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16일 만하임에서
작성자: 신나희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아침. 어느 3월의 독일과 마찬가지로 칼바람이 불고 비까지 내려서 으슬으슬하게 추운 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금요일이니까 살짝 게으름을 피우면서 오후나 되어서 도서관으로 향했겠지만 오늘은 조금 서둘러야 한다. 매서운 초봄 날씨를 원망하면서도 길거리로 나서야 하는 오늘은 학생들이 파업을 선언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길거리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날이다. 그렇다, 2018년 스웨덴의 15살 소녀(Greta Thunberg)의 의회 앞 시위에서부터 출발한 기후변화 학생파업은 이제 매주 금요일마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학생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현장을 떠나서 길거리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은 왜일까?
[Figure 1] 전 세계적인 금요일 학생파업을 이끈 스웨덴의 소녀, Greta Thunberg
사실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약간의 덧셈만 할 수 있다면 너무 뻔하다. 현재 10대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 인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미래는 대략 2030-2050년. 과연 그때의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미래 세대도 깨끗한 자연환경과 때마다 달라지는 기분 좋은 계절의 변화를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2019년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자연을 음미한다는 것은 굉장한 사치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미세먼지나 바다의 수질오염이 커다란 공중보건 이슈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대중들이 지구온난화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는 자연재해가 지구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살 곳을 잃은 북극곰들이 앙상한 뼈를 드러낸 것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과 갑작스러운 한파로 많은 인명피해가 이어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 현재 10대를 살아가는 미래 세대에게 ‘미래’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가) 독일의 고민: 법제화 진통?
자연에 대한 자신들만의 철학과 사랑으로 잘 알려져 있듯 독일 연방정부는 2016년 11월 “Climate Action Plan 2050 (Klimaschutzplan 2050)”을 승인하면서 본격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적 조치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는 2014년 12월에 수립되었던 “Climate Action Programme 2020 (Aktionsprogramm Klimaschutz 2020)” 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으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기준으로 80-95% 감축하고 이에 발맞추어 각 영역별 단기 목표치를 설정,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각 부문의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3년 뒤인 2019년 최근 독일에서는 이를 “Climate Action Law” 이란 이름으로 법제화하기 위한 노력이 한참 진행 중이다. 법제화가 이루어진다면 이 법이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법적 강제력이 따르는 기후변화 관련 법안이 되는 셈이다. 2019년 2월 중순, 이미 사민당 출신의 환경부 장관 Svenja Schulze 가 65페이지짜리 초안을 만들어서 의회에 제출했다. 제출된 법안 초안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95% 까지 감축한다는 것을 장기목표로 삼고 있어서 원래의 Climate Action Plan 2050 의 내용보다 더 급진적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기존 계획에 근거하여 경제 분야별 상이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도입하되, 해당 목표치에 따라 관계 행정부처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계획된 연간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벌금비용을 부처 예산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트럭,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으로부터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이 연간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 영역에 행정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교통부(Ministry of Transportation, Verkehrsministerium) 에서 자신의 예산으로 범칙금을 지불하는 형식이다. 여기서의 범칙금은 구체적으로 EU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탄소거래권의 구매 비용을 의미한다.
간단히 살펴보았을 때 법안 초안은 확실히 행정부처에 대한 법적 강제력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고 이런 점에서 다른 EU 국가들의 모범사례로 언급될 만 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독일도 갈 길이 멀다. 일단 법률안 초안을 작성한 환경부 장관이 소속되어 있는 사민당을 제외한 다른 당들의 반응이 아주 차갑다. 기업친화적인 자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사민당의 대연정 파트너인 기민당도 법안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에 주요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여러 행정부처 장관직이 기민당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아무래도 법적 강제력이 따르는 법제화 과정에서 관계부처 장관들의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컸을 테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책임을 미루기만 하는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독일 학생들의 파업이 전국적으로 벌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내가 사는 만하임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기획/예고된 3월 15일 기후변화에 대한 학생 파업에 대한 홍보가 최소 일 주일 전부터 온/오프라인을 달구기 시작했다. 워낙 관심 있는 주제이기도 하고 과연 독일의 청소년들은 어떤 식으로 시위를 전개할지 궁금해서 나 역시 길을 나섰다.

