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날씨에 따라 기분이 많이 좌우되는 편이라 유학을 갈 때도 고민이 많았다. 독일로 공부하러 가고 싶은 것은 분명한데 ‘음산하고 우중충한 날씨에 우울증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우려를 했다. 독일 현지 사람들도 날씨에 대한 불만이 많을 정도로 실제로 독일은 날씨가 좋지 않다. 나 역시 독일 날씨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지만 일 년을 넘게 살다 보니 먹구름 잔득한 보통의 뿌연 하늘에 익숙해져 버렸다. 종종 볼 수 있는 회색 하늘은 ‘오늘은 평소보다 추울 테니 옷을 한 겹 더 입고 나가세요.’와 같은 일종의 일기예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의 뿌연 하늘은 ‘미세먼지’라는 위협과 공포로 다가온다. 한국 사람들은 이제 일기예보보다 미세먼지 예보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다. 몇 년 전 부터 심해진 한국의 미세먼지는 세상에서 제일 둔하기로 소문난 내가 온몸으로 느낄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Figure 1] 비구름이 가득한 만하임의 보통 날
시국은 엄중한데 내가 한국에서 체감했던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사회적 정책은 딱히 없었다. 취약계층에게 마스크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었을까? 한국 사회가 중국에 미세먼지 책임을 일정 부분 전가하며 정책적 대응을 미루던 사이에 한국 사람들은 각자도생 방식으로 미세먼지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미세먼지를 완벽하게 걸러준다는 고급 마스크가 등장했고 장기간 환기가 불가능할 것을 대비해 실내용 공기청정기와 세탁물 건조기가 불티나게 팔렸다.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를 전환하면서 월급을 절반으로 받던 당시 나는 일회용 싸구려 마스크를 몇 번 구입한 적이 있다. 딱 봐도 마스크 질이 좋지 않아서 ‘이걸 사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고급 마스크를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고 나오던 나는 공공성의 부재와 강력한 시장 논리가 미세먼지에도 작동하는 것 같아서 한 번 더 몸서리쳤다. 한국에서는 분명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과감하게 실천되는 공공정책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미세먼지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대응이 개인적 차원에서, 그것도 개인의 경제력에 좌우되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떨까? 독일의 대기오염은 얼마나 심각하고 여기에 대해 정부는 무엇을 해결책으로 내놓고 있을까? 사실 놀랍게도 독일은 EU 국가 중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유럽환경연합(European Environment Agency)에서 발간하는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한해 EU 국가 중에 미세먼지(PM 2.5)로 인한 사망자가 약 422,000명에 달했는데 그 중 독일이 62,300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1]. 물론 EU 국가 중 인구수가 많은 편에 속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수치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간 생각했던 독일의 ‘친환경’ 이미지에 비추어 보면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일 대기오염의 주된 원인은 디젤 차량과 생산설비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독일에서도 한국의 ‘중국발 미세먼지’와 같이 ‘폴란드발 미세먼지’ 와 같은 일종의 음모론같은 연구결과가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주된 원인은 디젤 차량과 생산설비가 확실하다.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와 포르쉐 완성차 공장이 있는 슈투트가르트의 경우 독일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물론 이 지역이 분지 지형이라 오염물질이 순환되지 못하고 정체된다는 것이 한 몫 하기도 한다).
그럼 슈투트가르트 시장은 시민들에게 공짜 마스크를 나눠줄까? 독일에서는 그 누구도 개인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스크는 감기에 걸려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을 때 필요한 위생 도구이다. 대신 독일 사회는 대기오염의 주된 원인을 정부가 나서서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가장 유명한 정부 정책은 2008년부터 베를린을 중심으로 실시된 도심환경보호구역 제도다. 이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도심지역을 LEZ (Low Emission Zone)으로 규정하고 미세먼지 배출 차량의 출입을 단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위 제도에서는 오염물질 배출등급을 기준으로 각 차에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스티커를 붙이고 초록색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만 LEZ 지역을 운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초록색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으로써 경유차/휘발유차에 대한 구분 없이 ‘유로4’ 기준을 충족했음을 의미한다)[2].만약 이를 위반하는 경우 벌금 40유로와 벌점 1점이 부과되는데, 현재 법으로는 벌점 18점이면 운전면허가 취소된다. 도심 환경 보호구역 제도는 쾰른, 하노버와 같이 인구 10만이 넘는 주요 대도시에서 운영되는 중이다. 물론 내가 사는 동네에 주차된 차들을 관찰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본 결과, 거의 대부분의 차가 초록색 스티커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실제 빨간색 혹은 노란색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은 정말 대기오염 배출이 심각한 차인 것 같다.
