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로테르담에서
작성자: 김은지 편집위원
신혼여행으로 자전거를 타고 땅끝마을을 가자는 계획을 세울 만큼 우리 부부는 자전거를 좋아했다. 비록 학업 스케줄 때문에 신혼여행을 갈 순 없었지만, 연애 기간 내내 우리는 참 많은 곳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다. 한강 변을 달려 각자의 집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도 하고, 자전거로 같이 통학도 하고, 유명한 자전거 여행 코스인 두물머리, 파주출판단지 등 교외도 다녔다. 남편이 네덜란드에 직장을 잡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도 네덜란드의 자전거 문화에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세계에서 1인당 자전거 보유 대수가 가장 많은 국가, 세계 제1의 자전거 친화적인 (bike-friendly) 나라에서 우리가 살 게 되다니! 1)
네덜란드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거리의 자전거들은 그 초라함(?)으로 우리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했다. 우스꽝스러운 플라스틱 바구니들을 앞에 달거나, 캔버스 천으로 된 커다랗고 네모난 가방들이 뒤 자석에 달려 있었다. 변속기도 없고, 녹이 슨 자전거들도 심심치 않게 굴러다녔다. 나중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런 투박한 자전거의 모습은 네덜란드의 자전거 문화를 잘 보여준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장을 보고, 관공서에 가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 쇼핑을 하러 간다. 말 그대로 자전거가 생활의 일부이다. 날렵하고 세련된 자전거보다 좀 못생겼어도 튼튼하고 실용적인 자전거가 사랑받는 이유다. 네덜란드에서는 소위 스포츠 사이클링을 하는 “wielrenners” (wheel runners)와 일상생활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fietser” (someone on a bike)를 구분해 부른다. 한국에서는 한강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서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고 결국 마음을 접고 말았었는데, 자전거를 사랑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wierlenners”에 머무르게 되지 않나 싶다.
페달을 구를 힘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은 내 삶에 엄청난 자유를 선사했다. 중고 책을 구매하러 옆 동네도 다녀오고, 이것저것 등록하러 시청도 다니고, 병원도 다니고, 시장도 다녔다. 1년 중 217일 비가 내리는 네덜란드 날씨를 겪고서야 왜 초등학교 때 주번이 반 친구들 우유곽을 담아오는 데나 쓰이던 플라스틱 바구니를 앞에 달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먹을 일주일 치 식량을 담고 나서야 앞뒤 바구니가 왜 그렇게 커야 했는지 깨달았다. 이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양복을 입었거나 치마를 입었거나, 임신했거나 아이가 둘이거나 셋이거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항상 자전거를 탄다. 총리도 공주도 예외가 아니다.
2) 자전거로 아이들을 통학시키는 더치 엄마들
어떻게 자그마치 운송 부담률의 25%를 차지하는 자전거 문화가 정착될 수 있었던 걸까?3 1970년대 중반, OPEC의 석유 수출 제재와 증가하는 자동차 이용에 따른 교통사고 증가로 네덜란드의 지방 자치 도시들에서 자동차 중심 정책에 대한 저항운동이 시작된다. 그중 한 도시 흐로닝엔은 Traffic Circulation Plan을 제정해 도시 중심부를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면서, 자동차로는 각 구역을 가로지를 수 없게 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도록 유도했다.4 이러한 움직임을 시작으로 40년이 지난 지금, 자전거 또는 이륜차만을 위해 완전히 분리된 자전거 전용도로는 35,000km에 이르며, 도시 도로의 75%는 30km/h 이하의 속도 제한이 있다.5 대부분의 자동차 도로가 자전거 도로를 옆에 끼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도로의 속도제한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 전용 차로’, ‘자전거 보행자 겸용 도로’, ‘자전거 우선도로’로 나뉘어있고 2015년 기준 20,789km라고 한다.6 네덜란드가 우리나라 국토 크기의 반이 되지 않으며, 위의 수치가 자동차 또는 보행자 겸용 자전거도로를 포함하지 않은 것임을 고려할 때 이는 실로 놀라운 인프라다. 사실 네덜란드에서는 보행자 또는 자동차 ‘겸용’ 자전거도로를 보기 힘들다. 네덜란드에서는 헬멧 착용이 의무가 아니며 두 손을 놓고 타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고 심지어 문자를 보내기도 하는데, 자동차나 보행자 겸용 도로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얼마 전 안전 문제로 자전거를 타며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그만큼 자전거 도로가 안전하고 편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전거 도로는 보통 자전거 세 대가 들어갈 정도의 너비인데, 넉넉한 도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하며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나란히 달리며 남편과 대화 좀 할라치면, 뒤에서 벨을 울리거나 때로는 고함을 지르며 한 줄타기를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듣곤 했었던 우리로서는 두 줄 타기 문화가 반갑고 고맙다.
자전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네덜란드 기차역에 주자된 자전거 사진을 한 번쯤 본적이 있을 것이다. 1천 7백만의 인구에 2천 3백만의 자전거를 보유한 나라답게 많은 사람들이 통근 시 자전거를 이용한다.7 작은 나라다 보니 학교나 직장을 위해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차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주차 후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나도 로테르담에 살면서 틸버그 라는 도시로 통학을 했었는데, 아침에는 그 넓은 주차공간이 가득 차 조금만 늦어도 자리를 찾아 한참을 헤매야 했다. 일반 자전거는 평일 출퇴근 시간(6:30~9:00, 16:00~18:30)을 제외하고 휴일, 공휴일에는 한 대당 6.9유로(만 원)를 내면 휴대도 가능하며, 접이식 자전거는 별도 요금 없이 출퇴근 시간 포함 언제나 휴대가 가능하다.8 당연히 모든 기차에는 자전거 거치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자전거 휴대 정책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차이가 있다면 여기서는 접이식 자전거를 가지고 기차를 타는 것을 꽤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네덜란드 교통카드인 OV-Chipcard가 있으면 3.85유로를 내면 기차역에서 자전거를 24시간 대여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직장이 자전거 구매 비용을 제공 또는 보조해주는 복리후생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는 통근 시 자전거를 이용하면 km당 0.19유로를 회사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하루 10km를 자전거로 통근 시 1년에 대략 450유로 (610만 원)의 세금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9
네덜란드는 언덕이나 산이 없는 평평한 지형에, 여름에도 크게 덥지 않고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아 자전거 타기에 제격이다. 처음에는 이런 조건이 자전거 강국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살면서 보니 자전거가 시민들의 발이 될 수 있게 세심하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전거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서울에 오니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서울시 따릉이도 자주 눈에 띄고 자전거 이용층이 더 많아졌구나 싶다. 하지만 여전히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기란 쉽지 않다. 조금 달리면 끊어지는 자전거 도로들, 자전거 도로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와중에 보도와 차도가 완전히 분리된 자전거 전용 도로를 확대하겠다는 서울시 ‘자전거 하이웨이(CRT=cycle rapid transit)’ 계획이 들려오니 반갑다.10 우리나라 한강 자전거 도로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넓고 멀리 이동할 수 있을 만큼 길게 뻗어있다. 하지만 이런 자전거 도로는 시내에서 떨어져 평소에 이용할 수 없는 도로다. 부디 이번 자전거 도로는 지나가다 커피숍에 들러 친구와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은행도 들를 수 있는 생활 밀착형 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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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Bruntlett, M., & Bruntlett, C. (2018). Building the Cycling City: The Dutch Blueprint for Urban Vitality. Island Press.
6) 이성희, 박정희, 강대룡. (2017).자전거도로 관리체계 구축방안. 한국국토정보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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