으로서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다수가 음식 뿐만 아니라 동물성 물질이 포함된 의류는 물론이고 동물 실험을 한 화장품 및 약품을 소비하지 않고 사냥, 승마, 서커스 등의 취미생활도 지양한다. 최근 나도 내가 자주쓰는 화장품 일부를 비건 제품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4) GfK은 독일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시장조사 전문NGO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