[Figure 2] 2008년부터 실시된 환경스티커 의무제
아무튼 이미 독일 대도시에서는 꽤 강력한 정책으로 미세먼지 절감에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친환경을 강조한다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자동차를 사랑하는 독일 사람들(혹은 업계)로부터 자동차 운전권리를 부분적으로 박탈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더 강력한 소식이 작년 독일 사회를 흔들었다. 바로 2018년 2월 27일, 독일의 환경시민단체 독일환경행동(DUH: Deutsche Umwelf Hilfe)이 뒤셀도르프와 슈투트가르트시를 대상으로 제기했던 ‘공기청정계획안’ 개선안이 결과적으로 3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독일환경행동이 제안한 개선안의 핵심은 대기오염에 기여하는 특정 자동차 모델 (예: 구형 디젤 차량) 운행을 시 당국이 강제로 중단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그리고 실제로 이 소식이 전해진 뒤로 BMW 사는 디젤 엔진을 장착한 X5, X6 모델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8개월 뒤인 2018년 10월 9일, 베를린 행정법원에서는 베를린시 당국에 2019년 6월을 기점으로 베를린 시내 일부 약 10개 구간에서 유로 1-5 에 해당하는 디젤 차량을 금지하도록 했다[3]. 즉 베를린 시내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디젤 차량은 유로 6[4] 이상의 기준을 충족한 최근 2-3년 내에 출고된 차이다. 이제는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초록색 스티커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디젤 차량이 도심을 활보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위 행정소송과 관련해서 내가 놀랐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위 행정소송의 법적 근거에 ‘건강권’이 명시되어있다는 점에 있었다. 관련 법에는 미세먼지 환경기준(24시간 평균 50㎍/㎥, 연간 평균 40㎍/㎥)을 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 관할 행정청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그 지역에서 거주하는 시민이 ‘건강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관할 행정청을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렇다, 독일에서는 이미 미세먼지 이슈를 ‘건강권’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법이라는 구속력 있는 수단을 통해 사회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이 모든 정책수립과 법적 소송은 대기질에 대한 자료가 정확했을 때만이 성립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 솔직히 공공기관에서 일해본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왜곡된 혹은 조금 부족한 데이터에서 출발한 많은 정책적 논의들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자료가 어떻게 축적되고 관리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실제로 2016년 뉴스타파를 통해 방송된 한국의 대기질 측정상황을 살펴보면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주요 오염원인 공장지구는 아예 측정하지 않고 있고 도로변과 거주지를 도시와 교외로 나누어 측정하는 것이 전부다.[5] 세상에나, 공장지구는 측정하지도 않는다고? 이건 뭐, 고열로 시달리는 환자의 체온을 측정하기 위해 손가락 끝에 체온계를 대고 측정하는 것과 뭐가 다른 걸까? 그에 반해 독일은 전국적으로 2015년 기준 PM10에 해당하는 미세먼지 측정소를 374곳, PM2.5 에 해당하는 초미세먼지 측정소 182곳을 운영 중이다[6]. 한국과 가장 큰 차이라면 공장지대의 오염도를 매일 측정한다는 것, 그리고 몇몇 도로변을 제외하고선 그 측정치가 EU 기준을 넘어간 적이 없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 독일은 일의 경중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일 처리의 정확한 순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 접근법이 탄탄하다.
물론 나는 아직은 독일이라는 낯선 곳에서 산 지 오래되지 않았고 여러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독일 사회와 한국 사회를 단순 비교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오염을 건강권의 침해로 인식하는 독일의 철학, 그리고 이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사회적 처방을 내리기 위한 독일 사회의 ‘원칙대로’ 모습은 ‘중국발 미세먼지’ 담론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부의 무책임한 반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1] 출처: 링크
[2]미세먼지 배출량에 따라 ‘빨강 (0.08g/㎞ 이하)’ ‘노랑(0.05g/㎞ 이하)’ ‘초록 (0.025g/㎞ 이하)’ 인증표를 발급해 차량 전면에 부착하도록 했다. 시행 첫 해에는 인증표를 받은 차량은 모두 움벨트존에 진입할 수 있었지만, 이듬 해에는 노랑과 초록, 2010년에는 초록색 인증표를 부착한 차량만 진입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3] 출처: 링크
[4] 유로6은 유럽연합(EU)이 도입한 디젤차 배기가스 규제 단계로, 대형 경유차의 경우 질소산화물(NOx)을 유로5(2g/kWh) 단계보다 적은 0.4g/kWh까지만 허용한다. 국내 디젤 신차에도 2015년부터 적용됐다. (출처: 링크)
[5] 물론 최근 서울시는 대기오염 측정소를 현재 51개소에서 56개소로 늘릴 것을 발표했다. 최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이는 각 자치구의 대표 대기질을 측정하는 도시대기측정소 25개, 자동차로 인한 오염을 측정하는 도로변 대기측정소 15개, 오염물질의 수평/수직 이동을 측정할 수 있는 도시배경 및 입체측정소 10개 등 고정측정소 50대와 이동측정차량 6대를 포함한다(출처:링크 ). 그리고 여기에는 여전히 공장지구에 대한 언급이 없다.
[6] 출처: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