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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시선으로 본 독일] 담배에는 너무나도 너그러운

독일의 더위는 이제 한풀 꺾인 것 같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름철 시원하기로 유명한 독일의 수은계가 40도를 찍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라긴 했지만, 사실 독일에서는 (그렇게 예외적으로 더운 날을 제외하고는)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기 그지없는 여름 날씨를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해가 정수리 끝에 떠오른 오후가 되면 다들 삼삼오오 카페로 나와 그늘 속에 맥주 한 잔을 하는 모습이 독일의 전형적인 여름 풍경이다.

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여름철 맥주 한잔에 항상 곁들여지는 것이 바로 담배다. 하하, 오해는 마시라. 내가 독일에서 흡연을 시작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여름철 더 자주 볼 수 있는 담배연기 가득한 독일의 모습을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흡연자들의 말에 따르면 술을 마시다 보면 더욱 담배가 당긴다고들 하니까. 어쩌면 바깥 외출이 잦아지는 여름에 확률적으로 더 자주 흡연자들을 목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냐면… 유모차를 끄는 부모가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워대는 것이 독일의 흔한 풍경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랄까? 물론 건강정책을 연구하고 관련 사업기획을 해왔던 내가 조금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흡연에 굉장히 관대한 독일사회의 분위기는 독일에서 살거나 독일을 여행했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담배가 기호식품이며 흡연/금연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의견에 충분히 동의하더라도 간접흡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누구든 그 사실이 신경 쓰이게 마련일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한국에서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 중에 흡연자가 있어도 내가 간접흡연에 노출된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독일에서는 매일이 간접흡연과의 싸움이다. 담배 연기를 마시지 않으며 길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상당한 주의력을 요구한다. 현재 독일의 대부분의 주에서는 실내 흡연을 금지하는 정도로 아주 약한 금연정책이 실행 중이기 때문에 노천카페는 물론이고 보행로에서 흡연자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혼자 사는 기숙사 방에 있어도 금세 사방에서 피워대는 담배 때문에 금새 내 방도 담배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정확히 확인되진 않았으나 내 바로 밑층에 사는 사람이 주범일 것으로 추정된다.) 흡연자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 옷에서 담배냄새를 나기 시작한다.


[그림 1] 기차역 플랫폼에 설치된 (비폐쇄) 흡연가능구역


독일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고 자전거가 생활의 일부이며 품질 좋은 유기농 식품을 싼 가격으로 쉽게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독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간접흡연과 싸워야 하다니. 그저 건강정책을 연구했던 나의 예민함일까 싶어서 이번 기회에 통계자료를 좀 들여다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28개 EU 국가를 대상으로 한 European Health Interview Survey (2013-15) 통계자료1를 근거로 전체 15세 이상 인구 중 ‘매일 흡연자’ 비율과 이들의 하루당 담배 소비량 (20개비 이하/이상)으로 나누어 살펴봤다.


[그림 2] 15세 이상 전체인구 중 매일흡연자 비율


자, 일단 전체 15세 인구 중 매일 흡연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일단 전체 EU 국가 평균을 보면 21.9%인 반면 독일은 15% (남성 16.4%, 여성 13.6%)로 나름 평균 이하를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다른 동유럽 국가들은 이 수치가 30%를 넘어가기도 한다. 근데 놀랍게도 OECD에서 발표하는 15세 이상 전체 인구 중 매일 흡연자의 비율을 보면 한국이 32.9%2이다 . 
    
그렇다면 담배 소비량은 어떨까? 아무래도 ‘양’이 중요할 테니 말이다.


[그림3] 하루당 담배 소비량에 따른 분류 (20개비 이상 – 파란색)

 

같은 통계자료에서 가져온 수치를 살펴보면 하루에 20개비 이상 담배를 피우는 다흡연자, 다시 말해 Heavy-smoker라 불리는 이들의 비율은 그리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 독일의 경우도 흡연자의 약 30% 정도가 다흡연자로 분류된다. 조금 오래된 자료이지만 한국의 경우 다흡연자가 전체 흡연자의 약 45%3를 넘는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독일에 사는 사람들이 한국보다 담배를 많이, 그리고 자주 피우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사실 흡연인구의 비중이나 흡연량보다 내게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내 주변 많은 친구들이 꽤나 어렸을 적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대학교육, 그것도 석사과정을 밟는 소위 ‘엘리트’ 친구들이 15살, 16살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해서였나? 부모님이 말리지 않았을까? 도대체 담배는 어떻게 구한 거지? 심지어는 본인을 임신했을 당시 엄마가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고 서슴지 않게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담배를 둘러싼 유럽의 정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독일의 청소년 보호법(Jugendschutzgesetz)에 따르면 흡연의 법적 허용 연령은 18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꽤나 어려 보이는 독일 청소년들이 담배를 몰래 피우는 모습을 발견하곤 하는데, 이들에게서 나는 ‘숨 어피는 담배’가 아니라 그저 잘못하면 혼날 수도 있는 ‘장난’을 친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들도 담배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이미 간파하고 있는 셈이겠지?

물론 담배가 건강에 안 좋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잘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간접흡연에 대한 인식도 늘어나고 있고 최소한 타인에게 ‘담배냄새’ 테러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전자담배 등의 대체용품으로 바꾸는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현지 친구들에 따르면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금연을 터부시 하는 분위기가 늘어나는 중이라 한다. 물론 나 역시 기호식품으로서 담배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담배를 둘러싼 사회적 정서 자체가 여전히 매우 관대하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는 조금 우려스럽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담배라는 중독에 빠지기도 쉽고 빠져나오는 것 역시 어렵기 때문이다. 전국적이고 강력한 수준의 금연정책이 논의될 때는 종종 전체주의에서 비롯된 ‘나치적 발상’이라는 오해를 여전히 받는다고는 하지만 간접흡연의 피해자로서 조금 더 강도 높은 규제들이 있었으면, 그리고 그로 인해 사회적 정서가 조금 덜 관대해지길 바라본다.

                                               
1) 출처:링크
2) “흡연을 조장하는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안)” 2019.5, 보건복지부
3) 링크(국민건강영양조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