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9일 만하임에서
편집위원: 신나희
2년간의 석사과정이 끝났다! 야호! 드디어 끝난 거야! 하지만 생존의 문제는 그다음에 찾아왔다. 지난달 논문을 마치고 기숙사에서 짐을 빼면서 두려웠던 것은 취업보다도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였다. 사실 미리미리 차근하게 준비했으면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 아직 직장이 구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버럭 부동산 계약부터 해야 하고, 그 서류를 바탕으로 비자 연장이 진행된다는 것 때문에 나는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게다가 그간 학생의 신분으로 월세가 싼 학생기숙사에 살다가 갑자기 부동산 시장에 나와 있는 매물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것이 왜 이렇게 터무니없이 비싸 보이는지. 하지만 길거리에 나앉을 수는 없으니 얼른 부동산 어플을 깔고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컨택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약 2~3주간 매일 계속 메일과 전화를 돌리고 면접을 보듯 집을 보러 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1시간을 달려서 찾아가서 형편없는 빈집을 한숨을 내쉬며 보고 나면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러나 싼 가격에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학생 기숙사를 나오고 시내 곳곳의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야 독일인들의 진짜 삶이 자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부동산을 둘러싼 독일의 최근을 살펴보기 앞서서 아주 간략하게 ‘집’과 관련한 기본적인 정보를 살펴보자. 독일은 일단 아파트와 같은 고층 건물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과 달리 보통 단독주택 혹은 조금 큰 단독주택에서 다세대 (3~4) 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파트처럼 보이는 건물은 임대주택이라 약간의 사회적 낙인 같은 것이 있어 보였다). 사실 독일 내 대부분의 도시에서의 자가소유비율은 약 50% 정도로 한국과 비슷한데, 자기 집을 소유하지 않은 많은 수의 사람들은 ‘전세’가 아닌 ‘월세’로 주택비를 지불한다. 그리고 전체적인 유럽의 경향인지 모르겠는데 독일인들은 자가와 월세의 구분을 떠나서 한 번 이사를 했다 하면 오랫동안 정착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튼, 학생들의 경우는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학생기숙사에 살거나 (보통 약 10명이 1개의 부엌과 2개의 화장실을 공유한다) 혹은 조금 더 비싸지만 마음이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보통 2~3명)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공동 주거 (Wohngemeinshaft: WG)의 형태로 살아간다. WG 역시 집 시설이나 분위기, 계약조건 등에서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함께 자취/살림을 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Mitbewohner/in)과의 소위 궁합이 중요해서 계약 전 1:1 면접은 필수다. 단순히 직장이 무엇이냐, 월세를 잘 낼 수 있느냐에 대한 재정적인 보증보다 기존의 사람들과 살림을 나눠 하며 조화롭게 잘 지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WG에 산다는 전제하에서는 사실 나 역시 월세보다도 같은 세입자 간의 조화로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청결의 문제에서 말이다. 성격이 안 맞는 사람이랑은 살아도 지저분한 사람과는 못 산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구구절절 와닿는 요즘이다.