[Figure 2] 독일의 환경부 장관인 Svenja Schulze가 연방의회에서 법안 초안에 대해 설명하며 다른 장관들의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Sueddeutsche Zeitung)
나) 당신들은 우리에게서 미래를 뺏고 있다.
매우 쌀쌀한 금요일 아침이었지만 꽤나 많은 학생들이 만하임 시청 앞에 모였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경찰차 2-3대가 약 20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학생 시위대 곁에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평화스러우면서도 상당히 결연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시위였던 만큼 학생들만 자리한 것이 아니었다. 뜻에 동참하는 다수 어른들이 주변부에서 함께 힘을 모으고 있었고 아이를 업거나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도 시위에 함께 하고 있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크고 작은 판넬을 준비했고 음향 장비가 갖추어진 작은 트럭 하나에 주최 측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차례로 발언을 이어나갔다. 발언 사이사이로 사람들은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Wir sind here! Wir sind laut, weil ihr uns die Zukunft raubt!”
(우리가 여기 있다! 우리에게도 목소리가 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서 미래를 뺏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Figure 3] 만하임에서 있었던 학생 시위의 한 장면. 팻말은 ‘너희들(다국적 대기업)은 도대체 얼마나 더 우리의 자연을 파괴할 것이냐?’ 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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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만하임에서 있었던 학생 시위의 또 다른 장면. 학생들은 준비한 다양한 팻말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약 한 시간 뒤 시위는 시내 행진으로 이어졌다. 학생 시위대는 별다른 음악 없이 다양한 구호들을 외치면서 시내 전차가 다니는 길을 점거하고 행진을 이어나갔다. 구호 중에는 침묵하거나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는 권력을 따끔하게 혼내는 것 이외에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저 멀리서 방관하는 사람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구호도 있었다. 행렬 속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면서 나는 희망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꼈고 2016년 촛불집회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비바람이 불던 집회 현장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집에 들어와서 한숨 낮잠을 자고 나니 뉴스 속보가 떴다. Climate Action Law 에 대한 한 달간의 정치적 공방이 끝나고 마침내 이를 더 적극적이고 협력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임시기구로서 기후변화 내각모임(Climate Cabinet)이 구성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다. ‘서로가 그렇게 책임을 미루고 비난을 일삼더니 결국 마지못해 임시기구 하나 만들었구나? 얼마나 잘 하나 보자’ 하는 식의 반응들이다. 과연 이 법안은 의회 내 다양한 논의절차를 거쳐 ‘법’으로서 최종 승인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나 역시 희망보다는 무력감이나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성숙한 정당 정치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기 용이한 독일의 제도적 맥락이라 할지라도 - 여태껏 보여 지듯 - 결국 상당한 정치적/경제적 이윤이 걸려있는 이 같은 문제에서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당한 숙의 과정을 거치는 독일 연방의회의 입법과정을 떠올리면 가야 할 길이 더욱 멀게 느껴진다. 앞으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와서 어느 정도의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야기하듯 기후변화 문제는 법 입안가들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위기이며 미래세대의 생명권과 관련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앞선 세대를 살았던 우리 어른 세대에게는 분명 책임이 있다.
Climate Action Plan 2050 에 의하면 독일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 2014년까지 27%, 2020년까지 40%, 2030년까지 55%, 2040년까지 70%, 그리고 최종목표인 2050년까지 80-95% - 감축하게 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2030년까지 영역별 (에너지, 교통, 건축, 산업, 농업, 기타)로 나누어 중장기 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이는 2009년 Council of European Union 과 2016년 European Council 에서 승인하여 일정 수준의 강제력을 가지는 유럽 수준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과 같거나 혹은 더 엄격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