그러나 결국 집을 알아보는 데 첫 필터링 기준은 예산이었다. 나는 일자리가 많은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중심으로 내가 살 수 있는 적당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대도시 주변으로는 내가 월세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숫자들이 눈에 띄었다. 겨우 매달 250유로짜리 학생기숙사에 살다가 이제는 기본 400유로 이상인 곳들을 마주하니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사실 400 유로는 기본인데 말이다…). 스위스 은행 UBS가 내놓은 전 세계 부동산 거품에 관련한 보고서(UBS Global Estate Bubble Index)를 보면 뮌헨, 프랑크푸르트 등과 같은 도시는 이미 전 세계적인 부동산 거품이 불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아래 그림). 사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월세가 비싼 것으로 악명높은 뮌헨은 아예 ‘살고 싶은 도시’ 리스트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뮌헨은 현지인 사이에서도 고소득 전문직이 아니면 살기 어려운 도시로 유명하다. 내가 알고 지내는 몇몇 학생들은 뮌헨에 있는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해도 주변부에 집을 얻기가 어려워서 기차를 타고 몇 시간씩 통학하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뮌헨까지의 수준은 아니라도 지속해서 높아지는 월세는 학생으로서는 힘들어 보였다. 취직이 돼도 월세로 1/3 이상을 내야 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Figure 1 세계 부동산 거품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부동산 시장 상황의 최악은 베를린이었다. 한 때 ‘우리는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Arm, aber sexy)’라고 외치던 베를린의 힙한 정신이 최악의 월세 상승률로 이어질 줄이야. 사실 베를린은 유럽 주요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월세와 집값이 싸기로 유명했다. 집을 구매하는 데 드는 평균 가격이 런던의 1/5. 파리의 1/3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독일 내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도 비슷했다. 단위 당 (1㎡) 가격이 함부르크나 프랑크푸르트에 비해 1/3~1/2에 불과했다. 하지만 근 몇 년사이 도시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 붐이 불면서 베를린의 집값 상승률은 연이어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9.6% in 2016, 12.7% in 2017 and 12% in 2018). 최근 베를린의 어느 한 연구소에 취직한 독일 친구 하나는 나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여전히 적당한 집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끝맺는다. 나도 한때 베를린으로 이주할 생각을 하면서 부동산 시세를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베를린 시내에서 같은 가격으로 WG 방 하나를 얻으려면 방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표현하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베를린은 소득 수준이 낮은 것으로 유명한데 심지어 월세가 이렇게까지 비싸다니.
그렇다면 베를린에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동산 붐이 일어난 것은 왜일까? 다른 도시들의 자가소유 비율이 50% 정도를 맴돌 때 베를린은 전통적으로 자가소유 비율이 20%밖에 안되는 곳이기 때문에 투자할 매물이 많았고, 매년 5만 명 이상의 새로운 거주민 증가가 거기에 부합하는 부동산 수요를 창출했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렇다, 최근 10년간 워낙 가난한 것으로 유명한 베를린시 정부에서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도시개발에 앞장서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그럴수록 주택 고급화 현상(Gentrification)이 짙어지면서 낮은 소득으로 살아가던 베를린 현지인들이 점점 갈 곳을 상실하게 되었다. 최근은 베를린 주변 동독 도시 몇몇이 위성도시마냥 발전하고 있다. 바로 라이프치히가 대표적인 위성도시. 기차로 베를린까지의 통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값이 아직 비싸지지 않은 라이프치히로 이사를 가는 사람도 최근 늘었다고 한다.
Figure 2 베를린 구역별 부동산 가격변화 (출처: 링크)
다행히도 올해 6월 18일, 베를린시 당국 (SPD + Gruenene + die Linke 연립정부) 은 2020년부터 향후 5년간 현재의 월세를 동결시키는 새로운 정책안(Mietendeckel)을 내놓았다. 물론 위 정책은 세부사항 조율을 거쳐 10월에 실제 발효 여부가 결정된다 . 물론 정책대상은 이미 시 당국이 월세 상승분에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social housing)과 2014년 이후 완공된 건물은 제외인데, 정책의 대략적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새로운 계약체결 시 월세 상한선(maximum rent cap)을 도입한다. 따라서 집주인이 월세를 올릴 목적으로 기존 세입자들을 기피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 만약 월세 상한선 이상의 월세를 지불하고 있는 세입자 중 본인 소득의 1/3 이상을 월세로 지출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월세 상한선 밑으로 월세 감액을 요청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좌파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베를린 정치에서 극단적인 처방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베를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85% 이상이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세입자임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급속도로 치솟는 주거비용을 생각해봤을 때 꽤나 합리적인 정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집주인 및 외국인 투자자로 대표되는 집단에서는 위 정책안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지나친 월세 상승에 대한 정부 대책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이는 연방정부가 해야 할 일이 고작 주 정부에 해당하는 ‘베를린 주 정부’에게는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기민당(CDU)의 경우 도시개발을 위한 투자촉진을 주장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베를린 주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당장 다음 주 베를린 지사로 출근이라는 내 친구는 아직도 베를린에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베를린에 부모님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염치 불구하고 부모님 댁에 일단 짐을 풀었다는데, 핸드폰 저편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한숨이 남 일 같지가 않다.